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부군〉 : 사라진 인물, 남겨진 공허

상실은 사건보다 깊게 감각으로 남는다

by 리얼팔

휴가 복귀날, 어머니와의 한 편의 영화


휴가 복귀날, 어머니가 불쑥 말씀하셨다.

“부대 복귀하기 전에, 이 영화 한번 보자. 너랑 꼭 같이 보고 싶다.”

그렇게 마주 앉은 자리에서 스크린이 열렸다.

영화 제목은 〈남부군〉.


영화관 주변의 난장에서 샀던 마른 오징어와 팝콘의 구수했던 냄새와

아들과 영화를 보고싶어 하셨던 35년전 어머니의 모습은 이젠 어렴풋하지만, 영화가 안겨 주었던 하나의 감정은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영화 속에는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전쟁 한가운데, 간호병 박민자(최진실)와 주인공 이태(안성기)의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은 흙냄새와 포연 속에서도 잠시나마 사람다움을 회복시켜주는, 봄처럼 짧고도 깊은 계절이었다.


사라진 인물, 남겨진 공허

전반부까지 그 사랑은 숨을 쉬었다.

움막 안의 호롱불,

젖은 군복을 말리는 손길,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눈빛이 있었다.

부재의 미학과 여백의 힘


그러나 후반부로 넘어가자,

그녀는 스크린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죽음도, 작별 인사도, 심지어 뒷이야기도 없이.

단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그 부재는 묘하게 깊었다.

그녀가 어디서 멈췄는지, 누구의 품에서 숨을 거뒀는지—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남부군〉은 전쟁의 참상을 화려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의 빈자리로 보여준다.

죽음을 목격하면 애도라도 할 수 있지만, 부재는 애도의 기회마저 빼앗는다.

이 영화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상실은 때로, 사건보다 깊게 감각으로 남는다는 것을.


안개 속에 묻힌 이름


첫눈이 스치던 날,

우리는 산허리 움막에 기대어 앉아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총성은 멀리 있었고

밤하늘의 별들은

아직 전쟁을 모르는 듯 빛났다.


짧은 봄 같은 시간,

그대는 내 곁에서 웃었고

나는 그 웃음을 전부 기억하려 애썼다.

그러나 전쟁은

사랑이 움트는 뿌리까지

차갑게 베어갔다.


상실의 시간 속에서

그대는

어느 계곡 어느 포연 속에서

쓰러졌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다만 부재의 무게를 등에 지고

끝없는 산길을 걸었다.


이별을 본 적 없는데,

이별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남은 건 그대의 이름뿐,

그러나 그 이름조차

소리 내 부르지 못했다.

부르는 순간,

그대가 정말로 떠날 것 같아서.

홀로 걷는 산길


안개가 짙게 깔린 능선,

이태는 낡은 군복에 진흙이 묻은 장화를 신고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어깨에는 소총이, 눈에는 오래된 피로가 묻어 있다.

길 위에는 더 이상 발자국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민자의 이름을 속으로 부른다.

그 순간, 바람이 그의 귀를 스친다.

마치 대답 없는 대답처럼—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산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부재의 무게는 그의 발자국마다 묻어난다.


내 안에 남은 영화

이제는 영화 〈남부군〉의 대부분의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 속 그녀가 사라진 뒤 남겨진 공허함은,

부대로 복귀하던 그때의 복잡한 감정과 어울려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그녀는 어디로 가서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묻는 간절한 질문이 되었고,

그 질문은 내 안에서 한참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살아 있다.


영화는 오래전에 이미 끝났지만, 그 감정은 내 안에서 여전히 현재형이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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