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여행기

온갖 잡념들로 간신히 이어붙인

by realnorth

며칠 전부터 여행을 계획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만으로 단행된 짧은 여행. 여행 당일 토요일 늦잠을 잤다. 목적지나 여행 일정도 정하지 않은 마당에, 서두를 이유따윈 없었다. 느긋하게 점심까지 챙겨먹고 길을 나섰다.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에 올랐다. 속초는 각종 편의시설과 상업시설, 현대화된 도시, 근대적 어촌, 이북 출신 이주민 마을 등 근현대사적 스펙트럼을 고스란이 간직한 도시다. 저녁 7시.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웬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내가 낯선 외지인임을 직감했는지, 좋은 방을 싸게 주겠다며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서울에서만 수십년을 살아온 나는 그 아주머니를 경계했다. 오랜 도시생활은,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낯선 타인을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기에, 나는 아주머니를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외지에 왔기 때문일까? 아주머니를 외면하던 나는, 갑작스럽게 마음속에서 솟아 오르는 반항심을 제어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경계하는 내 모습에서, "바보같은 계산들로 가득차서는, 세상을 경계하는 유치함"을 발견했다. 결국 나는 몇 가지를 확인한 뒤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아주머니는 젊은 서울 샌님의 경계심을 익숙하게 보아 왔다는 듯, 멀찍이 앞서가며 길을 열었다. 멀찍이 앞서 걷는 아주머니가 내심 고마웠다. 나는 객기를 이기지 못하고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한게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와의 물리적 거리감이 그런 내 걱정을 경감시켜 준 것이 사실이다. 그녀가 소개해준 방은 해수욕장이 내다보이는 14층 콘도였다. 방을 잡고 저녁을 먹기 위해 콘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열쇠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나는 열쇠로 문이 잠기지 않는 것을 항의하는 것에 번거로움을 느껴, 아예 가방을 들고 나왔다. 문이 열려있었지만, 가져갈 물건이 없으니 괜찮을 꺼라 생각했다. 문이 잠기지 않는다는 점을 주인 아주머니에게 따져 묻거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훔쳐갈만한 물건들을 죄다 들고 나오는 편리한 선택을 했다. 짐은 귀찮고 번거로웠지만, 적어도 이런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시간에 쫓겨왔다. 시간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채, 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도 마음만은 늘 시간에 쫓겨왔다. 마음은 바쁘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로비를 지나면서, 경비 아저씨와 마주쳤다. 경비 아저씨의 눈빛에서 나는, "늘 시간에 쫓기면서도, 실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은 내 자신"을 느꼈다. 나의 마음은 시간에 쫓기기 시작한 다음부터, 불필요한 초조함만을 느끼며 나 자신을 좀먹고 있었던 셈이다. 경비아저씨를 지나치면서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하지만 사실 어딘지 모르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선선하고 상쾌했다. 저녁식사로 매운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유난히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숙소는 속초 해수욕장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숙소 인근에는 노래방, 편의점, 피씨방, 음식점 등 제법 번화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수많은 간판 불빛들은, 지난 여름의 유난했던 더위와 해수욕장 인파, 그리고 그 지난한 열기를, 화석처럼 증명하고 있었다.


가을은, 먼 길을 걸어온 오래된 친구처럼, 지난 여름 해수욕장의 열기를 서글프게 어루만졌다. 상가의 불빛이 너무 강해,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다. 발 아래에서 아삭이는 모래사장만이, 이곳이 바닷가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바람이 메마른 내 얼굴을 간지를 때, 이웃한 연인은 폭죽을 터뜨렸다. 그들은 연신 즐거워하며, 여름의 흥분과 열기가 빠져나간 해변에서, 옅은 노래 소리를 흘렸다. 모래 사장이 발 밑에서 유난히 아삭거렸다.

부득부득, 아삭아삭, 사각사각.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생동감이 독특한 질감으로 전해져 왔다. 그래, 존재한다는 건 이런 질감을 이야기하는 걸꺼야. 나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바닷가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가느다란 바람은 잔잔한 파도로 재현되었다. 그렇다면, 저 파도의 본질은 가느다란 바람인가? 하지만, 바다가 파도의 본질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파도와 수평선만을 확인 했을 뿐, 바다는 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그 누가 바다를 보았다고 하는가. 누구도 바다는 보지 못한다. 우리는 다만, 파도와 수평선을 보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바다라는 실체는 과연 존재하는가? 파도의 본질은 바다인가, 바람인가. 수평선 먼 곳에서 갑자기 환한 불빛이 떠올랐다. 오징어잡이 배였다.


어쩐지 그 오징어배는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그 오징어배는 나보다 파도를 더 많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귓가를 간질이는 희미한 바람도, 가슴을 후벼파는 강렬한 바람도, 나보다 더 많이 경험하지 않았나? 잔잔한 파도는 해안에 밀려왔다가, 이내 다음번 파도와 맞부딪혀 밀려갔다. 그 "일정한 반복"은, '불필요한 고민'과 '무의미한 일상'이 끝없이 반복될 뿐인 '인생'을 함축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반복 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나는 나의 삶은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다.


모래 위를 쓰다듬듯, 슬며시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 그리고 뒤이어 밀려오는 또 다른 잔잔한 파도. 밀려 나가는 파도, 그리고 그 파도와 맞부딪혀 새하얀 물거품을 만들어내는 뒤이은 파도. 그러나 거기엔 새하얀 물거품만이 현재할 뿐, "반복"은 무의미하게 "반복"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결국 그 "반복"에서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희망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냥, "모르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그럭저럭 잠에 들었다.

새벽 5시. 해가 떠올랐다. 장관이었다.

어떤 시에서는 소 혓바닥처럼 붉은 태양이라고 했었다.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돈다고 주장했던 몇몇 과학자는 과학적 규명을 위해 "이야기"를 포기했다. 지구는 태양의 주변을 돌지 않는다. 다만 태양은 수평선에서 매일 매일 새로 태어난다. 나는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일렁이는 태양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탄생은 축복받을 만한 일인가? 그렇다. 탄생은 축복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탄생이, 어젯밤에 보았던 "무의미한 반복"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면? 그런데도 탄생이란 과연 축복받을 일인가?


나는 역사학자처럼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인생은 허무하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철학자처럼 "그럼에도 존재한다는 사건은 언제나 특별하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외지인 답게 아침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컵라면으로 때웠다. 편의점을 나와서, 북으로 진격했다. 속초 해수욕장에서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올라가니, "아바이 마을"이라는 곳이 나왔다. 북한 주민들이 터를 잡아 만들어진 곳이라는데, 자세한 역사적 내용은 알지 못한다. 아바이 마을은, 마치 '포카리스웨트" 광고에 나오는 그리스 해안 마을처럼 아름다운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서로다른 형형 색색의 지붕과 오래전 시골 마을의 구수한 느낌, 잘 정비된 도로와 해변. 이곳에서 나는, 정적 속에서의 그리움 같은 걸 느꼈다.


아바이 마을은, 청초 호수와 동해 사이에 형성되어 있으며, 일종의 방파제처럼 속초의 해안을 지킨다. 이방인이 되어 이곳 저곳 배회하는 내게, 이 마을은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아바이 마을은 이방인이 만든 마을이기에, 속초 시내에 만들어질 수는 없었던 걸까? 아무도 찾지 않는 해안가 외진 곳. 하지만 양지 바른 곳에서, 아바이 마을은 가느다란 봄바람과 거센 여름 폭풍을 견디며 세월처럼 지내왔을 것이다. 아바이 마을에는 오징어순대가 유명했다. 하지만 난 여행지의 별미 같은 것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혼자 떠돌면서,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속에 빠지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아바이 마을을 지나는데, 웬 커플들이 내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커플, 그리고 단풍구경나온 아주머니 일행, 몇몇 젊은 무리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의 사진기는 "역사와 종교, 바람과 구름, 파도와 영혼"이 사멸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시각적 감각으로 퇴화된 바람소리는, 내 귓가를 맴돌다가 이내 어디론가 흩어졌다.


나는 다리 위로 올라갔다. 아바이 마을과 인접한 도로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아직 미완성이다. 2007년에 이곳에 홀로 여행을 왔을 때에도 저 다리는 미완성이었다. 조금도 공사가 진척되지 않았다. 시간은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과거를 정당화시키는 법이지만, 몇년째 완성되지 않는 다리를 정당화시켜주지 못했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테마]는 "시간의 정당화"를 피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다리 난간에 수많은 낙서로 남겨져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리를 내려왔다. 다시 아바이 마을을 거쳐 속초 해수욕장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이번에는 마을의 다른 쪽 길로 접어들었다. 마을에는 오징어 건조대와, 아바이 젓갈 공판장등이 들어서 있었다. 공판장 한켠에서는 십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젓갈에 쓸 생선을 손질하고 있었다. 바다 비린내가 사방에 번졌다.


조금 더 걸어가자, "청호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학교는 대단한 운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제법 커다란 놀이터와, 멋드러진 소나무 숲, 드넓은 운동장, 작지만 깨끗하고 깔끔한 건물 한 동. 나는 소나무 숲에서 색종이로 접은 딱지 하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딱지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접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딱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게나 접힌 딱지라고 해서 딱지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작은 딱지 앞에서, 나는 무척이나 어려운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딱지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절대 딱지는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딱지의 보편적 형상은 그것과 다르다. 그럼에도 그것의 재료는 색종이로 이루어져 있다. 미완의 이것을 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그래! " 인간 " 이라고 부르자.

이 미완의 색종이를, 그리고 아까 그 미완의 다리를 인간 이라고 부르자. 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철없는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소진하면서, 오늘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을 살자는 다짐 속에 실은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이라고 부르자.


학교를 나와 속초 해수욕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볼이 새빨간 아이들이 콧물을 훔치며, 학교앞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앉아 저들끼리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바람빠진 축구공, 촌스러운 자전거 몇대가 눈에 띄었다. 얼굴이 새하얀 좋은 옷을 입은 도시의 젊은이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바닷 바람에 터버린 아이들의 붉은 뺨이었다.


속초 해수욕장은 어젯 밤의 음흉했던 기운을 털어내고, 한결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각색되어 있었다. 속을 알수 없었던 파도는 제법 맑게 빛났다. 날씨도 화창했다. 나는 해변에 인접한 소나무 숲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해변에 소나무를 심는 것은 바람에 모래가 날려 인근 도로나 시설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분명 인공적으로 설치된 것인데, 제법 운치가 있고, 해변과 꽤 잘 어울렸다. 사실 해변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나 뿐이었다. 유치한 조명과 불빛, 간판들 마저도 해변과 제법 어울리는 듯 했다. 나는 고속 터미널 근처에서 오징어 순대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서울로 돌아왔다.


1박 2일짜리 여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 새하얀 종이를 꺼내놓을 것이다. 그리고는 분명 생각의 길을 따라,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적어나갈 것이다. 유럽을 제패하겠다던 히틀러의 야심으로, 매일 매일의 노력이 좀 더 나은 삶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200X년을 적어 보아야겠다.


- 200X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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