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너희 엄마만 없으면 1등 할 수 있어.
너 꾸리꾸리하게 살거야 인생?
하기 싫지? 도망가고 싶고. 그 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더라.
엄마는 없어.
우리 아부지가 진짜 구두쇠였거든.
내가 용돈을 어떻게 받아냈는지 아나.
아부지가 통통배를 타고 포구를 출발 하면, 건너편에서 보고 있다가 바다 속으로 입수.
죽자고 헤엄을 쳐가지고 배를 따라 가는기라.
'아부지! 아부지요! 돈 쫌 주이소! 돈! 돈! 도온!!'
그렇게 배를 따라 헤엄쳐 가면 그 구두쇠도 저그 아들 죽을까 싶어가지고 식겁해서 돈을 던졌다 아니가.
그 돈으로 오락도 하고 국밥도 사묵고 만화도 보고.
그 간절함.
뼛속까지 새겨진 간절함.
맞을짓을 했으니까 맞았겠지 라고 합디다.
1등만 기억하는 사회.
이 말도 이젠 죽은 말이 된 느낌이다.
모두가 1등 1등 1등 우승 우승 우승 전문가 전문가 전문가 를 외치던 시대는 이제 저물고
다양성이라는 미끼로 그럭저럭이 미덕이 된 시대에 살고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좋으면 취미로라도.
실력이 안되는데 좋아한다고 계속 쫓으면 그건 미련밖에 되지 않아.
꿈은 꿈일 뿐이지.
꿈과 현실의 간극을 좁힌다는건 어렵고 쉽지 않다.
나이를 점차 먹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살다 보니' 라는 변명으로 우리는
꿈을, 좋아하는걸 조금씩 놓으며 사는건 아닐까.
그저 물 속이 좋고 수영이 재미있어,
시합만 나갔다 하면 언제나 4등을 하는 수영 선수 준호는
엄마의 등쌀에 못이겨 16년 전 국가대표 출신의 새로운 코치에게 수영 강습을 받는다.
매를 맞아가며 수영을 하니 준호는 2위라는 자신의 수영 역사 최고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
메달을 따야겠다는 간절함이 없고 수영이 좋아서 수영 선수가 된 준호에게 수영은 어떤 의미일까.
16년전 '천재' 라고도 불리우던 왕년의 수영 스타였지만
지금은 주민센터의 어린이 수영 코치로 생계를 연명하는 광수는
자신의 치기에 폭력으로 대하던 코치에 이어
준호에게도 폭력을 일삼는다.
예전에 자신을 그렇게 가르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수영을 너무 천재적으로 잘 해서 선배들이 집합당해 몽둥이를 맞아도 자신은 빠져있었다.
그러니 '선수' 라는 타이틀이 그냥 놀고 먹는 느낌이었던 듯.
매를 처음 든 코치에게 대들며 그 길로 선수 생활을 접은 광수는 어딘가 심히 비뚫어져 있다.
그게 지도자로서 맞는 길인 것 같고 자신을 그토록 신경 써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폭력은 대물림 된다.
자신의 수경에 손을 댄 동생에게 광수와 똑같이 매질을 하는 준호.
그 장면이 굉장히 무서웠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자신의 기분이 나쁘다고, 광수에게 그렇게 맞았으니까.
광수에게 매를 맞은 준호를 본 준호의 아빠는 수영을 그만 두게 한다.
그리고 엄마의 일그러진 사랑은 동생에게 향한다.
엄마역을 맡은 이항나라는 배우가 대한민국 대부분의 엄마를 잘 연기했다.
매를 맞아도 좋으니 준호에게 계속 수영을 가르쳐달라던 준호의 엄마.
왜 1등을 못하면 꾸리꾸리한 삶을 살게되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걸까.
나머지 2등을 비롯한 후보선수들의 삶은 어떤 삶인 걸까.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삶일까.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대체 왜 초라해지는 걸까.
왜 애써 자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