기시감이 눈앞에 아른거지만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느와르 영화.
- 뭐라고 해야되요, 그 아이 만나면?
- 웃어야지.
- 어우 모야아~ 이 오빠 눈빛 좋같애~
- 아이 찾는거 도와주면 너 수술할 수 있어.
그냥 앞에 봐 븅신새끼야~
- 왜 그렇게 그 놈을 죽이려고 하는거지?
- 이제 기억도 안나네. 이쯤 되면 이유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어지지.
아저씨는 용기가 없었어. 엄마를 지켜줄.
내 손에 죽기 전에 인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나? '이럴 필요까진 없지않느냐'는 말이야. 사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싶은 거거든.
처음부터 이렇게 될거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기시감이 눈앞에 아른거지만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느와르 영화.
태국에서 살고있는 한국인 어린아이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아이의 엄마는 장기가 도려진채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된다. 일본에서 살인청부업 일을하고 있던 '인남(황정민)'은 마지막 미션을 끝내고 파나마에 가서 홀로 외로운 은퇴 생활을 기획중이다. 하지만 인남이 죽인 일본 야쿠자 두목의 동생인 '레이(이정재)'가 인남을 죽이러 그의 동선을 그림자처럼 따라오고 태국에서 납치된 아이가 자신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된 인남은 곧바로 태국으로가서 아이를 구출해낸다는 이야기.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만나는 느와르 영화다. 내가 굳이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은 이유는 홍원찬 감독이 바라는대로 상당히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배경들로 점철되어 있는 영화이기 때문. 실제로 일본과 한국, 그리고 태국을 잇는 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된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덕분에 어디서도 본적없는 또 새로운 미장센과 액션씬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특히 황정민과 이정재, 두 배우가 보여주는 액션 스타일이 신선하고 그보다 더 멋진 카메라 워크가 관객을 압도한다. 자칫하면 어설프고 가볍게 보일 수 있는 액션 시퀀스들을 눈여겨봐도 잘 보이지 않는 특수효과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완벽에 가까운 합을 보여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극장 개봉을 차일피일 미루는 영화들 이후로 어쩔 수 없이 먼저 개봉한 국내 영화들인, 살아있다, 반도, 강철비2: 정상회담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이 바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다. 본작은 어쩔 수 없이 소재가 겹친다는 이유 하나로 영화 '아저씨(2010)'와 비교될 운명에 놓이긴 했지만 억지스러운 개그씬도 별로 없고 두 주연 배우의 나지막한 목소리 하나에 의존하는 것 같은 진지함으로 끝까지 내달리는 영화이기 때문에 결이 약간 다르다. 게다가 마지막 영화 후반부엔 '레옹(1994)'이 떠오르기도 하는 묘한 영화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스토리
일본에서 마지막 살인청부업을 끝낸 인남이 한국에 있는 어떤 남성에게 연락을 받는다. 인남의 딸인 '유민(박소이)'이 거주하고 있던 태국에서 누군가에게 납치되었고 아이의 '엄마(최희서 / 유민 엄마 역)'는 장기가 척출된 채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됐다는 것.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인천으로 향한 인남은 온 몸에 꿰맨자국이 있는 유민이의 엄마를 보고 아이를 구하러 다짜고짜 태국으로 향한다. 한편 자신의 야쿠자 형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걸 알게된 레이는 인남의 일본 연락책이었던 '남자(박명훈)'를 찾아내어 자신의 별명인 '인간 백정' 그대로 장기를 다 끄집어 내며 인남의 소재를 알아내고 인천에 인남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한 레이는 인남의 대한민국 연락책이었던 '과장님'을 통해 인남의 딸에 대한 정보를 얻게되고 또 다시 인남을 쫓아 태국으로 향한다. 태국에 들어온 인남은 납치된 딸을 찾기위해 태국 현지 가이드로 트랜스젠더 수술을 앞두고 있는 '유이(박정민)'을 섭외하게 되고 겨우겨우 찾아낸 딸(과 장기척출을 위한 태국 어린 아이들)을 납치한 일당들의 아지트에서 드디어 레이를 처음 만나게 된다.
좁디좁은 복도에서의 액션씬은 차치하더라도 인남이 딸을 옮긴 일당들을 쫓기위해 창을 부수고 레이는 인남을 죽이기 위해 문을 부수는 장면이 퍽 인상깊었다. 아무튼 불꽃튀는 첫 대면을 뒤로하고 인남은 유민이의 심장을 꺼내려는 태국 납치범들의 아지트를 찾아내는데 성공하고 레이 역시 인남의 딸을 쫓으면 인남도 반드시 그곳에 올 것이라 믿고 태국의 조직 폭력배들의 본거지를 들쑤셔 놓는다. 인남은 딸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고 레이는 인남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고 태국 조직 폭력배들은 태국경찰과 합작해 레이의 제안을 수락하며 인남을 찾는데 협조하게 된다. 얽히고 설킨 접전 끝에 겨우겨우 유민이를 찾은 인남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채 태국 조직 폭력배, 태국 경찰, 그리고 레이와의 최종전을 준비하지만 파나마로 가기위한 배편을 구하러 다녀온 사이에 딸은 레이에게 붙잡히고 태국 조직 폭력배들은 호텔 전체를 점거한 상황으로 급변한다. 결국 자신 대신 딸을 맡기기 위해 한국에 네 살박이 아들도 있는 유이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채 인남은 레이와 목숨을 건 결투를 한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최고 수혜자는 아무래도 트랜스젠더인 유이역을 맡은 박정민과 인남의 딸을 연기한 아역배우 박소이이다. 능청스럽고 시종일관 쌍욕을 남발하는 트랜스젠더 유이는 납치된 딸을 찾으러 태국에 들어온 인남을 보면서 가슴아파하지만 결국 자신의 트랜스젠더 수술을 위해 인남에게 아이를 찾는 조건으로 '3만 달러'를 제시하는 묘한 캐릭터이다. 한국에 있는 아들이 궁금하지 않느냐는 인남의 질문에 '이 꼴로 어딜가냐'며 두 번 다시 한국에는 돌아가지 않을거라고 못박는다. 단발머리 가발을 쓰고 핫팬츠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결말부분에 자동차가 폭발하는 씬에서 인남의 딸을 안고 걸어가는데 정말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보는 듯 했다(대폭소). 그리고 인남의 딸을 연기한 박소이 배우는 영화 중반부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진 멍한 연기를 보여주는데 어린 나이에도 엄청 연기를 잘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아주아주 오랜만에 보는 상당히 재미있는 한국영화였다. 믿고보는 이정재 배우와 황정민 배우의 조합이라서 목소리 톤 부터 간지가 뚝뚝 떨어지는 이정재와 아주 잠깐 스치는 신파 요소임에도 '역시 황정민'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뱉어지는 폭깊은 연기는 액션 영화면서도 캐릭터 싸움으로 전도되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딴 영화 되시겠다.
여담이지만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원래 제목은 '모래요정' 이었다고 한다. 최종 편집본에는 잘려나갔지만 인남의 딸 유민이가 즐겨보던 만화영화가 '모래요정 바람돌이' 였었다고... 결국 기독교의 주기도문에 있는 문구로 영화 제목이 수정되었지만 정말 악과 악의 만남 같은 영화라서 그 틈에 있는 인남의 딸을 향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하는 것 같은 멋진 기도문 같은 제목이 되었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15세 관람가로 잔인한 장면이 별로 등장하지 않지만 아예 대놓고 청불로 갔다면 어땠을까 싶은데 감독과 편집자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게끔 연출을 상당히 잘 해서 잔인한 장면 없이도 잔인한 장면이 상상되는, 비쥬얼과 심적으로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영화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다운 영화를 봤다. 되도않는 정치색도 없고 어설픈 컴퓨터 그래픽도 없으며 스토리는 베베 꼬지 않고 심플, 거기에 신파 요소도 거의 없는 화끈한 느와르 영화였다.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쿠키영상은 없다.
++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인천 배경은 북성포구다.
나도 간적있는 횟집을 배경으로 노을이 지는 모습도 영화에 등장하고 저 공장을 배경으로 하는 씬도 들어가 있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