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를 보고난 후 들었던 꼰대같은 생각들
강대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수십년간의 경제성장기를 겪어온 베이비부머 세대부터 지금세대까지, 한국사람들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왔다고 본다. 자의던 타의던 이 나라 저 나라 다녀보고 나니, 한국문화는 참으로 독특하는 것을 느낀다. 이 사회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말도 안되게 관대하고, 어떤 다른 행동에 대해서는 유난히도 야박하기도 하다.
내일의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소비문화도 그 정도가 타 문화권에 비해 심한 것 같다. 이것은 가진 것에 비해 많이쓰고 사는 것으로 보여지거나, 쓰는 것에 비해 적게 버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은 나도 그런경향이 심하다.
우수한 사회보장과 치한에 대해 콕 집어 이야기하라고 하면, 그 범위와 정의에 대해 뭐라 논하기는 쉽지않지만, 핸드폰이나 지갑의 도난에 대한 걱정처럼, 외국에서는 큰일날 일이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고, 유교문화를 바탕에 둔 것 때문인지, 경제성장에 매몰되어 있던 시절에 "손님은 왕이다"라는 생각이 배경이 된 것인지는 몰라도, 상하관계가 확실한 한국형 상업적 갑을관계가 극단적으로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친절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주입되어, 외국에서는 별 것 아닌 일이 한국에서는 큰일날 일이 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가 등에 업은 강대국은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우리를 계속 업어주고 있기는 한건가? 라는 질문에 요즘에는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렵다. 첫 번째로, 우리가 강대국을 등에업고 성장했다는 말 자체가 거슬리게 들릴 것이고, 두 번째로,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시기가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시대에 맞지않는 기성세대의 조언을 거슬리지만 받아들이고 싶은 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가정 역시 참이라고 여기는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기축통화로서 금본위제가 사라져도 석유무역의 독점과 국방력이 그 가치를 보전해 주면서, 지속적으로 시행했던 양적완화가 나는 우리나라와 같은 동맹국 성장의 발판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코로나같은 사건 등을 떠나서도 그 낙수효과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엄습할 무렵, 그 낙수물을 받은자와 아직 받지 못한자 사이의 양분화, 저성장, 젊은이들의 구직난, 오르지 않는 임금,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각종 사회적 기회비용들, 피부로 와닿지 않는 기성세대들이 고수하는, 어렵고, 아프고, 무섭고, 힘든 문화와 사회시스템, 이직에 호의적이지 않은 직업시장의 경직 등이 0명대 출산율을 기록하며 회색빛 대한민국은 침몰하고 있다고 뉴스에도 나온다.
원래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자식세대는 그들보다 그 숫자가 작기 때문에 앞선세대의 부양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큰 그림에서 바라보면, 우린 전쟁이후 냉전시대에서 자유주의측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써 일시적으로 성장하던 시대를 겪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천연자원이 없어서 인적자원이라도 풍부해야 했던 나라는 베이비부밍을 시행했고, 치열한 경쟁환경이 자연스레 조성되어 같은 값에 우수한 인력을 생산하는 것이 그 나라의 경쟁력이라, 베이비 부밍 시대의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높은 경쟁난이도를 겪고,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박한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고착화 된 문화가 그들의 자식세대에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낙수물이 마르기 시작하니, 풍부한 낙수물에 익숙한 부모세대와 말라가는 낙수물이 보이는 자식세대간의 세대갈등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라가는 낙수물을 생각하면 인구의 증가는 개인의 행복의 시각으로 볼 때 별로 행복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누어야 하는 사람이 적어야 할당몫이 늘어날 테니, 저출산은 집단지성이 판단한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적자원(만)이 풍부한 것으로 성장하는 나라는 낙수물이 끊기는 순간 지속가능한 성장구조가 아니게 되기에, 예견된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는, 국가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부심에 도전하는 생각이기 되기에, 사회적으로 미리 대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민족은 지적능력이 뛰어나고 근면성실해서 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늘 경험했던 국가였으니까 말이다.
탈조선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2012년 경이었던 것 같다. 청년 사이에서 "늦은 이민"을 뜻하는 단어였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어학연수, 교환학생 등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긴 중산층의 자녀들이 훨씬 치열하지 않은 경쟁, 불필요한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야박하지 않은 보상과 사회적 지위 등을 경험하고 나서, 이 곳에서의 삶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선택하자는 마음을 대변했던 단어라 본다. 고소득층은 이미 자녀들을 일찍이 유학을 보내거나 대학과정부터 유학을 보내서 자연스럽게 외국에서 자리잡을수 있도록 했기에, 탈조선은 그들이 쓰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당연한 진로를 탈출이라 부르지 않으니까.
난 슈카형의 이야기를 많이 공감한다. 밝고 가볍게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우리세대부터 진지하게 걱정해야할 씁쓸한 현실과 미래가 묻어있기 때문이다.
슈카형의 유튜브 채널에는 이따금씩 국민연금, 건강보험, 출생율 등 우리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해학적으로 환기하는 컨텐츠들이 업로드된다.
10년 뒤, 20년 뒤를 과도하게 걱정하며 사는 것은 어리석은 삶의 태도라는데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걱정을 궂이 사서할 필요는 없다, 일어날 확률이 낮다면.
그러나, 그 걱정이 명백하게 일어날 것 같다면, 슈카형 이야기처럼 뭔가 대비는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저 멀리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데, 그 쓰나미가 도착하고 나서 걱정하면 너무 늦다. 결국, 지금까지 우리는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국가로써,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에서 나름대로 유리한 상황이었었기에(had been),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걱정을 사서하는 사람처럼 여겼던, 기성세대와 함께 생활해 왔다.
대학원에서 배운 단어중에 "NIMTOO"라는 말이 있었다. NIMBY(Not In My Back Yard)와 비슷한 개념인데, 위치가 아니라 시기에 대한 용어로써 Not In My Term Of Office(NIMTOO)라는 뜻이다. 즉 NIMBY는 지역적 집단 이기주의를 가르키는 단어라면, NIMTOO는 세대간 집단 이기주의 가르키는 사회과학 용어이다.
내 임기동안은 하지 않겠다. NIMTOO (Not In My Term Of Office)
인류는 "집단"이던 "세대"던 사회적으로 이기적인 것 같다. 내가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특징으로 국한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지원(Support)하려 노력하고 좋은 유산(Legacy) 남겨서, 그들이 번영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부모세대"는 "자식세대"를 위한 사회적 유산(Heritage)에는 인색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점점 커졌던 낙수물에 적응한 탓에 "조삼"다음에는 "모사"가 반드시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다음세대를 미리 걱정하는, 국가 및 사회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앞서 말한 사회적 현상들을 반추해보면, 그 생각이 공론화 되는 타이밍이 쓰나미가 도착할 때 즈음이 되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된다.
개인적 이유들로 이민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이유들로 한국은 이미 그 쓰나미를 피할 수 없는 사회라 생각하기에 "탈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이민1세대가 되는 것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탈조선은 판돈이 비싼 도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교육과정의 이수가 당연시되는 어린나이에 유학을 와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구해서 살게 되었던, 또는 처음부터 조선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낙수물의 수혜를 이미 받았거나, 원래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거나, 이민1세대로서의 도박을 했던 그들의 부모세대가 이미 탈조선을 시켜준 경우에 해당되니, 탈조선이라는 도박의 진정한 난이도를 마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가정하겠다.
평범한 중산층에서 자라나, 늦은나이에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을 떠나(져버리고) 외국으로 이민을 하고자 하는, 내가 알고있는 "일반적인 경우"는 크게 6가지 정도로 추려지는 것 같다.
자국민들이 크게 선호하지 않는 Engineering 분야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F-1(외국인 학생비자)를 따고, 취업을 통해 취업비자를 받은 후 영주권을 신청하는 방법이다. 비싼 대학(원) 학비로 F-1비자를 사는 격이라 볼 수도 있다. 물론 능력이 출중하여 세계적인 대학교 대학원에 장학금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게다가 외국인에게 더 비싼 학비를 받기에, 자국민보다 더 많은 교육비가 들어간다. 학업기간이 끝나고 60일이 지나면 F-1비자가 만료되기 때문에, 반드시 그 기간안에 직장을 구하고, H1B(취업비자 신청)을 해야한다. H1B비자를 신청하고 나면, 승인이 날 때까지 직장을 다닐 수가 있는데, 문제는 H1B비자가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100% 승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국가별로 거의 제비뽑기 형식으로 승인이 되기 때문에, 승인을 받기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 딱히 노력할 것이 없다고 한다. Engineering 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은 H1B비자를 여러번(3번?) 신청할 수 있다고 들었고, 그 기간동안 고용주 측에서 영주권 프로세스를 진행해준다면, 운이 좋은 경우 H1B비자 없이 영주권을 바로 취득하여 탈조선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고도 한다. 따라서, 탈조선을 위한 비자와 영주권에 초점을 둔다면, H1B비자를 여러 번 신청할 수 있어 비자신청 횟수와 승인 확률이 높은 Engineering 분야로 진학해야 한다.
이 경우는 능력자들에 해당되는데, 미국의 회사(예를 들어 반도체분야 등)에서 한국의 기술인력을 스카우트개념으로 채용하거나, 예술분야(예를 들어 디자이너 등)에서 능력이 출중해서 고용주가 자발적으로 영주권을 신청해주고 고용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반도체분야에서 뛰어난 지식을 갖고있어서 미국회사로 바로 취업되고 영주권을 받은 경우를 보았고, 웹 디자이너로 일을하는데, 취업비자가 만료될 무렵 고용주가 예술분야 초청비자로 영주권을 취득한 경우도 보았다. 근데, 생각해보니 이건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것 같다.
미국은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캐나다의 경우는 개인사업자가 영주권신청을 해줄수 있다고 들었다. 캐나다에서 개인사업을 하시는 분들 밑에서 일을 하면서 그들의 고용증명을 통해 영주권을 신청하는데, 영주권의 획득여부는 그들의 의지에 달려있기에 완전한 갑/을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좋은 분을 만나지 못해 쓰라린 경험만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이 역시 매몰비용과 시간이 리스크에 비해 큰 방법이다. 게다가, 가족이 있어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에는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기 힘들기에, 실패했을 때 더 힘들고 쓰라릴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워킹홀리데이를 통한 탈조선 방법이 여기에 해당되겠다.
본인도 건너건너 듣기만 했다. 10억정도 있으면 미국으로의 투자이민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근데, 이것도 "일반적인 경우"는 아닌 것 같다. 난 10억이 없고, 10억이 있다 하더라도, 10억으로 영주권을 받고 난 다음 통장잔고 0원으로 미국에서 하루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부자라면, 궂이 탈조선을 고민하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 지점을 둔 외국계 회사들이 제법있다. 지인의 지인의 케이스인데, 외국계 회사에 취업한 다음 미국본사에 지속적으로 현지로 발령을 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이라 들었다. 현지 법인에서 미국 본사발령을 요청하는 사람을 본사에서 원한다면 고용주로써 영주권신청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텐데, 헤쳐나가는 난이도와 확률이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비용과 리스크는 낮지만 확률이 높을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해외에 법인이 있는 경우, 주재원으로 선발이 되고, 현지로 발령이 나서, 근무하는 기간 동안 영주권을 신청하는 경우이다. S전자 또는 H전자 미국 주재원으로 선발되어 발령을 받으면 L-1(노동비자)를 발급받아 근무를 하게 되는데, 현지법인에서 자녀교육비 절감 등을 목적으로 근무기간 동안에 영주권신청을 하는 것이 정례화 되어있다고 한다. 영주권이 나오면 현지에서 퇴직 후 동종계열 현지 하청업체 등으로 이직한 다음, 베스킨라빈스나 서브웨이같은 프랜차이즈를 차리거나, 젊고 능력이 있다면, 현지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도 있겠다. 가장 리스크가 적고, 불확실성도 높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기회가 허락되어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미혼 주재원으로서 미국에서 혼자 지냈다. 그리고,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민을 추진할 의지도 희박했다. 그러나, 나 역시 탈조선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과연 이민을 하면 어떨까?" 하며 인터넷에 각종 이민후기들을 한동안 찾아보며 지냈다. 그리고, 탈조선한 이민1세대로서 겪어야 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고, 그 것들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만약 당신이 이민을 고민하고 있고, 어떤방법이던 "일반적인 이민"을 추진한다면, 당신은 이민1세대 이다. 주유소, 세탁소 등 고생스런 일을 하면서 정착했던 것은 예전버전의 이민후기 클리쉐다. 지금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규모의 격차와 이민정책의 변화로 그마저도 쉽지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민1세대가 된다면 당신이 각오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민1.5세대나 이민2세대인 자식들은 부모만큼의 고생을 하진 않을 가능성이 높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 것이지만, 이민1세대는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성경에서도 이방인은 사회적 약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민을 마음먹고 타국으로 가게된 사람을 이방인이라 부른다. 다른 문화권에서 피부색도, 언어도, 사회적 통념과 상식도 다른데다가 생활기반조차 없어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많이 외로울 것이다. 가족이 있어 함께 이민간 경우라면 그나마 좀 나을지언데, 독신이라 혼자 나간다면 기댈 곳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훨씬 제한적이라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은 더 심할 것이다. 각종 차별과 부당한 대우도 종종 발생할 것인데, 이를 하소연 할 곳도 없을지도 모른다. 지역마다 물론 다르겠지만, 미국은 생각보다 보수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같이 일은 할지언정, 인종과 문화가 다르면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고 친구가 되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 교회나 성당에 나가 주말에 종교활동을 통해 개인적인 사회생활(socializing)을 하고, 나같이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그날만을 기다리며 한 주를 보내는 사람도 많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기회도 굉장히 제한적이다. 어느동네를 가더라도 이방인 사회는 좁다. 만남을 가질 기회를 갖는 것도 어렵지만, 만났다가 헤어지게 되면, 다른사람을 만나는 것 뿐만 아니라 기존에 같이 어울리던 지인들도 만나기 어려워진다. 취미활동도 가져보고, 동호회도 들어보았지만,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가진 동족간의 관계만 못하기 때문에 종교활동이 필수적이라 봐도 무방하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각자 이방인으로써의 신분, 즉 비자가 다르다. 그리고, 어떤 비자를 가지고 있던, 영주권 취득이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에, 영주권 소유여부에 따라 신분을 나누어 생각한다. 그리고, 영주권은 결혼제도를 통해서 쉐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영주권의 소유여부가 중요한 결혼조건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 영주권때문에 그러니?" 하는 타인의 의심에서 자유로울수 없을지도 몰라 서러울 때가 많다. 특히 어렵게 연애를 시작했는데, 상대의 가족들이 저렇게 생각하면 더 쓰라리다.
이방인의 삶은 외롭고 서러우며 경제적으로 팍팍할 것이다. 웬만한 서구나라는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비쌀 것이고, 영주권도 없는 이방인이 제대로 된 급여를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헐값에 노동을 제공해야 할 수도 있고, 휴식을 보장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국에 두고온 가족들을 만날 기회가 제한된다는 것은 매우 힘든 고통일 것이다. 친했던 그렇지 않았던, 나의 핏줄이고 추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인데, 일년에 한 번도 고향에 다녀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던 지인은 4~5년 주기로 다녀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다녀올 때마다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볼 때마다 늙어가시는 부모님과 변해가는 친구들을 보며 확실치 않은 다음을 기약하는 것과 소원해지는 관계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민이라는 것은 한국에서 살지 않고 다른나라에서 살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에, 기존 사회관계들도 자연스레 멀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본 어느 대학교수의 강연영상 중에서 "두 남자가 있다고 가정하고, 한 명은 원래 미국에서 살아온 백인, 한 명은 미국으로의 이민을 선택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을 때, 과연 이 두 명이 동일한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동일한 직장을 가지고 있다면, 사회/경제적 지위의 격차를 돈으로 매겼을 때, 자신은 1년 30만불의 연봉격차라고 생각한다" 라는 주제로 토론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타지에서 서럽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타지라서 서럽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타지에서 서러운 이유는 그 나라의 사람들과 나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격차가 피부로 와닿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의 가족, 친구들은 사회적 자산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고, 휴식이나 위로가 필요할 때 찾아갈 사람이 있으며, 크던 작던 조상들로부터 물려내려오는 유형적/무형적 유산이 있을 것이며, 정보를 공유할 동문/동기들이 한순간 없어지게 되면, 그 빈자리와 그들의 소중함이 비로소 느껴지고, 그 빈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발생되는 지출과 정서적 힘듦을 겪게되면, 내가 갖고있던 기존의 사회적 자산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고 그리워 하게 된다.
그 사회에서 토착민보다 이민자들이 연 30만불만큼 더 간절하기 때문에, 더 좋은 선택지를 쟁취하기 위해 더 치열한 경쟁을 하게되는데, 그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나와 같은 이민자들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고액연봉을 받는 "엔지니어(그 곳에서는 컴퓨터공학을 의미한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도, 중국, 한국과 같은 이민자들이고, 이들은 선택받기 위해 직장을 구하고 나서도 꾸준하게 스터디를 하며, 다음직장을 준비한다. 슬프게도 스터디를 같이하고, 서로 의지하는 동족은 친구이자 경쟁자가 된다. 믿고 의지한 만큼, 깊은 배신의 상처가 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그리고, 이민자로써, 고용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는 직업범위의 한계도 생각해야한다.
서구권의 직업들은 우리나라처럼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가 아니다. 경영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직이 잦다. 30년씩 근무해야 성취할 수 있는 직업적 스킬들은 사실 전문분야가 아니라면 많지가 않다. 나의 몸값이 실시간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삶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고액연봉을 받거나,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이 상장되어 큰 돈을 벌게되어 빠른 은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소수의 행운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건강이 허락할 때 까지 일하며 돈을 버는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료비와 건강보험료가 매우 비싸기 때문이며, 이민 1.5세대 또는 2세대인 자식세대가 대학교육을 마치고, 자립할 때 까지 좋은환경에서 서럽지 않게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의외로 굉장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기 때문에, 토착민과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야한다.
근데, 오늘날 또는 내일의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겪을 설움이라면, 차라리 이민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탈조선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이 살게될 삶보다 그 용기가 부럽다.
정서적 안정은 사회적 자산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민을 가게되면, 최소한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며 살게된다. 언어는 생각이고, 성격이고, 자아를 표현하는 도구인데, 뒤늦게 배운 두 번째 언어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기존 언어를 사용하는 자아는 그 성숙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설이 있다. 나는 그 것을 느낄만큼 오랫동안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어느날 성당에서 만난 친했던 형이 "성인이 되어서 이민을 온 자들은, 영어를 사용할 때는 사회화되고 성숙한 어른일지 몰라도, 모국어를 쓸 때는, 이민을 온 나이대 그대로의 정서를 갖고있는 경우가 많아서, 나이만큼 어른스럽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는 말을 나에게 해주었던 적이 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두 개의 자아로 살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두 개의 자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분리된다는 점이 이민자로서 힘든점이라고 했다.
최근 "한국이 싫어서"라는 영화가 OTT서비스에서 개봉했고, "일반적인"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봄직한 제목이자 내용이기에, 얼른 보았다. 30대 초반의 늦은 나이에 현지 대학에 진학하여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졸업 후 취업을 통해 영주권을 취득하여 한국을 떠나 사는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타지생활을 겪어본 자로써, 그 감성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공감의 수준도 깊었다.
"한국이 싫다"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씁쓸하게 다시금 상기가 되니, 사면초가같이 갖혀버려 행복으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현 시대의 사람들의 답답함과 저렇게까지 우리는 우리나라를 싫어하고 있다는 슬픈 사실이 느껴져서 한동안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한국이 싫다"라는 생각으로 미리 여러번 살펴보았던 주제였기에 막연히 탈조선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글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고, 글을 마무리 한다.
탈조선에 내가 모르는 다른 다양한 방법들도 있겠지만, 마냥 희망과 행복을 꿈꾸어 본다, 이민을 가고 싶은 그 나라의 사람들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