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겸손의 리더쉽

우영우를 다시보고 있습니다.

by 리얼팔

다시 보는 우영우, 그때 보지 못했던 것들

벌써 3년이나 흘렀다.

다시 보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여전히 빛이 나지만, 처음 볼 때와는 조금 다르다.

그때는마냥 빠져들며 웃고 울었지만, 이제는 시간의 먼지가 살짝 내려앉은 장면들 속에서 그 때와는 다른 새로운 재미와 감동이 스며든다.


아는 이야기를 다시 본다는 건 언제나 약간의 저항을 이겨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것을 느끼고 있지만 이내 그 저항을 뚫고 들어가 몰입하게 할 만큼 잘 만들어진 드라마다.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그때는 놓쳤던 것들

그리고 그때는 글로 남기지 못했던 생각들을 뒤늦게 붙잡아본다.




첫 재판 ― 형식보다 진심을 보는 눈


1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릴 적 인연이 있던 노부부 사이에서 생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고,

할머니는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이 사건의 변호를 신입 변호사 우영우가 맡게 된다.


서울대 수석 졸업생이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는

정명석 변호사의 팀에 배속된다.

정명석은 상사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수용하지만,

“재판 현장에 적합하지 않다면 함께하기 어렵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녀에게 주어진 첫 사건이었다.


사건을 맡기며 정명석 변호사가 우영우에게 주문한 것은 단 한마디였다.

“집행유예를 받으세요.”


하지만 사건을 검토한 우영우가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는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변호인 의견서입니다.”


우영우 특유의 어투에서 묘한 긴장감과 사랑스러움이 동시에 번진다.

정명석은 말한다.

“이 사건은 검찰이 애초부터 집행유예를 염두에 둔 사건이에요.

피고인이 반성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충분합니다.

변호사가 옆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집행유예가 나올 겁니다.”


그 말에 이어지는 우영우의 대답은 단연 압권이다.


“이 사건은 재미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래 퀴즈를 떠올리게 하거든요.

몸무게 22톤의 향고래가 500kg짜리 대왕오징어를 먹고 6시간 후 1.3톤의 알을 낳았다면, 향고래의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안 궁금합니다.”

“정답은 ‘향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입니다.”


그녀는 사건의 핵심이 겉으로 보이는 무게,

즉 ‘형량’이 아니라 본질, 곧 진심에 있다고 말한다.


숨은 쟁점을 본 눈


우영우는 쟁점이 단순히 형법상 형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민법상 상속권을 지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짚어낸다.

만약 할머니가 살인미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민법 제1004조에 따라 상속 결격 사유에 해당하게 되어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설령 집행유예를 받더라도

할머니가 큰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었다.

우영우는 이 점을 간파하고,

살인미수가 아닌 상해죄로 변론하여 상속권을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정명석 변호사는 자신이 간과했던 쟁점을

신입 변호사가 정확히 포착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는 솔직히 말한다.


“잘했어요. 숨겨진 쟁점을 잘 찾았어.

그리고 내가 그걸 먼저 봤어야 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네.”


그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편견과 실수를 인정하고

우영우의 변호사로서의 자질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권위보다 진실을 택한 리더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그런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수를 신입 직원 앞에서 솔직히 인정하는 일.

그것은 위계와 권위가 강한 조직일수록 더 어렵다.

실수를 인정하면 존경을 잃을까 두렵고,

무능력으로 보일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랫사람이 상급자의 의견에 반하는 말을 하면

그 자체로 공격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모욕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명석 변호사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지위에 갇히지 않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보였다.


그의 태도는 단순히 한 인물의 성격 묘사를 넘어

드라마의 중심 메시지를 이끌어낸다.

관행과 효율을 중시하는 ‘법 기술자’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수용하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리더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는 무능해서 신입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유능한 리더’로 거듭난다.

그 순간, 시청자는 그를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신뢰 위에서 우영우와의 관계가 특별하게 자라난다.


관계의 진화 ― 안전한 거리


이후 이어지는 장면은 그 변화의 완성을 보여준다.

정명석이 “내 생각이 짧았네”라고 말하자,

우영우는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답한다.


“그런 것도 모르셨습니까?

정명석 변호사님은 변호사 생활을 그렇게 오래 하셨는데.”


정명석은 미소 아닌 미소로 그 말을 수용한다.

그 표정에는 이제 그녀를 ‘이해했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이 장면은 우영우가 사회의 통념에 벗어난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정명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상사와 부하가 아니라,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첫 화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진심을 향한 시선,

그리고 권위를 넘어선 리더십의 본질이 담겨 있다.


정명석 변호사는 ‘틀리지 않음’보다 ‘배움’을 선택했고,

우영우는 ‘이상함’ 속에서 ‘진실’을 포착했다.

그들의 첫 만남은 결국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결국

법정의 이야기이자, 관계의 이야기이며,

무엇보다 ‘듣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옳은 것을 말할 용기,

그리고 그 말을 들을 겸손이

진정한 리더십의 시작이다.


다시 보며 깨닫는다.

좋은 드라마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에 쌓인 나의 시간들이,

그 작품을 더 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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