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에서 익숙한 것으로

by realnorth

인간에게, '낯선 것'은 두려운 것이다. 인간은 흔히 낯선 것으로부터 무의식적인 공포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심리학적인 표현처럼 보이니까, 무의식적이라는 표현은 잠시 유보해두기로 할까?


나는 인간에게 의식과 무의식의 구분이 있기 이전에, 우리에게는 그리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인간이라는 본질'이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신이 사물화되어버린 시대에, 여전히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본질적인 것으로서의 인간적 삶이 구현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당히 비본질적인 삶의 양태속에 이미 들어와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본질이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믿음과 희망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이미 오래전에 폐기되었어야 할, 어떤 경우에는 이미 허위임이 증명되어버린 것들에 대한 희망 말이다. 확인 불가능한 것으로보이는 개념과 관념들 사이에서, 더군다나 나 자신도 이미 어느정도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다소 비생산적이고 공허하기까지한 믿음을 나는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보다 좀 더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언젠가를 꿈꾼다.


나는 지난 한달간 낯선 것들 앞에서 주저헤야 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했고,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려야만 했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인간은 원래 낯선 것을 두려워한다지만, 야생의 위협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는 낯선 것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새로운 유흥으로 자리잡은 모양이다. 사람들은 쉬운 만남을 즐긴다.


첫 만남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이나 설레임만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서술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야생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된 문명 사회에서 낯선 것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학습한게 아닐까? 나는 낯선 것들 앞에서, 혹은 낯선 사람들 앞에서, 혹은 낯선 분위기 앞에서, 유연하게 처신하지 못하는 편이다. 나는 때때로 당황하고, 불편해하며, 부끄러워한다. 적어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렇다.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나는 어떤 행동이나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때때로 잘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걸 보면, 나는 아직도 야생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가 타자를 마주할때 가장 중요한건, 낯선 환경이나 낯선 타인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지가 아니다. 그런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 우리가 낯선 이를 만나는 그 순간에 흥분과 희열, 설레임을 느끼는지, 두려움과 불편함, 어색함을 느끼는지의 여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낯선 것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적어도 우리가 낯선 이를 사랑하겠노라 결심했다면, 그리고 우리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면, 중요한 것은 익숙해져가는 과정이 아닐까?


조금씩 더 깊어져서, 조금씩 더 인간적인 만남을 만들어가는 것. 격렬할 필요도 없이, 그저 점잖게 앉아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런 만남 말이다. 나의 20대는 자의든 타의든 지나치게 격렬했던 것 같다. 나는 쉽게 흥분했고, 쉽게 화를 냈고, 쉽게 절망했고, 쉽게 슬퍼했다. 이제는 잔잔한 마음으로, 내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낯선 것들을 조금씩 익숙하게 만들어가고 싶다.


쉽진 않겠지만...

나쁜 습관들이 때때로 내 결심을 흩뜨리고, 내 마음을 분산시켜 놓겠지만...

그렇지만, 이제는 좀 더 튼튼한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대하고 싶다.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구현된 세상속에서 내 모습을 확인해 나가고 싶다.

그러려면, 믿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갖는 것.

슬프고 힘든 와중에도 마음을 다해 삶을 사랑하는 것.

그런 연습들이 점점 더 큰 나를 만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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