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즈음 이면 제 회사가 참여하는 행사가 하나 있습니다. 고객사에서 주최하는 ' 컨벤션'입니다. 이 행사는 고객사의 각 본부장들이 직접 나서서 작년 한 해의 실적을 공유하고, 올해의 사업 방향을 발표하며, 향후 협력 방안에 대해 협력사들과 함께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공식 발표가 끝나면 질의응답 시간도 주어지고, 마지막에는 맛있는 식사까지 곁들여지죠. 단순한 설명회가 아니라, 상호 신뢰와 파트너십을 다지는 의미 있는 행사입니다.
성실함으로 오른 자리, 그러나 말에는 흔적이 남는다
이 자리의 중심은 단연 고객사의 본부장들입니다. 연구소장, 구매본부장, 제조본부장, 품질본부장 등 각 분야를 책임지는 고위 임원들이 직접 나서서 발표를 이끄는데, 대기업에서 한 부서를 총괄하시는 분들이다 보니 연설이나 발표 능력도 뛰어난 편입니다.
그중 한 분, 구매본부장은 제가 이 업계에 들어올 때부터 자주 이름을 들었던 분이었습니다. 직접 함께 일할 기회는 없었지만, 중간 관리자 시절부터 ‘성실’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던 분이었고, 팀장, 임원, 그리고 본부장까지 오직 꾸준함으로 승진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경로로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분의 발표를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경상도 출신으로 강한 사투리를 썼고, 발표 중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특유의 말버릇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발표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약간 방해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토록 성실하게 일하셔서 지금의 자리에 오르신 분이, 말하는 습관은 왜 그대로 두었을까.’
녹음은 거울이다, 말의 습관을 비추는 거울
그 생각은 오래 남지 않았지만, 요즘 제가 글쓰기를 하며 다시 떠올랐습니다. 요즘은 떠오른 생각들을 그 자리에서 메모하거나, 운전 중일 때는 음성 녹음 앱을 활용해 아이디어를 기록해두곤 합니다. 요즘은 녹음을 텍스트로 자동 전환해주는 앱이 잘 나와 있어서 그 기능을 자주 씁니다. 그리고 그 텍스트를 읽고 고치고 다시 다듬는 과정을 거치며 글을 완성해 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 말버릇이었습니다. 평소엔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녹음된 제 말을 글로 바꾸어 읽다 보니 제가 자주 반복하는 말투나 군더더기 표현이 눈에 띄게 드러나더군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분명히 거슬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녹음을 할 때 의식적으로 조심하게 되었고, 실제로 조심하며 녹음한 파일은 훨씬 매끄럽고 깔끔한 문장으로 구성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치려는 의식, 무심코 되살아나는 무의식
반면, 아무런 의식 없이 녹음을 하면 예외 없이 그 나쁜 말버릇들이 다시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고객사 본부장도, 혹시 저와 같은 녹음 후 피드백의 경험이 있으셨다면, 본인의 말버릇을 알아채고 교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말의 습관이라는 건 자기 입으로 나올 때는 절대 인지하지 못합니다. 오직 녹음해서 들어보거나, 누군가가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는 한, 평생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말에서 행동으로, 습관에서 나를 발견하다
그런데 이건 단지 ‘말’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의 여러 행동 속에서도 그런 무의식적인 습관을 반복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습관일 수도 있고, 성장을 막는 작은 버릇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발견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말의 습관을 녹음을 통해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것을 고치기 위해 의식적으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그 생각을 더 확장해보았습니다. 나의 언어뿐 아니라 생각의 습관, 행동의 습관, 태도의 습관도 이렇게 들여다보고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말은 곧 사람이고,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이 반복해서 하는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작은 습관 하나가 말의 힘을 약화시키고, 진심을 가리는 안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습관을 관찰하며, 발견하며 더 나은 나로 성장해 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