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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야 Aug 24. 2017

비 오는 날의 첫 풍경

예고 없는 비의 추억

엄마는 보험을 팔았다. 이모는 가끔 엄마가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에 대해 말하며 그만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덕분에 집에는 늘 사탕이 있었다. 어렸던 나는 그저 사탕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엄마가 일하는 것이 좋았다. 단정하게 손질된 머리를 하고, 예쁜 옷을 입고 바쁘게 일하는 엄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멋지던 모습이 괜히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와 동생은 집에서 십 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의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초등학교 앞은 우산을 가지고 온 부모님들로 가득 찼다. 함께 현관에 서있던 아이들은 하나 둘 씩 부모님의 손을 잡고 떠났다. 비가 내리면 복도는 더욱 어두컴컴해진다. 학교에는 괴담이 있기 마련이다. 제대로 아는 내용은 몇 개 없지만 백 가지를 다 알면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고도 했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건물 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 현관 앞에 서서 비가 고이는 화단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비는 흙을 파고들어 스스로 자리를 만들었고, 엄마가 아침에 바르는 립스틱 색과 비슷한 짙은 분홍빛 꽃들이 세찬 빗방울에 흔들리고 있었다.


정문에는 더 이상 우산을 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신발가방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집으로 뛰었다. 온몸을 적신 비는 생각보다 시원했고, 십 분도 채 안 되어 집에 도착했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녁에 돌아오신 엄마는 채 마르지 않은 옷을 보고 화를 내시며 앞으로는 비가 오면 조금이라도 그칠 때 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우산이 없으면 근처에서 구입하거나 근처에서 여유를 부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그 당시엔 어린 마음에 어찌나 속상하던지. 일하느라 바쁜 엄마가 우산을 들고 올 리 없건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하염없이 정문만 바라 보다 실망하는 것을 되풀이 했던 일이 떠올라 못내 서러웠다. 비 오는 날이 괜히 미워졌다.




그날 밤, 말로 할 용기가 나지 않아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비가 오면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와주면 좋겠다는 말을 에둘러서 했다. 고작 우산 하나 때문에 일을 그만두면 안 되겠냐는 말은 할 수 없었기에 일을 안 하면 마중 나올 수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차마 적지 못했다. 철없는 투정을 부려야 할 범위를 알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맡에 두었던 편지는 사라져 있었다.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엄마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날 수업 시간 내내 눈앞에 하늘색의 편지지가 아른거렸다. 괜한 일을 한 것이 아닌가 싶어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책상에 어제 썼던 편지가 놓여 있었다. 우산을 가져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지만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 아침에 우산을 챙겨 가는 것이 좋겠다는 지극히 엄마다운 답장이 아래에 적혀 있었다. 기대도 하지 않은 답장에 어제의 서운함 같은 건 씻겨 내려갔다. 오히려 사소한 일에 서운해 했던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일을 그만두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 때문은 아니다. 예고 없던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던 날, 엄마는 인파 속에서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불렀다. 우중충한 날씨와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빨간색 우산을 쓰고 집으로 향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매일 예고 없이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가끔 엄마에게 우산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럴 때마다 퉁명스럽게 근처에서 싸구려 투명우산을 하나 사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를 위해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 어리광을 부려본다. 엄마가 우산을 쓰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던 그날이 내 기억 속, 비 오는 날의 첫 풍경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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