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우정을 위하여

어느 강연에서 만나다

by 리얼팔

어느 강연에서 이런 말을 만났습니다.

“스스로와의 우정을 쌓아 가세요.”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와의 우정’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와 우정을 쌓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꽤나 흥미로운 발상이라 느껴졌습니다.

우정이 가능하려면 먼저 ‘나’를 나에게서 분리해내야 할 것입니다.

객체화된 또 다른 ‘나’와 내가 사귀며,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그 시간을 함께 쌓아가는 것.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교차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그렇게 나 자신을 분리해서 바라본 적도, 나 자신과 동행하며 우정을 쌓으려는 시도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육십이 가까워 오는 이 시점에, 이러한 방식으로 나를 대하지 못해 본 채 살아온 날들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몰려왔습니다.

최근 들어 이렇듯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때면, 어김없이 이런 감정 먼저 듭니다.

“이제야 이런 걸 알게 되다니.”

왜일까요?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보다 더 많아지기 시작한 나이라는 자각.

그것이 어쩌면 이 안타까움의 깊이를 더해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나와 사귄다’는 것.

그건 나를 나에게서 분리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분리된 ‘나’가 너무도 ‘나’라는 점입니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나 자신에게 무관심했고, 나에 대해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 감정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말이지요.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의 삶도 그 시선들이 바라는 바 대로 살아왔습니다.

밖에 나가야 하니까,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한 예의니까.

그러나 정작 집에서 혼자 있을 때는 대충 씻고, 꾸미지 않고, 귀찮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방치하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타인을 위한 예의’였지, 나 자신에 대한 배려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예의’를 나 자신에게도 차리고 싶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멋지게 가꾸고, 좋은 음식을 먹고,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감정을 돌보는 일.

이제부터 이 모든 것을 나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대부분 아주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던것 같습니다.

배가 고프니까 음식을 먹었고, 피곤하니까 잠을 잤으며, 외롭고 공허하니까 무언가에 몰두하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겉으로 보기엔 자기를 위한 선택처럼 보였지만, 그 실상은 대부분 잠재의식 속, 그리고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원초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생존을 위한 반사적인 반응이었고,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자기 돌봄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는 달라지고 싶습니다.

배가 고프니까 먹는 것이 아니라,

“너 뭐 먹고 싶어?”

라고 조심스럽게 내게 묻는 마음으로,

“요즘 뭐에 가장 관심 있어?”

라고 내면을 향해 진심 어린 관심을 건네는 방식으로,

나 자신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이제는 나를 단지 욕구 충족만을 위함이 아닌,

하나의 소중한 존재로 대하며,

나와 함께 걷고, 대화하고, 돌보는 태도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객체화된 나를 바라보면, 게으름을 부리던 나도 보입니다.

번아웃되어 지친 나도 보이고,

몰입하여 어떤 성과를 이루어낸 나도 보입니다.

그 모든 나를 향해 따뜻한 선물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런 생각들이 오늘, 난초 한 송이처럼 제 안에서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흔들고,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와의 동행이라는 새롭고 흥미로운 발상으로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관계를 맺고, 우정을 쌓아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십 년, 이십 년이 흐른 뒤,

나는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나 자신과 아주 돈독한 우정을 맺으며 살아왔다.”

그 말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날이 오기를, 가만히 소망합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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