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비로울 것도 없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오늘 하루도 무척이나 지겹고, 지루한 것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에 사로잡혔을 때쯤..
배가 고파왔다.
우리에게는 분명한 빛으로 반짝이는 별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오른손에는 지도가 있었다.
우리는 그저, 지도를 보고 걷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왼손에는 파이프 담배가 있었다.
하지만 신이 죽었다고 외쳤을 때, 우리의 별은 빛을 잃었고,
허구가 되었다.
신이 죽었을 때, 우리는 균형을 잃었다.
욕망의 해석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려던 시도들은 무위에 그쳤고,
인간을 해방시키겠다던 온갖 시도들은 욕망으로 사물화되어 거래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발랄한 세상이다.
배가 고파서....
혹은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식당을 찾는 것...
신비로울 것도 없는 지루한 반복.
번거롭기만 한 일상을 끝도 없이 이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인생이라고 부른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식사를 하는 것이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지루하더라도 이어나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현기증이 일었다.
#2.
물고기. 물고기자리, 물.
아침부터 어쩐 일인지 자꾸만 [물고기]라는 단어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생선이라는 말은, 물고기가 식재료임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물고기라는 말은 어딘가 모호하다.
[물고기 답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
물에서 살기에 적합한 몸체와, 물속 먹이사슬에 최적화된 욕망과, 물속에서 바라보는 태양을 사랑하는 감수성을 갖춘 것을 물고기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물속에서 바라보는 태양을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진 물고기라는 것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가.
어떻게 보자면, 물고기라는 말은 아무런 미적 실재성도 담보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
물고기라는 말은 그저, 개굴개굴 하고 울기 때문에 개구리라고 이름하듯이, 물속에서 사는 고기이기에 물고기라고 부를 뿐인 걸까? 우리가 물고기를 신비롭게 여긴다면, 물고기가 물의 신비로움 안에서 물과 모종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고기는 물의 신비로움 안에서, 비늘을 닦아내고, 지느러미를 살찌우면서 그 빛깔을 신비롭게 닦아나갔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물고기의 모습에서 만일 조금이라도 신비로움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면, 물고기의 아름다움은 [물]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고기]에 의한 것일까? [물]이 물고기의 신비로움을 설명하는 근거라면, 물고기의 신비로움을 차라리 [물]이라는 단어로 대신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물]과 [물고기]를 구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를 그저 [고기]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고기라는 말에서 물이 빠지면, 물고기에게 아무런 이름도 부여하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된다.
물고기에게 [물]은 어떤 의미일까.
물고기는 [물]을 통해 자신을 만나는게 아닐까..
물고기는 [물]도 아니고, [고기]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 조금 더 가깝다.
물고기는 그래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물은 물고기의 숨결이 되지만, 물고기는 물의 이야기가 된다.
물이 없는 물고기는 죽음을 맞지만, 물고기가 없는 물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번거롭고, 지루하지만, 거를 수 없는 저녁 식사 식탁에 오른 저 생선은,
어쩌다가 물고기에서 생선이 되었을까.
부서져 흩어진 기억 속에서 그는 분명 물고기였을텐데....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오랜 생각에 잠기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왜 하필이면 생선 반찬인가...
지느러미와 비늘을 걷어내고 나니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어차피 삶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법.
#.3
인생은 한방. 즐거운 토요일. 로또를 하세요.
맞는 말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 말은 작은 성취들을 모아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많이 인용된다.
하지만 티끌을 모아 만든 태산은, 결국 티끌일 뿐이다.
너무 많은 양의 티끌일 뿐이다.
태산같이 많은 티끌일 뿐이다.
티끌이 수없이 모여봐야, 태산의 양적 정의에만 부합할 뿐 질적 범주 안에서 의미를 찾지는 못한다.
이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면,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 말은 목적지가 아무리 멀어도,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가서 마침내는 도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인용된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인생의 목적지는 어느 순간에는 분명해 보이지만, 다음 순간에는 불분명해 보이고, 그 다음 순간에는 바뀌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천리길]이란 말은 문학적 수사일 뿐이다.
우리는 대체로 목적지 없는 인생의 길 위에서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한다.
인생을 길을 걷는 행위에 비유하는 명언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 명언들은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언급하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구매한 복권 두 장.
꽝 다음 기회에.
그리고, 당첨. 500원.
.......
....
나는...
어느 날 꿈에서 성모마리아를 뵈었던 날처럼,
언젠가 다시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얌전히 접어서,
인덱스를 붙여두었다.
그리고는 책장을 덮었다.
언젠가 복습할 날이 오겠지.
나는 복권을 접어 작은 비행기를 만든 뒤 옥상으로 올라갔다.
두꺼운 종이는 하늘로 날아오르지도 못한 채 곤두박질쳤다.
중력과 은총.
어떤 은총을 받은 사람도,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그나저나 저녁 반찬으로 나온 그 생선은 참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