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만에 반갑게 만난 하베르와의 나눔의 기록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하브루타 독서토론이었습니다.
작년 11월, 합창단 정기 연주회를 준비하느라 잠시 쉬게 되었고, 그렇게 다섯 달 만에 하브독토에 다시 오게되었습니다.
다시 얼굴을 마주한 하베르들과의 만남은 참 반가웠습니다.
책 『생각한다는 것』을 함께 펼쳐 읽으며 나눈 대화는 유익했고, 진지했으며, 유쾌했습니다.
“우리가 일했다고 해서 누리는 것이 그 대가에 합당한가요? 오히려 언제나 덤처럼, 넘치도록 받은 것 아닐까요?”
우리가 손수 만든 것도 아닌 세상의 수많은 혜택―음식, 의복, 기술―을 누리며 살고 있음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고 나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수많은 이웃들의 수고 덕분"이라며,
"내가 한 일은 요만큼인데 누리는 것은 이만큼이구나" 하는 겸허한 깨달음을 나누며 대화의 시작을 열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가 반지성주의 영향을 받은 점은 무엇일까요?”
첫 질문이 읽어 지자마자 하베르들의 목소리가 풍성하게 쏟아졌습니다.
공통적으로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메이플 님은 교회 내 경험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무언가 질문하면 ‘그냥 믿으세요’, ‘믿음이 부족해서 그래요’라는 답을 듣게 됩니다. 질문 자체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죠.”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설명 없이 순종만을 강조하는 경우들, “성경에 써 있으니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말들이 너무도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졌던 경험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신앙을 "생각하지 않는 복종"으로 몰아가고, 결국 신앙과 삶을 분리시켜 버리죠. 그리고 한국 교회가 그 시대적 배경이 어떠했나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충성, 감정적 부흥회 열광, 상식과 분리된 신앙으로 기울었던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브리스길라 님은 사역 현장에서의 문제도 짚어 주셨습니다.
“교인들을 똑똑하게 키우면 안 된다는 무언의 전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리 교육이나 깊이 있는 성경 공부가 거의 없습니다.”
하감 님도 덧붙여 주셨습니다.
“상식 없이 선민의식만 있는 신앙은 타인을 판단하게 만들고, 결국 세상과 단절된 신앙으로 흐르게 만듭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신앙 문화에 대해 조용하고 깊이 있게 성찰해보는 자리였습니다.
첨맘으로 님은 중요한 균형을 짚어 주셨습니다.
“예배당에 머리만 가지고 들어가거나, 가슴만 가지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머리와 가슴을 함께 가지고 들어가야 건강한 신앙이 됩니다.”
지성만 강조하면 감성과 의지가 약해지고, 감성만 강조하면 비이성적 신앙에 머물게 된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브리스길라 님은 이렇게 정리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지성)을 넘어서, 그 말씀을 묵상하고(감성), 삶으로 순종하는 결단(의지)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신앙은 결국 지정의(知情意)의 균형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그 균형이야말로 삶을 바꾸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생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이 질문 앞에서, 저는 그 동안의 믿음의 여정을 잠시 되돌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조금씩 알아가며, 어느 날 문득 내가 예전과는 다르게 살고 있음을 깨달았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하감 님은 실제 삶에서의 변화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말씀을 통해 그 감정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변화는 결국 화해와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브리스길라 님의 아래의 말씀은 많은 생각을 해 보게 했습니다.
“생각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죄가 되려면, 먼저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회개란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생각의 전환을 통해 삶 전체의 방향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메타노이아’―그리스어로, 생각을 바꾸는 것.
진짜 회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씀에 깊은 공감이 흘렀습니다.
모임의 후반부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공감의 결은, 결국 공동체의 소중함으로 모였습니다.
하브루타는 생각을 자극하고, 입을 열게 하며, 감정을 나누게 하는 자리입니다.
가르치기보다 함께 묻고, 듣기보다 함께 고민하는 자리.
그곳에서 ‘생각하는 신앙’은 살아 숨 쉬기 시작합니다.
준파이퍼 님은 이 흐름을 “귀납적 제자 훈련”이라 설명하셨습니다.
질문이 있고, 본문이 있고, 삶이 있고, 마지막엔 찬양으로 결단하는 구조.
그렇게 말씀은 단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찬양이 머리에 남고, 말씀이 자꾸 되뇌어질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 하베르님의 말처럼, 신앙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깊어집니다.
“생각하라, 질문하라, 그리고 살라.”
이번 하브독토는 반지성주의의 그림자를 넘어, ‘생각하는 신앙’의 빛을 함께 찾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정적 열광만이 아닌, 성찰과 질문, 공감과 결단이 함께하는 신앙.
흩어졌던 삶과 믿음의 결을 다시 엮어내는 고요한 기도의 여정.
우리는 함께 책을 펼치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한 줄의 문장을 붙들고, 그 뜻을 나누며,
조금 더 신중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하나님 앞에 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다시 서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진심으로 믿고, 담대히 살아가겠노라…
그렇게 조용한 결단을 마음속에 품은 채로요.
이어지는 ep.2 에서는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일이 일어나는가? :세가지 사례 부분을 읽은 후 독후 에세이와 하브루타 토론요약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