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지나 마침내 빛으로

토막글이 완성시킨 나의 어둠뒤 빛

by 리얼팔

제 블로그에서 두번에 걸쳐 포스팅했던 글 두개를 하나로 합쳐서 올려 보았습니다.

짧은 토막글이 어떻게 완성된 글로 되는지 알려드리고 싶어 해봤던 시도였습니다.





오늘 아침 메모장을 뒤지다가 아래와 같은 글이 써져 있는 걸 발견하였습니다.


"내 인생 가장 우울하고 어두웠던 시절이 언제였나 돌이켜 보니 인생을 살면서 몇 군데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가장 밝을 때가 언제였나 돌이켜 보니까 놀랍게도 가장 어두웠던 그 시기 다음에 가장 밝았던 시절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날이 밝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당연한 자연의 법칙인데 그 법칙이 나의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는 걸 보고 놀랍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고 그런 느낌을 이 아침에 받습니다."


뭔가를 쓰려다 다른일이 생겨 쓰던 걸 멈추었던 모양입니다.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닌듯 한데 메모를 보며 뭘 쓰려던 것이었지? 하며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쉽사리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군요. 계속 그대로 더듬어 올라가 보니 대충은 뭘 쓰려고 했었구나 하는 짐작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토막글을 이용해서 글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글이 완성될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래 글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드리웠던 깊은 어두움,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찬란한 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과 마주하게 되지요. 하지만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가장 깊은 어둠 뒤에는 언제나 새벽이 기다리고 있음을 제 삶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둠의 그림자 드리운 시작


저는 한 회사의 원가 담당 과장으로 일했습니다. 이 자리는 고객사의 구매 및 설계 담당자를 상대하는, 실질적인 회사의 얼굴과 같은 위치였습니다. 업무 특성상 고객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즉 감정 노동이 상당했기에 회사 내부에서는 저의 업무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이나 임원진, 팀장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대신, 고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에서 오는 부담을 온전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직무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핵심적인 부분이었고, 향후 5년, 길게는 10년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중간 임원과의 보고 체계를 건너뛰어, 대표이사와 직접 소통하며 업무를 처리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제가 다루는 정보들은 같은 회사 임원에게조차 공유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균열이 시작되다


어느 날, 회장님의 아들이 상무로 회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한 살 어린 나이였지만, 오너 아들이었기에 그 존재감은 남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업무적인 접점이 크지 않았지만, 1년쯤 지나 회사를 파악한 듯 원가에 대한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전문 경영인인 대표이사와의 마찰이 생겨났습니다. 대표이사는 오너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원가에 대한 경험과 지식 없이 섣불리 관여하게 되면 회사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표이사의 특별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김상무(회장님 아들)에게는 절대 원가 정보를 전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너의 아들인 김상무 대신 대표이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기에, 난감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원가 관련 자료를 요청해올 때마다 "자료가 아직 덜 됐다"는 등의 구실로 미루고 회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갈등의 소용돌이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사건이 터졌습니다. 김상무가 저와 제 부하 직원을 구석진 회의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부하 직원이 보는 앞에서 저를 거세게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젊은 혈기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니고 다음에 하시죠"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너무 약하게 나갈 수도, 그렇다고 너무 강하게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상무는 제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 듯했습니다. 자신이 회사의 주인인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는 식이었습니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심한 태도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부하 직원도 있는데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다시 차분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에게서 욕설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보다 한 살 어리면서도 부하 직원이 보는 앞에서 서슴없이 욕을 내뱉는 그의 모습에 저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야, 너 나한테!" 저 역시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러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 멱살을 잡았습니다. 부하 직원이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힌 저는 더 이상 이 상황을 지속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멱살 잡은 손을 뿌리치고 황급히 짐을 챙겨 곧바로 퇴근했습니다.


번아웃의 그림자, 그리고 방황


다음날, 김상무는 전날 제가 아무 말 없이 퇴근해버리자 놀랐는지 출근 후 별다른 반응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이미 이 회사의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 사장이 되어 경영을 할 회사에서는 더 이상 다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생각은 아니었지만, 암울하고 답답한 기운이 저를 감쌌습니다. 이전에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충성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후로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누워만 있고 싶었고, 어머니의 걱정 어린 물음에도 대답조차 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누워 지내다 가까운 동료의 권유로 다시 출근했지만, 어느 겨울 아침 두 달 정도 더 다니다 결국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어떤 다른 직장을 정해놓고 퇴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곳이 싫었고, 한 번 찾아온 번아웃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온라인 게임만 하며 자고 먹고 게임하는 생활을 7~8개월 동안 이어갔습니다. 회사 퇴직후 받았던 퇴직금은 고스란히 바닥이 났고, 통장에는 단 한 푼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회복의 손길, 새로운 시작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들어오셔서 펑펑 우셨고, 어머니도 함께 우셨습니다. 아버지 직장의 동료중 저와 나이가 같은 직원이 있었는데 일부러 자주 찾아와 저를 위로해주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친숙해진 이후에는 저를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조금씩 회복해나갔습니다. 그렇게 7개월간의 방황 끝에 무엇보다 경제적인 궁핍함이 저를 다시 움직이게 했습니다. 예전처럼 다시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맡았던 원가 업무는 필요로 하는 곳이 제법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구직활동 후 캠 샤프트, 실린더, 피스톤 등을 가공하는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6개월 정도 근무하던중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임원과 연락이 닿았고 그렇게 지금까지 매일 아침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은 제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절의 중 하나의 기록입니다. 1998년 IMF나 2008년 경제 위기처럼 온 국민이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때는 오히려 저 혼자만의 어둠이 아니었기에 그렇게까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저 혼자만 외롭고, 춥고, 어둡고, 가난한 것 처럼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아마 가장 깊은 어둠이었을 것입니다.

어둠 끝에 찾아온 빛, 그리고 사랑


저는 결혼이라는 것에 큰 생각이 없었습니다. 서른아홉이 되면서 '이제 결혼을 해야겠군'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많은 여성들을 만났지만 항상 마음과 마음이 엇갈리는 언밸런스한 만남만 계속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캠 샤프트 회사에 취직하고 3개월쯤 지났을 때,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하 레스토랑 계단을 내려가는데, 커튼 사이로 보이던 그녀의 모습에 저는 그만 숨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하얀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빛나는 모습에 압도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강렬한 아우라가 느껴졌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녀의 마음 또한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말 그대로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녀를 만나자마자 저의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저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저조차 몰랐습니다. 저는 무모할 정도로 그녀에게 밀어붙였습니다. 그녀는 모태 신앙이었고, 같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기에 만날 이유가 없었지만, 기적처럼 첫 만남이 이루어졌고, 저는 끈질기게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녀는 주변의 소개로 저를 한 번 만나주긴 했지만, 제가 믿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었지만 그녀는 한 번 더, 그리고 또 한 번 저를 만나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제게 "우리는 믿는 사람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위해 교회를 가겠다고 말한 후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가 이상하리만치 재미가 있었고 제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녀를 만날때면 그 주의 설교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고, 통화 내용 중 상당부분은 그 주에 들었던 설교 내용 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제가 설교 내용을 믿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상세하게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저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통 교회를 처음 가는 사람들은 설교 내용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하기 마련인데, 저는 달랐다는 것이지요.


믿음과 사랑이 빚어낸 기적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제게 성경책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쓴 "당신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저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 번아웃과 상처로 인해 쓰러져 있던 그 시간을 극복하고 일어서자마자 저의 가장 밝고 가장 큰 선물인 아내를 만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고 있지만, 아내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 하는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을 귀한 존재입니다.


어둠 속을 지나는 이들에게


만약 지금 아주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나에게도 저 밝은 곳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처럼 저런 순간이 올까?' 하고 낙심하고 쓰러져 있는 분들이 있다면, 그 터널을 잘 지나가시길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터널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터널이 길 수도 있고, 너무나 어두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어둡다면, 머지않아 찬란한 빛이, 태양이 확실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남겨봅니다.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