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1.
상존하는 천박함 사이를 비집고, 제 아무리 똘똘한 체 해봐야 별 다른 소용도 없을 법한 그런 하루가 지나갔다.
성공을 향한 전 지구적 환상과, 시대를 아우르는 욕망의 그림자로부터 나는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2.
누나가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며칠 전 누나와 참치회를 먹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인간은 자기 존재를 변명해대기 바쁜 법이다.
참치회를 먹으면서, 나는 누나에게 얼마나 많은 변명을 집어던졌는가.
변명은 변명을 낳았고, 나는 내가 던져놓은 변명들 사이에 둘러싸여 점차 초라해져갔다.
#3.
참치회를 먹은 우리들은, 스마트폰을 알아보기 위해, 가까운 휴대폰 가게로 향했다.
나는 휴대폰 대리점 점원보다도 스마트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었고, 통신업계 뉴스에 대해 그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어쩌면 더 이상은 그들에게 속을 수 없었던 걸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인데.....
나는 시대의 그림자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걸까.
#4.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들이 때로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최근 지하철 지면 광고에서 종종 눈에 띄는 것은 "얼굴 뼈를 전문적으로 성형한다"는 성형외과 광고다.
길거리를 지나는 버스에는 낯선 여인의 젓가슴을 억지로 그려넣은 가슴성형 전문 병원의 광고가 큼지막하게 그려져있다.
자신이 토해낸 욕망을 다시금 집어삼키는 사람들은 자신이 집어삼킨 욕망을 이상이라는 껍데기에 씌워 열정이라는 가격표를 붙이고는 진열대에 올려놓는다.
#5.
조금 쯤은 내려놓을 줄을 알아야 한다.
내려놓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아주 쉽고도 무식한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 평균적인 일상"으로 "세계의 모든 질적 우위"를 빨아들일 것만 같은 이 명제의 사이사이에는 제법 그럴듯한 진실성이 묻어있다.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와는 무관하게, 이 명제는 겸손을 가르친다.
만일 내게 겸손이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그 명제는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충분히 옳은 것이 아닐까.
#6.
세상에 대해 분개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다.
추악한 이웃을 보면서 절망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의 로맨스같은 것은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