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6월은 여행으로 시작해서 여행으로 끝나간다
나랑 일본 갈래?
친구의 말 한마디로 갑작스럽게 여행을 떠났다. 계획에도 없던 일정이라 숙소, 환전, 간단한 목적지만 정해놓고 공항으로 향했다. 덜컥 정해놓고 이래도 되나 고민했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여행을 갈 때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 마음이 지쳐 일상이 목을 조르는 것 같이 느껴지며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을 때였다. 도피라고 생각해도 좋고 새로운 삶을 위하여라고 생각해도 좋다. 어쨌든 이번 여행은 과거와는 조금 다르게 충동적으로 결정된 일이었다.
쫓기듯이 도착한 도쿄에서 인적이 드문 길만 골라 다녔다. 우리 밖에 없었을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한 그 길을 거닐며 놀라울 정도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행 가서 대체 뭐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사쿠사 근처 공원에 가만히 앉아 바람을 쐬었고, 신주쿠 근처의 골목길을 산책했고, 멋진 야경이 보이는 요코하마 선착장을 걸으며 밤의 눈부심을 감상하기도 했다. 겉으로 봤을 땐 더없이 여유로웠다. 속으로는 무계획 여행이라는 것이 걱정스러웠고 여행이 끝난 후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초조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여유로움에 속아 넘어가고만 싶었다. 매일 관광객으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돌아가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폭풍같이 짧은 3박 4일의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후, 약 열흘 간의 슬럼프를 겪었다.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를 틀어 놓고서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고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채 집에 틀어 박혀 있었다. 모든 것에 자신감이 사라졌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겪었던 슬럼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지만 내면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즐겁게 살자'라는 좌우명에 따라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이게 내가 원한 즐거움인지 알 수 없었다.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짓눌렀다. 이제 와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웃기지만.
어쨌든 갑작스러운 여행 후, 슬럼프를 겪으며 내면을 단순화시키는 데 집중했다. 덜어내고 덜어내도 또 다른 고민들로 채워지겠지만 변화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테니.
나의 6월은 여행으로 시작해서 여행으로 끝나간다.
불안함에 쫓기는 여행으로 시작해 다시 시작하는 여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