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실 발음부터 익히는 것이 진짜 중요하거든요.
에이, 이 나이에 발음연습부터 하는 것은 좀 그래요. 영어를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발음연습은 나중에 할게요.
라는 생각을 하는 영어학습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학교 다닐 때, 취업준비 할 때, 수능과 토익이라는 시험을 경험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읽기와 듣기는 기초적인 수준정도는 할 줄 안다. 그래서, 발음연습이 읽기나 듣기보다 더 낮은 수준의 학습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저런 리액션을 많이 보았었다.
소리문자를 Phonetic이라고 한다. Phonetic의 진정한 의미는 예외 없이 정말 소리 나는 대로 읽는 것이기 때문에, 스페인어가 완벽한 Phonetic 언어이다. 예를 들어 "Donde esta el metro?"라고 쓰고 "돈데 에스타 엘 메뜨로?"라고 읽으면 된다. 만약 "knife"를 스페인 방식으로 읽었다면 "나이프"가 아니라 "크나이프"로 읽어야 한다. 반면, 영어나 한국어는 묵음도 많고, 예외발음도 많기 때문에, 라틴계열 언어에서는 완벽한 Phonetic 언어라고 인정받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글자인 한자와 비교하면 Phonetic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영어든 한글이든 소리문자로 분류해도 충분히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영어의 알페벳을 만드신 분과 세종대왕님께서 준비하신 문자들의 소리는 완벽하게 같지 않다. 일단 세종대왕님께서는 영어의 R, V, F, S, Z와 같은 소리를 표기하는 문자를 만들지 않으셨다. 애초에 우리나라 말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소리였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나머지 A, B, C와 같은 알파벳도 한글로 "에이", "비", "씨"처럼 정직하게 발음되지 않고, "에-이", "음-비-이", "씨-이"와 같이 발음이 된다. 게다가, 한글은 글자마다 분절이 있고 음절이 있으며, 받침이 있는 단어들이 있기 때문에, 글자 사이사이마다 혀에 힘을 주고 똑똑 부러뜨려 발음을 해야 하는 반면, 영어는 모음중심으로 음절이 생기고, 받침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I want some more water -아원 썸모 워러"처럼 연음으로 발음이 된다는 점에서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이 아주 큰 차이점을 뒤로하고, 눈과 귀로만 공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눈으로 공부하는 것이야 큰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즉, 읽기와 쓰기는 크게 영향을 안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나, 듣기와 말하기가 제대로 될지가 의문이다. 어? 읽기가 되면 보통 듣기가 되는데, 우리가 듣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읽는 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소리 나는지 몰라서이지 않을까? 어? 쓰기가 되면 보통 말하기가 되는데, 내가 쓴 것이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이, 유창한 말하기의 방해요소가 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 말이다.
그만큼 발음연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연습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이며, 오랫동안 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언제까지 발음연습만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며, 10대가 아닌 이상 어차피 완벽한 발음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서 타협하고 다음 진도로 넘어가야 할 지 판단하는 것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 스윙처럼 처음에 잘못 배우거나 대충 발음하는 버릇을 들이면, 고치기가 몇 배로 힘이 들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하는 기본기이다. 맺음말에서도 언급했지만, 익숙하고 자연스럽다고 느낄 때까지 성대모사 방식으로 연습해 보시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전개와 결말을 알고서도 다시 찾게 만드는 명작을 찾아서 매일 무한반복으로 시청을 하거나 청취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한글 자막이 다 외워질 정도로 말이다. 어느 영화던, 드라마던 간에 정말 멋지거나 인상 깊은 대사나 연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스크립트는 귀에 자연스럽게 잘 들어온다. 예를 들어 겨울왕국에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처럼 말이다. 내가 고른 명작의 전개와 결말이 익숙해질 때가 되면, 분명히 좋아하거나 인상 깊은 대사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대사들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따라 해 볼 때가 된 것이다. 그 배우의 성대모사를 연습한다 생각하고, 들리는 소리대로 연습을 해보자. 한글 자막은 이쯤 되면 외웠으니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정확히 어떤 단어들로 그 대사가 만들어졌는지는 크게 신경 쓰지 말고, 들리는 대로 최대한 똑같이 소리 내 보기 위해 노력해 본다는 뜻이다. 영화 알라딘에서 윌 스미스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무슨 말하는지는 몰라도, 내 귀에 "이유 가라 네부어 해더 프으렌 라잌 미이."라고 들렸다면, 최대한 그 소리를 똑같이 따라 하려고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대사 하나, 하나를 따라 하다 보면, 성대모사를 빙자한 발음연습을 할 수가 있다. 어차피, 사전을 펼쳐놓고 발음기호를 따라 하며 혼자서 이 발음이 맞는지 확신도 안서는 연습을 할 바에, 배우들을 성대모사하는 편이 학습효과가 더 좋고, 훨씬 재미있으며, 학습의 지속가능성도 높다. 마치 팝송을 연습하여 부를 때 영어는 잘 못해도 발음은 끝내주는 가수들처럼 말이다.
제대로 된 소리를 못 익히면, 듣고 말하는 것을 학습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각종 표현이나 단어들을 외우고 학습하는데도 어려움을 줄지도 모른다. 게다가, 말하기를 하거나 쓰기를 처음 할 때에는 어디서 들어본 단어나 표현들을 머릿속으로 상기시켜서 말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제대로 된 소리를 알고 있어야 기억도 오래가고, 그 기억을 꺼내어 쓸 때 빠르고 자연스럽게 쓸 수가 있다. 어차피 하루 이틀 만에 승부를 볼 공부도 아니고, 특정 시험을 위해서 준비하는 영어공부도 아니라면, 아니 특정 시험을 위해서 준비하는 영어공부라 할지라도, 이 방법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하며, 높은 수준의 영어구사능력을 원한다면, 그 전개와 결말을 알고서도 다시 찾아보고 있는 명작의 성대모사를 통해, 영어의 소리와 발음에 먼저 익숙해지도록 하자. 물론, 단어공부를 한다던가, 문법공부를 하는 것을 병행해도 상관은 없지만, 내가 쏟을 수 있는 한정된 에너지를 생각한다면, 마음을 여유롭게 가지고 한동안 성대모사를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해 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많은 대사를 연습하면 할수록 더 좋은 것은 당연하다.
참고로, 나의 경우엔 미드 빅뱅이론을 따라 했었고, 길고 빠른 대사들에도 도전해 보고, 느리고 짧지만 우리나라에는 비슷한 소리가 없어 발음하기가 어려운 단어나 대사들(예를 들어 squarrel, parrellel, world, ruler와 같이 R이 난무하여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 말이다.)도 도전해 보며, 발음교정이 상당히 많이 됨을 느꼈었다.
또 연습을 추천하는 문장 중 하나는 "Five pink flowers and a coffee pot"인데, F발음과 P발음의 구분, 올바른 P발음법, T발음이 단어의 끝에 올 때, 임팩트 있게 발음을 맺는 방법 등을 연습할 수가 있다. 완벽하게 할 필요도, 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졌다고 느껴질 때까지는 다른 진도로 넘어가기 전에 재미도 붙일 겸 계속해보시길 추천한다. 낮은 난이도의 Tongue Twist(우리나라로 따지면 "철수책상철책상"과 같은 어려운 발음 연습하기) 중 하나인데, 처음에는 생각보다 발음이 부드럽게 되지 않아서, 킹받지만 교정효과는 생각보다 좋았었다. 어차피, 다음 진도부터는 발음연습보다 더 에너지가 많이 쓰이게 될지도 모르니 벌써부터 급한 마음에 무리해서 지치지 말았으면 하는 취지도 어느 정도 반영된 추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