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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Oct 10. 2016

어장관리

어장관리 : 실제로 사귀지는 않지만 마치 사귈 것처럼 친한 척하면서 자신의 주변 이성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태도, 행태를 의미하는 신종 연애용어.
 
 
 
왜 어장관리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날지도 모르니
특정한 한 사람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다' 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쇼핑을 하거나 수강신청을 할 때는
선택 가능한 대안을 물색한 후,
이들을 한꺼번에 주욱 늘어놓고 그중에서 고르게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속성 혹은 기준에 입각해 결정을 하느냐' 이기 때문에,
이런 의사결정 방법을 '속성별 처리' 라고도 한다.
속성별 처리의 장점은 여러 대안을 동시에 검토한 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친구를 선택할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특정한 시점에 마음에 드는 특정인을 두고,
'그를 이성친구로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를 결정한다.
 
여러 대안을 놓고
속성별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안을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만 결정하기 때문에,
일종의 '대안별 처리' 라 할 수 있다.
 
대안별 처리는
한 번에 하나의 안(案)에 대해서만 의사 결정을 한다.
그리고 일단 채택하고 나면
그 이후에 더 좋은 대안이 나타나서 선택을 바꾸는 데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
 
그러니까 어장관리란,
'대안별 선택' 을 해야하는 이성관계에서도
'속성별 선택' 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성친구를 선택하는 일을 마치
옷이나 신발 가방을 쇼핑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 소비주의의 논리가 인간관계에도
일부 스며들어온 결과 가운데 하나가
어장관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무척 아이러니한 사실은
복수의 대안 중에서 고르는 것이,
단 하나의 대안을 놓고 고민하는 것보다
선택의 폭도 더 넓고 합리적일 것 같은데,
결과가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어장관리를 심하게 했던 친구가
정말 좋은 짝을 찾는 경우는 오히려 많이 보지 못했다.
내 주변에서도 사례가 제법 있었고..
긴 어장관리의 끝에 나온 선택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는 사람 중에 A라는 여자가 있었다.
예쁘고 애교가 많아서 좋아하는 남자가 항상 주위에 많았다.
이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어장관리를 했다.
항상 남자에게 잘해주고 단 둘이 만나서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그러다가, 상대방이 '사랑한다' 고 고백하는 순간,
놀랍도록 냉정하게 확실한 대답을 주지 않으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싫으니까 그만 만나자'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그 순간부터 다른 남자와 본격적으로 데이트를 시작했다.
새로 데이트를 시작한 남자와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이런 일이 10년 넘게 계속되니까
지친 남자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A는 여전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주위에 남자는 늘 있었지만,
소위 '괜찮은' 남자는 A의 나이에 반비례해 줄어들었다.
혼기(婚期)가 지나니
주위에서 결혼하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A는
'지금 할 거면 예전에 훨씬 괜찮은 사람과 했을 것'
이라고 응수했다.
결국 30대 후반에야 결혼한 A는 이내 이혼을 했고,
현재는 혼자 산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지금도 어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정인의 사례를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상에 대한 설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역설이 성립할까?
 
다시 말해서,
관리하는 어장의 많은 대안 중에서
학벌이나, 외모나, 집안이나, 뭐 이런 '속성' 들을 모두
고려한 후에 선택한 결과가,
그냥 누군가 한 사람 만났다가 사귀는 경우보다
왜 좋지 못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은 쇼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는 쇼핑과 다르다.
인간관계란 좋은 파트너를 '선택' 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가 '되는' 일이다.
친구 사이에서도 그렇고,
연인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밑지지 않는' 선택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관계란 호혜적인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도 밑지지 않겠다고 나오는 순간,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어장관리는
한번 맺은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과거의 혹은 미래의 더 나은 대안에 대해
미련을 갖게 만든다.
그러니 관계의 깊이가 자꾸만 얕아지는 것이다.
종국에 가면 어장관리를 당하는 쪽이 아니라,
하는 쪽이 피해자가 된다.
 
어장관리를 하는 친구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사랑에 중독된' 이가 많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서
자아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이 없는 상황을 두려워 하듯,
그들은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상황을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한 사람이 떠나가도 누군가는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어장 안에 되도록 많은 가능성을 가둬두려고 한다.
한 사람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
사랑해줄 것 같은 사람이 많음에 행복함을 느끼는 셈이다.
 
하지만 사랑은 선거가 아니다.


'그냥 좀 아는 사람' 수백 명보다,


영혼을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중요하다.


내가 그에게 무한한 몰입을 보일 때에야 비로소 그도
나에게 마음을 열고 책임을 지게 된다.
누군가를 '관리'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얼핏 보아 대단한 자신감 같지만,
실은 매우 비겁한 처사다.
자신을 내던져 사랑할 용기가 없는 것이므로.
 
만약
누군가 자신을 어장관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거든,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당당히 물어라.
그리고 어장관리가 분명하거든,
가차 없이 떠나라.
사랑의 용기와 책임을 모르는 비겁한 상대와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혹시 그대가
어장관리를 하고 있다면
(자신은 모를 수도 있다. 친한 동성친구의 지적이 정확하다)
헛된 꿈에서 빨리 깨어나라.
어장 안 물고기의 수가 많아질수록
그대 행복의 넓이는 더 좁아진다.
당장 어장의 가두리를 열고
다시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모두 쫓아버려라.
그리고 진심을 다해 사랑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생각하라.
 
그 한 사람이 그대의 커다란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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