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피어난 별, 윤봉길

나태주 시인의 강연을 듣고

by 리얼팔


며칠 전, 나태주 시인의 세바시 강연을 들었습니다.

시인은 "독서란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고, 머리로 셈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한글을 배운 이후 60년 넘게 시를 쓰며 살아온 자신은, 글을 읽고 시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지를 깊이 체험해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글을 갓 배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글짓기 수업의 장면을 들려주었습니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데 온 마음을 쏟는 그분들의 눈빛은 말할 수 없이 진지하고 열정적이었고,

그 모습을 보며 시인은 그분들이 60년 넘게 글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고 했습니다.

시인의 말은 자연스레, 글을 백성에게 내어주신 임금, 세종대왕의 마음으로 닿았습니다.

물론 훈민정음 자체를 만든 건 집현전 학자들이었겠지만,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백성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는 글을 세상에 내어주신 임금,

그 마음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윤 봉 길 (1).png

이어 시인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윤봉길. 독립운동가이자 계몽가였던 청년.

보통 사람들은 윤봉길의사를 도시락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말했습니다.

"그렇게만 기억한다면, 우리는 윤봉길의사를 너무도 부족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윤봉길의사는 19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농촌 계몽운동을 시작한 실천가였습니다.

글을 몰라 조상의 묘를 찾지 못해,

주변 묘비를 모두 뽑아 와서는 “이 중 하나가 우리 아버지일 것 같으니 글을 좀 읽어주십시오”

하며 윤봉길의사를 찾아왔던 한 농부의 사연.

그때 윤봉길의사는 깊은 슬픔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결심합니다.

“백성들이 글을 몰라 이토록 어리석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그는 한글을 몰라도 쉽게 깨우칠 수 있는 『농민독본』을 집필하고,

농촌 청년들과 함께 계몽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민중을 깨우는 일에 매진합니다.

그가 『농민독본』의 머리말에 남긴 글은 이렇습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나섰으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윤봉길의사는 그 말 그대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스물다섯의 나이에 조국을 위해 별처럼 사라졌습니다.

시인은 말했습니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글을 가르치고 농촌을 일으키려 했던 이 청년,

그는 실로 놀라운 기개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덧붙였습니다.

“이런 선조를 지닌 우리에게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자부심을 품을 책임이 있습니다.”


이 강연을 듣고 난 뒤, 저는 다시금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윤봉길의사는 어떤 분이었을까.

그는 왜 어린 나이에 붓을 들고 농촌으로 들어갔으며,

왜 마침내 폭탄을 들고 상하이로 향했을까.

그분의 어린 시절부터, 붓을 들었던 시간들과

마침내 조국을 위해 스스로 사라지기까지의 여정을

조금 더 깊이, 그리고 가슴으로 새기며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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