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3 생각의분석학/윤리학(토론요약)

생각 자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by 리얼팔

이번 주 하브독토를 할 내용은 이어지는 다음장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한다는 것" 으로 가기 위한 이론적 기반을 다지는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지만 그냥 넘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철학자의 철학적인 설명들은 제가 처음에 가졌던 예상처럼 읽기에 숨가쁜 내용들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아셨는지 넉넉히 2주동안 충분히 읽고 소화 시킬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문장 나누기 – 생각은 도구이며, 도구의 차이는 곧 세계 인식의 차이이다


SK회장 님과 나눈 문장나누기. 저와 거의 같은 부분의 문장을 골라 주셨습니다. 76~87쪽에서 “문화권의 차이는 단순한 정보 차이가 아닌, 세상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생각의 도구 차이”라는 문장, 특히 동양과 서양의 사고 차이를 ‘도구’라는 은유로 설명한 저자의 통찰은, 단순한 지식이나 관념의 차원이 아니라 도구가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차원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확장됩니다. 어떤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일의 방식이 달라지듯, 사고의 도구가 달라지면 세계를 해석하는 틀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저자는 신화적 사고, 존재론적 사고, 관계적 사고의 변천 과정을 통해 각 사고가 지녔던 오류를 비추고, 그 오류를 넘어서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사고들이 또다시 다른 오류—조작주의—에 빠질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조작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지 지적 태도의 문제를 넘어서, 살아 있는 존재로 머물기 위한 필수적인 실천이기도 합니다.


87쪽에서 등장한 “한 사람이 가진 지식이 그 사람의 사고 틀을 형성한다”는 구절은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저는 더 나아가서 야전 사령관과 본부 보좌관, 초등학교 교사와 고등학교 교사가 서로 다른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지식의 기반뿐만 아니라 경험의 차이에서도 비롯된다는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SK회장 님은 이론적으로는 환원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사고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언급하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 – 조작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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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고 방식의 역사적 진화를 정리하며 질문에 접근했습니다. 신화적 사고가 주술에 갇히자 존재론적 사고가 등장했고, 그것이 다시 실체주의의 오류에 빠지자 관계적 사고가 대안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관계적 사고조차 조작주의로 환원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조작주의를 “세상을 해석하고 다룰 수 있는 통제 체계로 축소하는 사고”라고 정의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자상함, 지식, 권위 등 몇 개의 지표로만 평가하고 다룬다면, 그것은 이미 사고의 굳어짐이며, 세상을 움켜쥐려는 폭력적 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SK회장 님은 과거 소비재 마케팅에서 겪었던 실패 경험을 통해 조작주의의 실제적 위험을 생생하게 증언해주셨습니다. "90%가 좋다고 했다"는 소비자 조사 통계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결과, 수백억 원의 손실로 이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숫자를 맹신한 것이 문제였다는 고백은, 비판적 사고의 결여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준파이퍼 님은 이 경험을 고착화된 사고의 전형으로 보며, 조작주의는 결국 숫자, 관료주의, 실증주의, 그리고 텅 빈 권위에 사로잡힌 상태라고 정리했습니다. 질문만이 이 상태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묻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사고의 방식임을 함께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고착화되어 있지 않은가?” – 질문의 힘, 교회를 향하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교회의 현실로 옮겨갔습니다. 준파이퍼 님은 조작주의의 대표적인 예로 지역 교회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들었습니다. 교회를 공동체가 아닌, 교단과 건물, 숫자 중심으로 바라보는 사고. 그 안에서 경쟁이 발생하고, 수평 이동이 양적 부흥으로 포장되는 현실은 교회를 조작주의적으로 소비하는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SK회장 님은 “교회를 옮기면 마치 기업의 고객이 이탈한 것처럼 여기고, 부흥을 숫자로 판단한다면 우리는 이미 형식의 노예”라고 하셨습니다.


준파이퍼 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 ‘하나님 나라 복음 DNA’ 제자 훈련 세미나를 통해 한국 교회 안에 만연한 개교회주의와 성도 중심주의, 기복주의의 한계를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여전히 진실한 공동체가 아닌 종교적 습관의 공간에 머무르고 있고, 제자 훈련 또한 과정의 완성이 아니라 관계의 재생산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훈련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또 다른 제자를 세우는 ‘재생산’으로 이어져야 진짜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멈춰 서 있는 듯했습니다. 결국 변화의 시작은 ‘회심’이며, 그 회심을 통해 안팎의 변혁이 일어나고, 그것이 타인에게 흘러갈 때 비로소 제자도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호수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회심의 불씨를 지피는 제사장으로서의 사명감이라는 성찰이 깊이 들었습니다."


질문 2 – 지금, 나는 어떤 비판적 사고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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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이번 대선을 겪으면서 저는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정말 절실히 느꼈습니다. 정치권의 논조나 언론 보도를 보다 보면, 평소에는 훌륭한 글을 써왔던 지식인들조차 너무나도 편향된 시선으로 글을 쓰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학력이나 경력을 보면 석박사에 서울대 출신들인데, 왜 이렇게까지 편향된 글을 쓸까 생각해 보면, 결국 정치적 계산이나 시류에 편승하려는 의도가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편향된 글들이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혐오를 조장하면서, 자기 진영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문제는 그런 글들이 너무 교묘하게 쓰여 있어서,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금방 영향을 받고 끌려갈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흐름에 비판 없이 휩쓸리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정치적인 판단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기준 없이 그냥 감정이나 유행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결국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고, 진영 논리에 휩싸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을 겪으면서 더욱더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SK회장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와 사회, 나아가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기준은 성경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편을 가르고, 분열을 조장하며, 서로를 향해 정죄의 말을 던지는 일은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라고 명하신 뜻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입니다. 상대방이 누구이든, 그가 가진 과거의 경력이나 은사, 영향력에 상관없이,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면 되는 것이고, 오직 성경이 허락한 길만 따르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지역 교회들이 ‘내 교회’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실, 그리고 지도자인 목회자들이 먼저 내려놓지 않는 모습은 결국 교회 공동체 전체에 아픔을 남깁니다. 열왕기서를 보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망해버린 북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를 성경이 왜 그렇게 길게 기록해 두셨겠습니까. 하지 말라는 것, 그 길을 따라가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결국, 교회가 다시 하나 되려면 모두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안에서 논리적이거나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설명하는 일이 드물다는 점을 종종 느낍니다. 대부분의 신앙적 대화는 묵시적 동의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교리나 믿음의 내용을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끔 불신자나 초신자들과의 대화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교리나 신념에 대해 “왜 그렇죠?”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질문 앞에서 우리는 때로 아무 말도 못하고 당황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신앙이 감정적이고 체험적인 측면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인간의 유한한 지성으로 무한한 것을 담아내려는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쪽에서 높아지려 하기보다는, 그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처럼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낮추어 설명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성적인 접근이 오히려 논리적인 설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설명과 공감이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다시 풀어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라고 생각을 나누었고


이 말에 SK회장님은 "논리적 사고란 어떤 고차원적 철학이 아니라, 단순히 '근거를 대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나 초신자가 교회에 왔을 때는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하여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고백하는 날이 오면 그 말씀이 비로소 이해되는 날도 올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 후에야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 그 말씀이 그 뜻이었구나”라고 깨달았던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설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작정 믿으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반지성주의에 빠지는 길입니다. 그와 더불어,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외형적인 화려함에는 아낌없이 열정을 쏟으면서도, 정작 영혼을 살리는 일에는 인색한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나의 삶을 거는 데는 여전히 주저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교회를 비판하기 전에, 내가 바로 그 교회의 일원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향한 비판은 나를 향한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 성찰은 성경을 통한 끊임없는 공부와 질문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세 번 통독했지만, 지금도 매번 새롭게 느껴집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렇습니다. 망각하고, 또 되새기며 배우는 존재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저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라고 말해주셨습니다


메이플 님께서는 우리 한국 교회 안에서의 비판적 사고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눠주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종종 ‘덮어놓고 믿는 믿음’을 미덕처럼 여기는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어, 신중한 문제 제기조차 부정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사랑방 모임에서 단지 함께 고민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눈 말이 목회자에게 전달되어 불편했던 경험도 있었고, 그로 인해 생각을 말로 꺼내는 일 자체를 주저하게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메이플 님은 오랜 시간 영어 예배 공동체에 몸담으셨기에, 서양 문화권의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비판적 사고의 분위기와 비교하며, 동양 특히 한국 교회 내 문화가 자유로운 사유와 표현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체감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책에서 강 교수님이 언급한 대로 문화적 배경이 사고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며, 최근 정치적 사안들로 인해 가족 간에도 정치 이야기는 피해야 하는 주제가 되어버렸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어떤 비판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기도 전에, 그것을 꺼내놓을 수 없는 문화적 장벽 앞에서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는 성찰을 공유해주었습니다.


준파이퍼 님은 자신이 마음을 많이 쏟고 애정을 가졌던 교회 청년과의 관계가 정치적인 이유로 단절된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특정 책을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화를 끊는 모습을 보며, 정치적 신념이 관계와 신앙마저 초월해버리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과거 강남 지역의 어머니들과 하브루타를 나눴던 경험도 덧붙이며,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 사이에서는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이에 나는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좋았던 관계마저 완전히 깨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SNS 상에서의 자기 의견 표현이 오히려 대인관계를 조심스럽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편안히 나누기보다는 입을 다물게 되는 요즘의 분위기 속에서, 정치가 사람 사이의 신뢰와 존중을 해치고 있다는 성찰이 담긴 대화였습니다.


질문 3 – 칸트가 말한 공동체적 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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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마지막 질문은 칸트가 제시한 공동체적 사고 규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라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생각하라

항상 자기 자신과 일관되게 생각하라


저의 경험과 곁들여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생각하라’는 칸트의 규칙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직장에서 여러 부서와의 경계가 모호한 업무를 수행할 때, 바쁜 내 일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타인의 업무까지 고려하며 행동한다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물론 조금 더 남아서 그 일을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또 제 일에 구멍이 생기게 되지요. 최근 제가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 많았는데, 한날은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울먹이며 "아빠, 요즘 왜 자꾸 늦어요?"라고 묻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아렸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던 제 선택이 결국 제 아이의 저녁 시간을 빼앗고 말았죠. 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기에 가족과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칸트의 규칙은 우리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지침이지만, 그것이 현실의 고통 없이 실현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메이플 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저는 사람들의 고민을 많이 들어주는 일을 하다 보니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첫 번째, 자신의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예를 들면, 어떤 고민을 얘기하면서 ‘언니, 근데 누구는 이렇게 말하더라, 또 누구는 저렇게 말하더라’ 하고, 항상 타인의 생각만을 전하는 경우가 많았죠.


심지어 책에서 누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하면, 저는 ‘정말 그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도 어떤 사람의 의견일 뿐이지 진리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책에 나온 내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걸 정답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이 사람이 이 내용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어요. 결국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거죠.


두 번째로 ‘역지사지’. 이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갈등의 80%는 없앨 수 있는 길인데, 요즘은 그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이해관계가 조금이라도 얽혀 있다면 대부분 실패하죠. 특히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면 아예 하지를 않아요. 저희 세대만 해도 ‘지금은 좀 손해여도 나중을 위해서, 혹은 관계를 위해서’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정말 그런 여유가 없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저는 ‘일관되게 생각하라’는 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한 번은 어려운 일을 겪은 적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신념과 원칙이 없었다면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다행히 책도 읽고, 이런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저만의 가치관을 갖게 되었고, 덕분에 그 순간을 비교적 흔들림 없이 통과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개똥철학이라도 자기만의 철학을 꼭 가져라. 그리고 그것을 일관되게 지켜라.’ 상황에 따라 너무 쉽게 바뀌는 가치관은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칸트가 말한 세 가지 규칙은 그래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공동체 의식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역지사지겠죠.”


이에 SK회장 님은 ‘가치관’에 대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 가치관이 완벽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도 덧붙이셨습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가치관을 말하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한 그 가치관이 고난이나 어려움을 만날 때 흔들리기도 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이어 그는 “내가 세운 가치관은 변할 수 있다. 아무리 정확하게 세웠다고 해도 그렇다”고 말하며, 진정 흔들림 없는 가치관은 ‘성경적 가치관’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준파이퍼 님은 『생각한다는 것』 2장 전체를 정리하면서, 함께 읽으며 느꼈던 난해함과 동시에 하브루타를 통한 배움의 깊이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철학적인 개념들이 많이 등장하고, 생소한 표현들이 많아 처음엔 어렵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렇게 좀 쉽게 말할 수 있는 걸, 아… 이렇게도 어렵게 말씀하실 수 있구나 싶었죠.”라며 특유의 유머로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난해함이 오히려 깊은 사고의 계기를 주었다며, 하브루타를 통해 개념을 명확히 다잡을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이어 앞으로 함께할 3장은 적용점과 은혜의 포인트가 많아 더욱 기대된다는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또한 하브루타 공동체의 지속성과 재생산의 중요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나누시며, 단순한 모임 참여를 넘어, 이 운동이 건강하게 이어지기 위해선 새로운 리더의 세움과 시간의 헌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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