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사랑이야기

by 리얼팔

남자는 여자가 좋았습니다.

길게 생머리를 늘어 뜨리고 피아노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 여자의 가는 팔과 손가락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존재 자체가 좋았습니다.

여자가 존재하기에 남자의 마음은 가득 충만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남자는 말주변이 없었습니다.

남자는 사람들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편이었습니다.

남자가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때면 사람들은 쉬이 지루함을 느끼고

금방 집중이 흐트려지며 다른 이야기로 가버립니다.

남자는 그럴때 마다 하고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한 채 말하기를 멈추어야 했습니다.

이런일이 많아 지자 남자는 점점 말하는 것이 무서워 졌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남자는 '사람들이 지루해 할 거야'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을 거야'

미리부터 이런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달랐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었습니다.

남자가 이야기를 하면 여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미소가 좋았고, 신이나서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여자앞에서는 이야기가 술술 잘 풀려나갔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이야기에 미소를 짓다가 소리내어 웃기까지 합니다.

남자는 더욱 신이나서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남자는 여자와 함께 있는 것도 좋지만 여자와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모처럼의 휴일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기로 한 날입니다.

여자와 보낼 즐거운 시간을 머리속으로 그리며

여자에게 줄 주머니속 작은 선물을 만지작 해봅니다.

여자의 모습이 저 멀리서 보이자 남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그런데 여자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합니다. 남자의 마음속에 서늘한 뭔가가 스칩니다.

" 저 죄송한데요. 다른 약속이 생겨 저 지금 가봐야 해요.

오늘은 집으로 돌아 가시고 다음에 만나야 할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는 교회의 중고등부 선생님이었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다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애써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여자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 제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아이들 데려다 주고 오세요. 한시간 정도 기다리면 되나요?"

" 제가 죄송해서 그래요. 기다리지 마시고 그냥 가시는 편이 좋을 듯해요"

"저는 괜찮으니 신경쓰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그렇게 여자는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남자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남자는 원래 기분이 상하는 일을 잘 견디는 성격입니다.

그런데도 이번 상황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시계는 오후 여섯시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의 몇 개 안되는 가로등 은색 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늦나보군'

또 한시간이 지났습니다. 시계는 오후 일곱시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차의 시동을 켰습니다. 시동을 켠 채 한참동안 그대로 있었습니다.

남자는 차의 시동을 껐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전화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아이들 데려다 주다가 함께 한 다른 선생님 차가 사고가 나서 지금 병원에 와 있어요"

"네?? 다친데는 없으세요?"

"저는 괜찮고 아이들이 조금 놀란 것 같네요.

병원에서 아이 몇명이 검사 마치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이에요"

"정말 다행이네요.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전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집에 가시는 편이 좋겠어요"

"아닙니다 아이들 잘 보살펴 주신 후에 나중에라도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30분이 더 흘렀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은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로 하나둘씩 채워졌습니다. 가로등 은색 불이 어둡게 주차장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여자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아무래도 여기 아이들하고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오늘은 돌아가 주세요'

'아닙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남자는 왠지모를 오기가 생겼습니다. 몇시가 되었든 끝까지 기다릴거라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자의 마음속에 많은 생각들이 써졌다 지워졌다 했습니다.


한시간이 지나고 또 30분이 지났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어느 덧 사람들의 왕래도 뜸해졌습니다.

저 멀리서 익숙한 차량 한대가 보였습니다.

" 정말 죄송해서 어쩌죠?"

"저녁은 드셨나요?"

" ... "

남자는수척해진 여자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 여태 저녁도 못드셨어요? 우리 어서 밥먹으로 가요"

다행히 남자와 여자가 예전에 갔었던 레스토랑이 9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도 열려 있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 얌전히 앉아서 돈까스를 먹고 있는 여자에게 다정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여자는 특유의 맑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미소를 본 그 순간 처음 느껴보는 온기가 마음 깊은 곳에 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남자는 그 온기로 여자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손을 꼭 잡은 채로 레스토랑의 정원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정원의 잔디를 비추는 가로등은 유난히 따뜻한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정성껏 키운 화단의 꽃들은 두사람의 가는길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서로에 대한 마음은 이전보다 더 열려 있었습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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