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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Nov 13. 2017

마이너리티 리포트

원작자 필립 k. 딕의 소설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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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필립 k. 딕의 소설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영화.



..라고 일단 말해두고 싶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02년에 개봉하여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력과 시나리오를 그럴싸하게 집필한 작가들의 영향이 컸다.



워낙 오래된 영화라서 스토리는 모두들 대강 알테지만 일단 기술해 보자면,


2054년, 워싱턴 D.C. 미래에 일어날 살인 사건을 예측하는 시스템 기관인 '프리크라임' 에서 반장을 역임하고 있는 '존 앤더튼(톰 크루즈)' 은 사건이 일어날 시간과 장소,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미리' 알고 범죄를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날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피해자 '리오 크로우(마이크 바인더)' 라는 사람을 죽이는 가해자가 되는 미래 예측 영상을 본 앤더튼. 자신의 지위를 노리는 불특정한 자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쓴 거라 생각하고 미래를 바꾸려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 의견)' 을 손에 넣고 무죄를 입증한다는 이야기.



영화의 결말이나 내용은 지극히 헐리우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도 나와있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는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프리크라임 이라는 시스템에 기댄 운명 결정론 사이를 오갈 뿐.


리오 크로우를 죽이는 '살인자' 가 되는 존 앤더튼은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든 것 뿐이다.


몇 년 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앤더튼은 미래를 예측하는 프리크라임의 예지자 세 명 중 한 명인 아가사(사만다 모튼) 와 함께 리오가 있던 호텔에 도착한다. 거기에서 본 건 리오가 자신의 아들을 납치하여 죽인 범인이라는 것. 이전까지 얼굴도 모르던 사내를 자신이 죽일리 없다고 여겼지만 리오가 앤더튼의 아들을 강제로 찍은 사진이 앤더튼을 분노케 해, 리오를 죽이기 직전까지 몰고가지만 앤더튼은 자신의 미래를 바꾸려는 '자유의지' 에 의해 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게 된다. 그 찰나, 리오가 '당신이 나를 죽여야 우리 가족에게 돈이 전달된다' 라는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해 준다. 알고보니 앤더튼의 자리를 노리는 프리크라임 전임자이자 시스템을 고안했던 '라마 버제스(막스 폰 시도우)' 의 계획이었던 것. 사건의 진실을 알게되었지만 리오는 자신의 의지로 앤더튼이 총을 쏘게 만들고 앤더튼은 그대로 수감된다. 결국 프리크라임의 예지가 맞아떨어진 셈.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대니 워트워(콜린 파렐)' 는 법무성 쪼다(!) 로 등장해,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오류를 파헤치려든다. 결국 가해자가 된 앤더튼 대신 임시로 프리크라임을 지휘하지만 아가사가 보여준 이상한 범행현장 영상(아가사의 뇌파를 영상화한 것) 을 분석해, 결국 라마의 과거 범죄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두 예지자들 보다 월등히 뛰어난 아가사의 예지력을 알아본 라마가 과거에 그녀를 시설에만 묶어두는 게 싫었던 그녀의 어머니, '앤 라이블리(제시카 하퍼)' 를 익사시킨 것. 자신의 딸이 사람처럼 살지 못하는 프리크라임의 세 예지자가 되는 게 싫었기에. 워트워는 결국 범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다 라마의 총에 맞아 죽는 비운의 캐릭터다.


마지막으로 프리크라임을 만든 라마 버제스는 아가사의 엄마를 죽이고 시스템의 반장으로 오랜시간 역임해온 인물. 앤 라이블리를 그가 죽이는 일 또한 세 예지자에 의해 예언되었지만 그 예언을 본 라마는 자신이 범행을 일으키기 직전에 청부살인을 의뢰하여 경찰이 다른 용의자를 붙잡게 만든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범행. 기록에 남은 청부업자의 영상은 교묘하게 편집하여 자신이 아닌 청부업자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꾸며놓았다. 그리고 그가 이번에 앤더튼을 휘말리게 한 이유는 다시 한 번 프리크라임의 반장 자리에 서고 싶었기 때문. 이미 국장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지만 앤더튼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시스템을 다시 한 번 거머쥐려는 야심가이다(정력도 넘치시지...). 하지만 과거의 혐의를 밝혀낸 워트워를 죽이고 마지막엔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린 부하직원, 앤더튼 마저 죽이려 한다. 이 것 또한 예지자들에 의해 예견되었는데 라마는 앤더튼이 아닌 자신에게 방아쇠를 당겨,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죽고 만다.



결국 프리크라임은 해체되고 시스템에 사육당하던 세 명의 예지자들은 평화롭게 살아가며 막을 내린다.


앤더튼은 시스템을 지키는 것 보다 자신의 안위가 먼저였고 라마는 시스템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인물이었다. 라마가 자신의 예견된 미래를 보았다면 자유의지 보다는 운명 결정론에 맡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필립 k. 딕의 원작은 영화와 많이 다르다.


영화에서처럼 멋진 신세계에 가까운 시스템이라기 보다 세 명의 '백치' 들이 웅얼거리는 말들을 모아 컴퓨터가 작성한 천공카드에 찍힌 내용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만 나올 뿐.



존 앤더튼은 은퇴가 가까워진 프리크라임의 국장이다. 그의 후임으로 온 젊은 워트워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인물로 묘사된다(워트워는 앤더튼이 은퇴하기 전까지 그의 보좌관역을 임시로 수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워트워가 등장한 바로 그 날, 앤더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인 '레오폴드 캐플런' 이라는 인물을 1주일 내에 죽일거라는 예언을 받게 되고 그 길로 도망자 신세가 된다. 경찰보다 한 발 앞서 앤더튼을 낚아 챈 인물은 바로 피해자인 레오폴드 캐플런. 그는 퇴역한 '서방연합동맹군(AFWA)' 의 사령관이었다. 원작 속에서는 경찰측과 군부쪽에 미래 예언 카드가 모두 전달된다. 자신이 죽을 걸 알게된 캐플런이 미-중 전쟁 후 쇠약해 진 군부측 고위 간부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종이 호랑이로 전락해버린 군의 위신을 세우려 앤더튼의 진의를 살핀 후 살인사건 자체를 일어나지 못하게 경찰쪽에 넘기려는 심산이었다. 그럴경우(캐플런이 죽지 않을 경우) 예언의 힘은 상쇄되기 때문에 프리크라임 자체가 해산되거나 군부의 힘이 커지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 모든 걸 깨달은 앤더튼은 결국 일장연설을 하려 연설대에 올라가 있는 캐플런을 많은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보기좋게 총살해 버린다. 프리크라임의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가 제대로(?) 등장한다.


원작에서의 프리크라임은 예지자 세 명이 내놓는 리포트들 중 비슷한 문건 두개를 합산하여 하나의 결과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짜여져 있는데, 첫 번째 예지자의 예언은 군 정보국 요원들이 앤더튼을 납치해, 캐플런에게 데려가 최종통보를 받는다는 것. 자발적으로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해체하던지 아니면 군대와 경찰의 전면전을 펼치던지. 앤더튼은 이 말을 듣고 경찰국장으로서 의회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묵살되고, 앤더튼은 지위를 잃기 싫어, 경찰들과 캐플런의 아지트를 급습해 캐플런을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예지자의 예언은 첫 번째 예지자의 예언을 본 앤더튼이 자신의 지위와 목숨을 위해 캐플런을 살해하지 않는다는 예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예지자의 예언은 두 번째 예지의 경우, 캐플런이 원하는 '프리크라임의 예언의 오류' 가 정립되기 때문에 시스템의 존속을 위해 앤더튼이 캐플런을 죽이게 된다. 그래서 결국 레오폴드 캐플런 이라는 인물을 죽이는 두 개의 '메이저리티(다수 의견) 리포트' 가 만들어져, 앤더튼이 가해자가 된 것이고, 자세히 훑어보면 세 예지자의 예언 모두가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는 이야기가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앤더튼이 마음을 고쳐먹은 마음을 한 번 더 고쳐먹은 일이었지만 결국 이것도 프리크라임의 시스템 정점에 서있는 관계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원작에서, 그리고 영화에서도 다뤄지는 '아직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가해자를 체포할 수는 없다' 라는 프리크라임 시스템의 맹점은 소재의 힘에 밀려, 금세 희석되지만, '자신의 미래 범행 자체를 알게되는 가해자가 과연 정말 미래에 그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인가?' 라는 운명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영화나 원작이나 꽤 그럴싸하게 그려져 있다.


미래 범죄 억제 관리인 자신이 그 범죄에 휘말리게 된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인 상황인가.












원래 필립 k. 딕은 이런류의 이야기를 잘 쓴다(특히 단편에서).


그럴싸한 시스템이나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놓고 주인공 스스로가 인간 본연의 가치관과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소재가 대부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SF소설 작가들이 미래의 시스템과 기계의 구조,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침이 마르도록 소개할 때, 필립 k. 딕은 '그런 것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데, 네가 주인공이라면 어쩌겠어?'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래서 그의 첨예한 '소재' 만을 가져다가 쓴 영화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실정이고 그의 팬들은 원작과 전혀 다른 이야기에 이제 이골이 나는 것도 이골이 날 정도로 그러려니 하며 보고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또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직접 '필립 k. 딕의 오랜 팬이 이 영화에 대해 실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원작과의 괴리를 개봉 전에 소개했지만, 영화나 원작이나 서로 다른 결말을 보여주기 때문에 생각의 여지를 확장시켜 준 것에는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SF의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라서 지금 감상해도 1도 이질감이 없는 근 미래적인 배경이나 화려하기 그지없는 액션 시퀀스 들은 '마스터 피스' 라는 칭호가 모자랄 정도로 잘 만든 수작이다(제목이 되어버린 '마이너리티 리포트' 자체가 누락된 건 어쩔 수 없지만).



더구나 이제(!) 한국도 꽤 SF소설들을 환영하는 눈치라서(사실은 몇 년 됐음), 필립 k. 딕의 원작을 소재로한 영화들이 리메이크 되거나 새로 개봉할 즈음에 아주 착한 출판사들이 그의 단편들을 새로 묶어 책으로 출간해 주는 터라 나는 언제나 환영하는 입장이다.


곧 블레이드 러너(1982) 의 공식(!) 후속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기획에 리들리 스콧, 감독에 드니 빌뇌브, 주연은 라이언 고슬링 & 해리슨 포드)'도 개봉하니 원작(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훼손이야 어찌됐든 필립 k. 딕의 오래된 팬으로서 마냥 기쁠 따름이다.

(영화의 흥망이야 뭐 내 알바 아니지♥︎)



'헐리우드가 사랑한 작가' 라는 오명같은 닉네임에 걸맞지 않게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들이 중구난방으로 영화화 되지 않아서 좀 아쉬울 따름. 이왕 갖다 쓸거면 팍팍 좀 영화화 해 달라고! 원작과 다른 건 이미 통달했으니까.




















+

참고로 원작 소설의 번역판은 집사재에서 2002년에 발간한 필립 k. 딕의 단편집, '마이너리티 리포트' 와 폴라북스(현대문학의 자회사)에서 2015년에 발간한 단편집, '마이너리티 리포트' 모두를 읽었는데 역시 근간 서적이 번역이라던지 어투 따위가 읽기 편해서 원작을 이해하는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


게다가 최근 단편집들(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 토탈리콜 원작 / 역시 폴라북스에서 발간) 은 예전처럼 SF불모지(!) 였던 한국 서적 시장에 안 어울리는 책이었던 얇디 얇은 필립 k. 딕의 단편집의 서너배는 넘는 볼륨이 정말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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