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같은 종류의 존재들 사이에 마땅히 따라야 할 사물적 조리.”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윤리란 어떤것일까 그 뜻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약간 낮선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윤리를 흔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만 적용합니다. ‘도덕’이나 ‘예절’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런데 사전에서 찾은 의미는 그렇게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사물이나 존재들 사이에 조리가 있다는 겁니다.
예를들어 연필의 윤리란 무엇일까요? 잘 깎여 있고, 손에 쥐기 편하며, 부드럽게 써지는 것. 연필이 연필로서 충실할 때, 우리는 그것을 좋은 연필이라 부르며 칭찬합니다. 연필은 쓰면 쓸수록 짧아져서 결국엔 몽땅연필이 되어야 하겠죠? 아마 그것이 연필의 윤리일 겁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생각이 생각다우려면, 어떤 윤리를 따라야 할까요? 그런 물음에서 이 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논리적인 생각, 윤리의 시작점
생각의 윤리를 ‘추론’이라는 단어에서부터 풀어갑니다. 생각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어떤 근거를 가지고 다음 생각을 이끌어내는 일, 곧 추론이라는 겁니다. 그 추론이 논리적인지 따져보는 것이 곧 비판적 사고이며, 이것이 생각의 첫 번째 윤리입니다.
비판적 사고란 단지 반대하거나 날카롭게 지적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나의 감정이나 기분이 아니라, 타당한 근거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비판적 사고는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도리, 생각의 예의입니다. 이는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태도이기도 합니다.
창의적 사고, 규칙을 넘는 용기
그러나 생각의 윤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새로운 뭔가가 생겨나는 데는 연역적 또는 귀납적이라 설명되는 논리적 추론방법과 무관하진 않지만 더 나아간 새로운 사고인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고 이것이 두번째 생각의 윤리라는 것입니다. 책은 창의적 사고를 두 가지 패턴으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낡은 체계를 문제 삼아 새로운 규칙 체계 속으로 통합하는 방식, 둘째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두 체계를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통해 기존의 세계관을 새롭게 했듯, 낡은 틀을 넘어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또한 달과 조수의 관계처럼, 멀어 보이는 두 세계가 사실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 깨달음이, 낡은 체계 너머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이런 창의성은 단지 새로움을 만드는 재주가 아니라, 기존의 자명함을 뛰어넘는 초월의 태도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초월은 무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존의 규칙과 체계를 깊이 이해한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책은 말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윤리입니다. 생각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잘 알기 때문에 넘어설 수 있는 것이며, 그 초월 또한 절제와 분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입니다.
공동체적 사고, 생각의 완성
마지막으로 칸트의 '공통감' 개념을 빌려와 공동체적 사고를 설명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과 일관되게 생각하라는 세 가지 규칙은 단지 철학자의 문장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생각의 윤리입니다.
특히 세 번째 규칙은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나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 손해가 된다 해도 일관되게 지킬 수 있는가. 생각의 윤리는 결국 나를 넘어서 타인을 향하고, 공동체를 지향하게 만듭니다.
아울러 공동체적 사고는 미적 감수성과도 연결됩니다. 타인의 감정, 고통, 기대, 아름다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 윤리는 차가운 판단이 아니라, 따뜻한 공감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생각의 윤리를 다시 묻다
책은 말합니다. 생각이란 단지 똑똑함의 문제가 아니며, 삶의 전부를 통합하는 인격적 활동이라고.
생각은 늘 ‘다른 무엇’을 향합니다. 의심은 의심의 대상을, 긍정은 긍정의 이유를, 판단은 판단의 근거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엔 감정과 의지가 함께 얽혀 있습니다.
좋은 연필을 구별하듯, 좋은 생각도 있습니다. 비판적이고 논리적이며, 깊이 알고 초월하려 하며, 공동체를 향한 따뜻한 감각을 가진 생각. 그것이 생각다운 생각이라면, 생각의 윤리는 곧 우리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유의 태도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