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존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군 Mar 10. 2017

솔로 20개월의 무게

어느날 문득 횟수를 세어보니 혼자된지 20개월이 지났다.
마치 산왕전의 북산처럼 마지막 연애상대에게 모든걸 쏟아부은 이후로
거짓말처럼 그 누구도 나의 마음에 들이지 않았다.
일부러 마음을 열지 않은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억지로 만남 자체를 꺼려한 적 역시 단 한 번도 없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초반에 느꼈던 외로움(특히 밤) 이나 공허함, 허탈감은 점차 사그러져만 갔다.

20개월동안 내가 손만 뻗으면 연애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략 5~6명.

남자의 호기로, 벌떡거리는 나의 타고난 성욕으로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일단 시작해 보자' 라는 웃긴 생각이 이젠 들지 않더라.
애초에 그런 생각을 들게 하는 이성도 없었거니와.

눈이 높아진건 절대 아니다.
이것 저것 따지는게 많아진 것 역시 아니고.
다만 내 마음을 줄 대상을 찾지 못했을 뿐.

마치 같이 살던 아내가 죽은것도 아닌데 폐허속에서 홀로 걷는 느낌이었던 여자 없는 20개월 동안
나는 혼자 미친듯이 영화를 봐, cgv vip가 되었고 손에 꼽지도 못할 정도의 많은 책들을 구입했으며
평생 담쌓고 살던 게임 콘솔도 마련하고 새 옷, 새 신발을 단 한 번도 구입하지 않았다.

이성과의 관계나 연애의 기초, 방법 따위
모두 나와는 관계 없는 일인냥 담쌓고 살고있다.

어릴적에는 분명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막연히 '연애하고싶다' 라는 모순적인 생각에 빠져,
무의미한 만남을 갖고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상대를 어떻게든 공략하고자 갖은 사탕발림을 하고,
일단 한 번 만나고 보자 라는 식으로 여자 없이 살 수 없는 듯 살아왔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호기와 패기가 생소하고 우습다.

내가 내세울게 많이 없으니 20대의 연애와 30대의 연애의 갭이 마치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벌어진 듯.

그리고 그 덕에 '사람을 만나면 사람만 보라' 라는 웃기지도 않는 잣대가 생겨버린 것 같다.

상대방의 재력, 경제력, 학력, 정력, 뭐 보편적인 남자에 대한 이런 저런 '힘' 을 따지는 여자들을 만날때 마다
'속물' 운운하며 상대를 깎아내리기 바빴던 20대의 나와
'나같아도 나같은 배경의 남자는 안만나겠다' 로 결론지어지는 30대의 나의 차이는
마치 어린 아이와 늙은 노인의 피부톤과 비슷하다.

얼마전 나의 가정사를 들은 한 여자가 '들어보니 당신은 참 외로운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배경을 지녔다' 라고 하는 걸 보고 평소같으면 불같이 반론을 펼쳤겠지만 당시엔 그저 웃었다.
(당사자도 혼자된지 몇 년 돼보이던데 그 이유를 딱 알겠달까)

내가 눈 딱 감고 손만 뻗으면 곧장 연애의 길로 빠질 것 같던 20개월 동안의 상대들 역시 뭔가 그네들의 인생에 행여 누가될까봐 단념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자기변호를 좀 해보자면
그렇게 쓰레기같은 성격은 아니고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노력하고
가진건 없어도 그래도 있을건 다 있고
외모도 이정도면 평균이고(어이) 내세울건 큰 키 밖에 없고
살면서 평생을, '연애 상대에게 질린다' 라는게 어떤건지 잘 모르겠는 연애를 해왔는데

어차피 연애라는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20개월 동안 대상을 못찾았을 뿐
연애를 할 마음은 언제나 연중무휴다.

이정도로 긴 시간동안 솔로인 적이 아마 처음인 듯.
앞으로의 시간이 더 중요하겠지만 외로움에 지쳐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가지는 않게됐으니 혼자 사는, 어떤 요령을 나도 모르게 터득한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물론 연애에 있어서 밀당이나 어장관리를 1도 하지 않는 성격이라 좋으면 좋은거고 싫으면 싫은,
호불호가 딱 있는 연애 스타일이라 20개월 동안 위에서 언급한 어중간한 느낌의 애들을 다 제껴버린게 문제인 듯.
아마 그네들중에 하나와 어설프게 시작했으면 어설프게 연애하고 어설프게 결혼하고 어설프게 애를 낳고 남들처럼 지지고 볶고 살고 있겠지.
(이 나이먹도록 운명의 상대를 기다리는 내가 더 나아보이는데?)

'만약' 이라는 꿈같은 세상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정말 어찌나 감사한지요.


여자를 그렇게나 좋아해서 이 나이쯤 되면 이미 애가 한 둘은 있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내가 부디 현재의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를 본지 정말 오래되서 처음 손을 잡는 다는 느낌이 어땠는지
그 사람의 체온이 어땠는지 입술의 촉감, 데이트를 하러 가는 길의 기대감,
머리에서 나던 꽃향기, 날 바라보는 눈빛, 자다 깬 목소리 따위들이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연애 리셋이 되는 느낌이 이런걸까.

이게 사는건가 싶다가도 대충 만나서 연애하며 사는 것 보단 그래도 낫구나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던 20개월 이었다.

늘 그래왔지만 과거보다는 앞으로가 중요해 앞으로가..



+
사주 봐줬던 점쟁이 아찌가 작년 말이나 올해 초에 만나는 여자와 결혼한다고 그랬었는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realnogun&logNo=220889832820


그 기간동안 여자 자체를 안만났는데 결혼은 개뿔.
역시 사주 따위 믿으면 안돼...



매거진의 이전글 모멸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