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주 Feb 05. 2022

팀이 쌓는 '사회적 자본'

팀으로 일하기

1. 한참 온보딩 하고 있는 우리 팀의 동료가 어제 내게 "당장의 일을 하기에 바쁜데 베이스캠프는 어떤 목적에서 쓰나요? 어디까지 얼만큼을 쓰나요? 누구부터 누구까지를 태그 하나요?" 그리고 "회의록과 배이스캠프 포스팅은 어떻게 왜 다른가요?"라는 질문을 해서 반가웠다. 

2. 내 생각에 베이스캠프는 업무 도구이면서 팀의 '사회적자본'을 만드는 플랫폼이다.

* Basecamp, 프로젝트 관리 협업 툴: 특정 프로젝트에 초대된 사람들이 게시글, 코멘트, 일정 등을 공유하며 소통한다. 프로젝트에 초대된 사람들 사이에 글을 쓰고 정보를 유통하는 데 권한의 차이, 위계를 두지 않는 개방형이 특징이다 (아래 사진).




3. 여기서 팀이 갖는, 혹은 누리는 사회적자본이란 무얼까. "함께 일한 시간 또한 사회적 자본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같이 도모하고 해내면, 혹는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로부터 크게 배우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생긴다. 그런 게 일하는 사람에게는 사회적 자본이 된다.


4. 그런데 온보딩하는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지 않은가? "함께 일한 시간 또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할때, 그러면 뭐 입사순인가? 이는 같이 고생한 절대 시간의 총량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 걸 암묵지로 이름 붙이고, 시간이 쌓여야 된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후발 주자는 억울한데? 다시 보자. 핵심은 질이다. 질의 문제가 되면, 시간 외에 다른 치트키가 있을 수 있다. 생산성 도구.


4. 툴킷에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생각해보자. 팀이 쌓아가는 사회적 자본이 대체 왜 필요할까? 그걸로 무얼 하려고?(하는 질문을 스스로 해본 적이 있다.)  상상이 실제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수하게 반복되며 점진적으로 조정될 수많은 대화가 낳는 사회적 비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5. 새로운 상상이나 비전만 갖고 만들 수 있는 변화는 없다. 칙센트미하이가 '창의성' 을 말할때, 인물-영역-현장 세 꼭지가 맞아 떨어져야 비로소 소용있는 것이라고 했다. 누가(인물) 어떤 영역에서 새로운 생각을 했다면 그 생각은 영역(domain)의 규칙과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고,  현장(field)에서 토론되고 승인되는 과정을 거쳐 그룹의 선택으로 받아들여 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이 있어야 공동의 비전이 되고 실행을 위한 자원이 붙는다. 대단한 상상력으로 쓰인 영화 대본은 영화 제작의 한 요소일뿐이다. 자본 조달, 캐스팅, 배급, 마케팅이 없이 세상에 나온 영화는 없다.


6. 그런데 영역(domain)-현장(filed)에서의 일은 사회적 자본을 갖고 풀어가는 일이다. 사회적 자본하면 네트워크가 쉬이 떠오르지만,  '함께 일해온 시간'(혹은 경험)이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 


7. 예전에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중간에 멈춰 세우는 경험을 하면서, 내 옆의 동료, 내 팀, 내가 속한 집단이 지지하고 받쳐주지 않는 상상력이 밖의 네트워크를 타고 승승장구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아프게 배웠다. 한 사람이 뚝딱 지어낸 해결책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고 도출한 해결책이 더 지구력이 좋다. 여러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 둔 일이 확장성이 크다.


8. 함께 일하는 동안 사람들은 상상을 나누고, 계획을 점검하고, 실행에 손을 보탠다. 그 사이에 무수히 토론하고 깨진다. 생각을 정리하고 정보나 근거를 모으고 옆의 동료를 설득하다가 날선 공격을 서로 주고 받기도 한다. 그러면 상처 받고 움츠린다. 그러다가 회복하고 다시금 이해를 도모하는 과정이 그 안에 다 있다. 감정적으로 리스크를 짊어 지면서도 어려운 질문을 들춰 꺼내고 토론한 경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같이 버텨본 경험, 그러다가 문제 풀이의 실마리가 될 단서를 같이 발견하고 힘껏 달려본 경험이 사회적 자본이다.


9. 그런데 함께 일해온 시간이 짧을때는? 함께 일한 경험의 질을 올려야 한다. 사회적자본을 만드는 치트키 툴이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10. 일반적으로 변화가 많고 빠른 일, 예측성이 낮고 메뉴얼을 수시로 고쳐 써야 하는 일, 실무 담당자가 일부 결제권자를 수신으로 기안을 올리고 최종 결제를 받는 식으로 a-z이 정리되지 않는 일을 할 때는, 일을 방식에서도 완성형을 버리고 지속적으로 수시로 많이 엮이는 게 낫다고 한다.


11. 디자이너가 일할 때, 개인의 상상력으로 혼자 캐릭터를 100장을 모두 그린 뒤에 한꺼번에 모아서 결과를 '전달' 하고 피드백을 구하지 않는다. 일 다 끝났는데 무슨 피드백을 하나.


12. 100을 다 한 뒤에 한꺼번에 모아서 결과를 전달하는 건, 특히 문제와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지속적인 일의 엮임,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 한 꺼 번에 처리되는 일의 양을 줄이고 지속으로 탑-바텀을 오가며 대화가 일어나야 한다. 

13. 베이스캠프에서 우리가 진짜로 찾고 얻는 정보는 어떤 일을 맡은 사람이 혼자 작업한 끝에 팀에 완성하고 '전달한' '작업 결과물' 이 아니다. 그건 구글 드라이브에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우리는 우리 팀의 동료가 어떤 일을 하면서 수집하고 파악한 정보, 맞닥뜨린 질문, 해결책을 탐색한 과정, 제안을 도출한 근거(혹은 가정)를 확인하며 그의 요청에 의해 부름을 받고 의사결정의 과정에 참여한다. 이모티콘으로 잘 읽었다는 표시를 하는 것도 얕은 수준이지만 참여이고 경험이다. 그 사소한 것 마저도 일에 힘을 더해주는 순간이 온다.


14. 이런 과정이 없다면? 팀에서 어떤 일 하나를 맡은 사람이 그 일을  순탄하게 그러므로 조용히 잘 처리했다고 하자. 회의록에 이름을 넣는 사람들, 기안을 올린 당사자와 승인한 결제권자(그것으로 책임소재의 지분을 나눈 이들은)그걸 안다. 그런데 그 실력은 아직 팀의 사회적 자본은 아니다. 회의록보다 열린 구조가 필요하다. 개인의 성취를 넘어서 팀은 어떻게 성장했나, 하는 질문이 남을 것 같다.

15. (요즈음 우리팀처럼)팀원들이 당장은 다른 꼭지를 맡아 각자 일하는 듯해도, 그 과정 중에서도 팀의 사회적 자본을 쌓을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 어찌 보면 베이스캠프다. 문제 파악과 의사 결정의 결과 이전에, 과정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16.  '지금 같은 팀에서 다른 꼭지를 맡아 일하지만, 내 옆의 동료가 그가 맡은 일에서 우리가 납득할 만한, 혹은 합의한 기준을 근거로 판단하고 있고, 그 판단이 믿을 만하다' 또는 '지금 저 사람이 나눠준 정보와 고민이 나도 내 일에서 해봄직한 고민이라 고맙고 해결책을 같이 내는 것이 도움된다' '얼핏 내 일과 동떨어진 듯한 동료의 일도 내게 맥락지식을 준다." 하는 식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 자본이 커져야 한다.

17. 신뢰자본으로 뭘 하냐고? 팀은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판단이 좋아진다. 개인에게는 그게 짬빠이고 경력의 근거다. 하나를 하면서 신뢰자본을 만들면 그 다음이 쉽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일을 처음을 하는 거다. 그러면 힘들다.

18. 팀에 혼자서도 척척 다 알아서 하는 해결사가 있으면 좋겠지만, 과업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어차피 만능 해결사란 없다. 문제와 해결책이 다 그려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복잡한 문제를 풀 때는,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눈으로 보고 질문하고 논의할 거리를 가져오고 최선의 해결책을 언제고 찾아 나서는 커뮤니케이터'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팀의 실력을 끌어올려준다.


19. 결국 나도 좋고 남도 좋다. 그러므로 한번에 처리되는 일의 양을 줄이고, 지속적인 일의 엮임 혹은 대화의 흐름을 만들어서 짧은 시간 내에 탑-바텀을 오가는 경험을 해보기로 하자. 배캠을 도구로, 플랫폼으로 활용해서.

20. 최종 결론 한 두 줄이 아닌 과정을, 일의 흐름을 서로에게 나눠주고 물어주자. 그래야 개인에게는 신뢰 자본이, 팀에는 사회적 자본이 쌓인다. 

21. 일의 맥락을 설명하자니 일만으로도 바빠서 배캠을 못 쓰나? 그러면 다른 일을 줄이고 배캠을 쓸 시간까지를 일하는 시간에 계산해 넣자. 내가 맡은 꼭지의 맥락을 이해하는 동료가 많아 지는 건, 내게는 복리 적금 같은 거라고 생각하자. 언젠가 계탄다. 


22. 글을 올리면 날아올 평가나 피드백이 두려워서 못 쓰나? 작은 피드백이라도 했던 동료들, '좋아요' 이모티콘이라도 누른 동료들이 결국 어려울 때 내 일을 도와주는 동료인 거 같다. 모진 피드백이 오간다고 해도 손해가 아니다. 모진 소리 하고 나면 마음 약해서 그 뒤로는 더 잘 도와주고 정보도 주게 된다. 

23. 글쓰기가 부담스러운가? 다른 사람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관찰하고 베껴보자. 연습을 거쳐 분명하게 나아진다.

24. 글에 대해서는 (1) 말의 내용과 표현의 무게 값을 맞출 수 있는 건 중요한 실력이다. (2) 내가 그렇듯, 타인도 내 글에 적응한다. 읽는 사람에게도 내게 적응할 기회가 미리미리 있어야 한다. 어쩌다 한 번, 최종적으로 잘 정리해서, 한방에 말하겠다고? 내 글을 읽은 경험치가 없는 타인은 그것도 못 알아 듣는다. (3) 글을 쓰고 피드백을 글로 하기 시작하면, 타인의 글쓰기에도 촉이 생긴다. 그 말은 곧 타인의 말과 글에 무너지거나 휘둘리지 않는 기준점을 갖게 된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24. 어쨌튼 완성형은 재미없다. 독고다이로 뛰지 않는다. 팀이 성장하고 나도 성장한다. 같이.

작가의 이전글 나의 왼쪽 시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