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협력자, AI와 함께 사는 시대의 글쓰기

by 리얼팔

“AI와 함께 쓴 글, 정말 내가 쓴 걸까요?”

요즘 들어 이런 질문이 자주 들립니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창작의 주체’에 대한 고민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지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일까요? 아니면 이제 기계도 그 경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AI의 창작 개입’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차분히 살펴보려 합니다.

어떤 기술이든 그것이 도구일 뿐인지, 또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요즘 AI의 활용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산업 분야는 물론, 일상생활 곳곳에서 AI의 존재감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공지능의 사용은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것일까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다양한 분야에서 던져질 수 있겠지만, 특히 창작의 영역에서는 더 많은 논쟁과 고민이 따릅니다.


창작과 AI, 낯선 동거의 시작

우선, AI는 무엇일까요? Artificial Intelligence, 곧 인공지능이라는 이 단어에는 ‘지성’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성’은 과연 창작의 능력까지 포함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창작은 여전히 인간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일까요? AI의 정체성을 논할 때, 이 질문은 피할 수 없는 주제입니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 AI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 글은 내 창작물일까요, 아닐까요? 내가 썼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AI를 단지 도구로 볼 수 있고, 누군가는 그 자체를 공동 창작자로 인식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이 주제를 살펴보려면 먼저 “AI가 창작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창작물의 활용이 윤리적으로 옳은가?”에 대해 성찰해봐야 할 것입니다.


도구를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문제를 곧장 파고들기보다는, 먼저 유사한 상황에서 우리가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며칠씩 걸어서 한양까지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기차, 버스, 비행기 같은 효율적인 교통수단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지요. 기술은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술이 무조건 사용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기술의 사용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그것을 자제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서 긴급한 보고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시간이 늦어 회장님께서 퇴근하셨다고 판단했고, 급한 마음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회장님께서 "왜 이런 걸 전화로 보고하느냐"고 하시며 의아해하셨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했지요.


이 일화는 기술이 아무리 효율적일지라도, 인간 사이의 예의와 맥락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우리가 AI나 다른 기계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기술은 유익한 도구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언제 사용하느냐, 누구를 향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우리는 이미 수많은 산업 영역에서 기계의 힘을 빌리고 있습니다. 반도체, 항공, 의약, 자동차 산업 등은 인간의 육체적 능력만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정밀성과 속도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누구도 이제 "손으로만 해야 진짜 일이지"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기계가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창작에 AI를 쓰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렇다면 이 통념을 AI를 활용하는 활동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명제를 가정해본다면, 분야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AI는 단순한 계산 능력을 넘어, 프로그래밍, 연구 분석, 심지어 예술 창작까지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어떤 연구팀에서는 수십 명이 한 달간 고민해서 만든 알고리즘을, AI와 몇 명의 핵심 멤버만으로 단 며칠 만에 구현해냈다고 합니다. 과학 분야에서도 AI가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들을 속속 해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창작의 영역은 여전히 미묘합니다. AI가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처럼 감정과 삶의 경험, 존재의 고통을 통해 발화되는 진짜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그러나 AI는 이러한 인간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구조화하고, 때로는 확장시키는 데 매우 유능한 조력자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AI는 창작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돕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우리가 워드프로세서를 쓰고, 사진 편집 앱을 쓰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AI를 사용한 창작활동”이라는 명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글쓰기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다양한 이유로 창작 활동에 접근하지 못했던 분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글쓰는이에게 아이디어를 더 깊게 들여다보게 하고, 마음속에만 머물던 이미지를 명확히 드러내 줍니다. 배경지식이 부족할 때나, 표현을 다듬는 데 시간이 걸릴 때, AI는 빈틈을 메워주는 새로운 시선이 되어줍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오히려 AI의 ‘선한 영향력’이 아닐까요?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고, 일으키고, 함께 가는 방식으로 발전해간다면 말입니다.



함께 써 내려가는 새로운 창작의 시대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는 소식에 예술가의 역할이 점점 흐려지는 건 아닌지, 진짜 ‘창작자’란 누구인지 묻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지금 이 시대야말로 예술가가 더 선명하게 필요한 시대라고 믿습니다.

창의성은 단지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왜 만들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장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그 문장 안에 어떤 의미를 담을지까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그래서 여전히, 어떤 이야기를 구현할지, 왜 이 이야기를 지금 써야 하는지는 인간, 곧 창작자의 몫입니다.

AI 시대의 창의성은 ‘어떻게’보다 ‘무엇을’에 달려 있습니다. 이 질문은, 결국 인간만이 던지고 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고유한 질문이니까요.

우리는 이제 AI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더욱 깊고도 인간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나는 왜 이 이야기를 쓰는가?”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AI라는 조력자와 나란히 걸으며 진정한 창조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일입니다.

AI는 그 표현을 더욱 선명하게, 더욱 구체적으로 다듬어주는 ‘조용하고 성실한 동반자’가 되어줄 뿐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에서, AI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능성과 협력하며 걸어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대의 창의성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점은,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신뢰입니다.


AI가 창작을 돕는 시대, 이제는 단지 “누가 만들었는가”를 묻는 것을 넘어

“왜 만들었는가”, 그리고“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묻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AI의 도움으로 쓴 당신의 글을 보고,

“이건 네가 쓴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반대로 “이건 너만이 쓸 수 있는 글이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AI를 넘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진짜 창작에 다다른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의 사용 여부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철학과 태도로 사용할 것인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질문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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