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정신은 집에 두고 육체만 출근한 남자의 퇴근길

by realnorth

#1. 어린 시절의 나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되고 싶었다.
아니 그 보다는 어떤 대단한 운명 같은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운명 앞에서 거대한 무언가를 이루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그 시절에 가졌던 삶에 대한 기대감은 사뭇 진지한 것이어서, 나는 나를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부모님의 사랑으로부터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신은 나를 위해 분명하고도 우아한 무언가를 예비해놓았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린 시절의 나를 들뜨게 했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감은 그 시절의 나를 행복하게 했다.


#2. 눈을 뜬 어느날, 세계는 현실이 되어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눈을 갖게되면서, 아니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내가 다른 이에 비에 유달리 특별할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삶에 대한 이런 저런 기대를 하고 있었으며, 각자의 소망에 따라 하루하루의 노력을 끊임없이 저축하고 있었다. 현실은 어떤 용도에 사용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사물처럼, 더 이상의 상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삶에 대한 상상을 놓아버리기 시작하면서 삶은 재미없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더는 기대할 것이 없어졌다.


#3. 도보 퇴근길
나는 지난달부터 가끔 기분이 내킬때마다,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서 퇴근하곤 했다. 이것은 매우 즉흥적인 행동으로, 나는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도보로 퇴근할지를 결정한다. 나의 퇴근길은 약 13km의 거리로, 여덣개의 지하철역과 두개의 버스정류장을 경유한다. 도보로 퇴근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큰 결심과 여러가지 준비물을 동반하는 행동인지도 모른다. 도보로 퇴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만일 누군가 도보로 퇴근하길 원한다면 그는 운동화와 체육복을 준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탈은 즉흥적일 때에만 로맨틱한 법이다. 오랜 숙고와 결심, 그리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행해지는 일탈이 해방감을 가져다 줄 가능성은 만무하다. 삶을 즐기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즐기기 위한 일에 있어서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 것이다.

#4. 이동의 생산성
현대적 도시생활은 "이동"이라는 행위를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더 빠르고 안전하고 값싸게 이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단을 발명해왔다.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행위가 좀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동"한다.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기위해 "이동"한다. 일을 하거나, 저녁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는 것이 "이동"의 목적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동"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기를 원한다. "이동"의 경제성 문제는, 차가 밀리는 바람에 약속에 늦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것이다.


#5.이동의 생산성과 생산성의 함정, 그리고 일탈의 로맨티시즘
도보로 귀가하는 것은 내게 꽤나 의미있는 일탈행위 중에 하나다. 왜냐하면 도보는 "이동의 생산성"에 대한 현대사회의 가치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보는 "이동의 생산성"을 포기하는 대신, 걷는 사람에게 경치와 여유, 시간과 사색을 선사한다. 지하철은 좁고 어두운 터널을 달릴 뿐, 내가 어디를 지나치고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지하철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간과 행선지를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해온다. 지하철의 일방적인 통보는 몹시 건조한 것이어서, 나의 "이동"은 그저 하나의 진척율로 표기된다. 버스는 지하철에 비해 승객에게 보다 많은 풍경을 허락하며, 비교적 아름다운 목소리로 행선지를 알려온다. 하지만, 버스는 때때로 급정거를 함으로써, 다른 승객과 자신의 안전을 위해 경치에만 빠져있으면 안된다는 점을 통지한다. 버스 승객은 타인의 발을 밟거나 급정거에 넘어지는 일을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자가용은 혼자만의 공간을 허락한다. 하지만 운전자는 수시로 달라지는 앞차와의 간격을 적당히 유지하고자 노력하면서도, 언제 끼어들지 모르는 옆차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자가용 운전자는 대개 사랑에 빠진 여인 같아서, 앞차(애인)와의 간격을 적당히 유지하려 든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대개, 앞차(애인)와의 간격이 너무 멀어지면 옆차(훼방꾼)가 끼어들고, 앞차(애인)와 너무 가까워지면 사고가 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운전자의 비극은 "주행의 결말"이 "사랑에 빠진 여인의 결말"과 다르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앞차(애인)와의 간격 조정을 통해 사랑을 얻지만, 운전자는 주행이 끝났을때 애인(앞차)을 잃는다. 자가용 운전자는 주차를 할때마다 이별을 경험한다.


#6. 습관은 누구에게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전철에 오르거나,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 숱한 출퇴근을 반복하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습관은 누구에게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우리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너무 많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표현은 언젠가부터 "흔하고 일상적인 것", "그동안 자주 보아왔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으며, 내 습관과도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습관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살기 보다는, "삶 다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


#7. 자연스러운 삶이란 무엇일까.
도보는 "이동의 생산성"을 거부함과 동시에, "자연스러운 삶"을 선사한다. 시간이 나의 발자국 하나하나마다 초침과 분침을 흘리며 석양을 색칠할 때마다, 나는 오늘의 태양에 인사를 건넨다. "안녕. 너는 오늘도 참 수고가 많았구나. 내일 떠오를 태양에게도 늦지 않게 도착해 달라고 전해줘." 도보는 "이동의 생산성"을 포기하는 대신, 오늘을 추억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도보는 생산적인 이동 수단들이 가져다 주지 못했던 수많은 상상과 이야기를 전해준다. 일상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척박한 현실"처럼 느껴지거나, 현실이 "용도가 정해져 있는 사물처럼 아무런 상상력도 허락하지 않을 때", 시간과 함께 걷다보면, 운명적인 삶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되살아난다. 사랑하는 그녀의 붉은 입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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