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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Dec 11. 2016

우리 관계의 마침표

첫사랑이 끝났다.

처음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이별의 노래는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의 목소리에 잠시 눈물이 났었지만 그뿐, 다시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을 때는 그렇게 애타고 슬프게만 들리던 노래들이 어쩐지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마음속에서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내가 정말 그를 사랑한 게 맞을까. 우리는 사랑을 했을까.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늦은 나이에 시작한 첫사랑은 그다지 로맨틱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만나온 몇 년, 우리는 헤어졌다. 몇 번의 고비를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불안했다. 그는 내게 남자 친구로서 최선을 다했고,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늘 질문했다. 지금 느끼는 이 안전한 감정이 사랑일까. 문득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랑과 노력은 같은 선상에 둘 수 없다고. 어쩌면 이미 끝난 감정인데 헤어질 만한 이유가 없어 유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상하리만큼 감정은 평온했고, 심지어 더 밝아지기도 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친구들을 만나고, 연말을 기념하는 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에 그를 추억해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게 그 애는 내 머릿속 꼭대기 어딘가에 둥둥 맴돌고 있었다. 이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그와의 사진첩을 정리했다. 우린 함께한 사진을 참 많이도 남겨 놓았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을 본 것만 같아 허겁지겁 종료 버튼을 눌렀다. 



억지로 지워낼 필요도, 추억해낼 필요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사귈 때는 그 애가 서운하게 한 것만 생각나더니, 헤어지니 잘해준 일들만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변덕이 들끓었으나 헤어진 것에 후회는 없었다.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의 세계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 애를 떠올리기엔 너무나 지치고, 또 지쳤다. 




마지막으로 그 애를 만나던 날을 기억한다. 사람이 많은 그곳에서 만나지 못한 채 헤매던 그 순간을. 나는 애타게 너를 찾기 위해 헤매었고, 너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엇갈린 채로 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날, 내가 그 애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가 이별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그 생각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사랑은  가장 사소한 순간에 깨닫게 되는, 감정의 부스러기가 아닐까. 



연말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느라 분주해졌고, 혼자인 나에 익숙해졌다. 무덤덤한 감정만이 들어 사랑은 생각보다 대단치 않나 보다,라고 생각할 무렵, 스쳐 지나가듯 들리던 노래 가사가 분명해졌다.



그때 난 널 꼭 만났어야 해. 널 놓지 말았어야 해. 



나는 그 노래를 이제야 이해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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