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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Feb 04. 2020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여정의  트래블러이다

쿠바에 가면 헤밍웨이의 다이끼리를 한 잔 마셔야겠다

  자고로 여행이 트렌드가 된 시대이다. 이제는 여름이나 겨울이 되면 누구나 다 공항과 역으로 향한다. 여름에 바다를 한 번이라도 보지 않으면, 겨울에 스키장을 한 번이라도 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마치 휴가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낄 정도로 여행은 우리 삶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런 시대를 대변이라도 하듯 여행을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들도 넘쳐나기 시작했다. <1박 2일>을 시작으로 <꽃보다 할배>, <배틀트립>, <짠내투어> 등과 같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중에게 선을 보였으며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고 여행하는 <어서 와~한국은 처음이지?>와 같은 프로그램도 등장했으니 정말로 여행 예능이 방송계의 트렌드라고 인식될 만하다.

  그러나 이렇게 양산된 여행 예능들은 지독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재미를 주어야 한다는 압박과 예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여행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은 안일하게 반복되는 형식과 억지스러운 미션들을 계속해서 이어왔다. 동시에 과장된 자막과 극적인 연출을 위한 편집 역시 남발하고야 말았다. 결국 연출된 장면에 대한 피곤함과 늘 보게 되는 익숙한 장면들은 시청자들이 여행 예능에서 눈을 떼게 했고 여행 예능은 이제는 여행의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아닌 그저 그런 예능 프로그램으로 전락하는 신세에 이르렀다.

  이런 진부함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2019년 2월, JTBC의 여행 예능 프로그램 <트래블러> (기획 조승욱, 출연 류준열, 이제훈) 가 방영되었다. 비행기로 30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낯선 땅 쿠바. 그리고 그런 쿠바에 떨어진 한 무리의 한국인들. 그곳에서 그들은 이전의 프로그램들이 진행했던 낡은 방식들은 모두 버렸다. 어떤 미션도 없었고 예쁘게 꾸며진 식당에서 화려한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수많은 카메라와 제작진 앞에 선 출연자들도 없었다. JTBC의 <트래블러>에서는 온전히 여행의 여정을 그려냈을 뿐이었다. 기존의 여행 예능들이 가졌던 ‘방송’ 같은 여행이 아닌 여정으로서의 여행을 담은 ‘진짜’ 여행 예능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래서 진짜 여행이 뭔데?


  그렇다면 <트래블러>가 생각하고 표현한 진짜 여행이란 무엇일까? <트래블러>가 기존에 방영되던 여행 예능들과 가장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점은 바로 여행을 소비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여행 예능들이 항공권을 얼마에 예매했는지 여행지의 화려한 호텔과 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에 집중할 때 <트래블러>는 큰 배낭과 작은 카메라를 손에 쥔 류준열, 이제훈 두 출연자의 여정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어떻게 숙소를 찾아가는지 어떻게 비싼 택시 값을 흥정하는지와 같은 평범한 사건들로 그들의 여행을 과장 없이 담아냈다. 실제로 <트래블러>의 연출을 맡은 최창수 PD는 무엇을 꼭 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먹어야 한다는 일정을 애초에 정하지 않았다. 모든 일정을 출연자들에게 맡기고 그들이 풀어나가는 여행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이는 두 출연자가 여행의 과정에서 겪는 모든 것들이 바로 <트래블러>가 보여주고자 하는 진짜 여행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트래블러>에서 진짜 여행이란 단순히 출연자를 소비 시켜 볼 수 있는 화려한 여행이 아닌 여행을 겪으면서 가지게 되는 생각과 경험의 확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 시청자가 그들의 여행에서 보편적으로 겪어왔던 모습이자 또 방송에 기대해왔던 새로운 여행 예능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 익숙한 여행의 진짜 모습들이 어째서 시청자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오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지금은 여행이 트렌드가 된 시대이다. 그렇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이 트렌드에 탑승하고 싶어 한다. SNS에 자신의 여행 사진을 올리고 유명인이 다녀간 장소나 식사를 한 식당이면 가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싶어 한다. 정작 우리 자신도 점점 여행을 여정이 아닌 과시로서, 자랑으로서 채워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이 하게 되는 ‘진짜 여행’은 물질적인 트렌드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반면에 얼마나 화려한 여행을 즐겼는지 얼마나 유명한 곳에 갔는지 얼마나 멋진 사진을 찍었는지와 같은 소비적인 여행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자본에 휩싸인 여행 예능의 틈바구니에서 손에는 가이드북을 들고 어깨에는 배낭을 멘 여행자를 보는 시청자들은 저도 모르게 잊고 있던 여행의 본질을 다시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진짜 여행’을 말이다.

  하지만 ‘진짜 여행’을 외면하게 된 게 시청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여행사들의 투자를 받은 여행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 안정된 성공을 위해 개별 프로그램들은 지루한 클리셰들을 반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업적 성공을 위해 프로그램들은 여행의 본질을 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청자들 역시 여행을 왜 가는가에 대한 소소한 질문조차도 답하기 어려워졌으며 그들 스스로 방송이 연출한 여행처럼 점점 자신들의 여행을 소비하게 되고 만 것이다. 삶 속에서 여행을 즐겨야 하는데 이제는 여행이 마치 스마트폰처럼 남들이 다 하니까 해야 하는 상품이 되고 만 것이다. 실로 방송가의 게으른 제작이 만들어낸 씁쓸한 사회적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비판의 한 가운데에서 많은 여행 예능 프로그램들은 자신들은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 뚜껑을 열어보면 오히려 소비를 부추기고 상업적 성공에만 초점을 맞춘 예능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니 <트래블러>가 추구하는 가치는 여행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 인상 깊을 수밖에 없었고 <트래블러> 역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 접근법과 표현방식에서도 기존의 프로그램들과는 다르게 진행했다.


여행 예능인가, 다큐멘터리인가


  <트래블러>가 가지는 차이점에서 눈에 띄게 도드라지는 점이 있다. 바로 내레이션과 단순하고 최소화된 자막이다. 보통 여행 예능이라 하면 활기찬 노래에 쉴 틈 없이 진행되는 빠른 편집 진행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출연자들 역시 그에 걸맞게 큰 행동과 과한 반응을 보여주며 여행지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부각해 보여준다. 그러나 일반 시청자가 보통의 여행을 하면서 갖게 되는 사색이나 여유로움 같은 것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보여주지 않는다. 느림의 미학과 미니멀리즘이 떠오르는 시대에 참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시대 역행적 방식을 바꾸고자 <트래블러>의 제작진은 내레이션이라는 아주 확실한 느림의 미학을 선택했다. 배우들의 내레이션이 쌓인 영상을 통해 그들이 쿠바에서 느낀 순간의 감정을 안방의 시청자들에게까지 전달한 것이다. 이를 통해 마치 예능이 아닌 다큐멘터리와 같은 잔잔함을 안겨주었고 <트래블러>가 표방하는 ‘진짜 여행’이 가지는 사색과 느림의 미학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한편 자막과 촬영에서도 <트래블러>는 남다른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폰트에서 <트래블러>는 기존의 여행 예능들이 자주 사용하던 크고 굵은 폰트가 아닌 하얀색의 정갈한 폰트만을 사용했다. 다양한 색상과 종류가 난무하던 화면에 출연자들의 말과 감정을 대변하는 몇 가지의 폰트만이 등장하니 화면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 또 쿠바의 모습을 담은 영상 역시 각종 폰트로 더럽히지 않고 보여줄 수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제작진의 고뇌는 촬영에서도 엿보였다. <트래블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사람이 가장 보기 편한 20~30mm의 화각으로 촬영되었다. 또 카메라가 뒷걸음질 치며 무선마이크를 단 출연자의 앞모습을 촬영하는 것이 아닌 지향성 마이크를 사용하며 출연자의 뒷모습을 따라다녔다. 이는 얼핏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기존의 여행 예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트래블러>만의 특징이었다. 여행을 하는 두 출연자의 모습을 시청자가 따라가게 만들고 그들과 거의 비슷한 시선의 광경을 눈에 담게 하는 연출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출에 시청자들이 지루해질까 <트래블러>는 그들이 생각하는 느림의 미학을 영상미(美)로 한 번 더 표출한다. 바로 고속촬영과 스틸사진을 이용한 것이다. 쿠바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음악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Chan Chan’이 흘러나오는 오프닝에서 <트래블러>는 느린 화면과 기울어진 앵글을 통해 마치 영화에서나 느낄 것 같은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드론과 활기찬 팝송에만 의지하던 기존의 여행 예능의 오프닝을 파괴하는 시도였다. 쿠바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하는, <트래블러> 제작진의 신의 한 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적확한 시도였다. 거기에 더해 매회가 끝날 때마다 출연자의 스틸사진이 영상을 가득 메웠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왜 사진을 남기는가. 가장 우선시 되는 이유는 바로 기록일 것이다. 그때 그 장소에 우리가 있었다는 기록 말이다. 스틸사진의 나열은 출연자들의 여행을 기록이라는 의미를 돋보이게 하는, <트래블러>를 한층 더 완성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트래블러>의 잔잔한 매력을 두고 어떤 이는 반문한다. 이들이 떠난 여행과 이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진짜 여행’이라면 과연 우리에게 쿠바까지 날아갈 그리고 2주나 되는 시간을 쏟아부을 시간과 돈이 있냐면서 말이다. 살아남기에도 바쁜 현실에서 일반 시청자에게 ‘진짜 여행’을 누릴 여유가 있냐면서 말이다.


영원한 삶의 여유를 위하여


  1940년대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독재 체재 아래에서 신음하던 쿠바는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 이후 사회주의 체제의 국가가 되었다. 혁명의 역사는 아직도 쿠바인들에게 자랑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로 인해 2015년 오바마의 미국 정부가 쿠바를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기 전까지 철저히 경제제재가 이루어지던 국가였다. 따라서 쿠바에서는 늘 물자가 부족했고 이 때문에 쿠바의 물가는 대한민국의 물가를 웃도는 수준이 됐다. 반면 대한민국은 1960년대 이후 진행된 경제개발과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을 거쳐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안정된 국가가 되었다. 이처럼 두 나라의 경제력과 민주적인 상황은 거의 양극단에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런데 어째서 대한민국과 쿠바의 국민이 느끼는 행복은 그 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일까. 사회주의 체제에서 정부의 보조를 받는 쿠바를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과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두 국가의 국민이 느끼는 경제 상황과 외교, 문화 등의 인식 차이가 오랜 시간을 거치며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국가를 동일하게 비교하기 어렵다면 우리 내부의 곪아 있는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삶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학생들을 과열된 교육 시장에 몰아놓고 살아남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는 모순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렇게 대학의 문턱을 통과해도 취업으로 이어지는 열차에 계속 몸을 구겨 넣어야 한다. 사회가 계속해서 설국의 다음 칸으로 향하기를 말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듯 삶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고 확장해야 할 시기에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그들의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자신이 주체적인 ‘트래블러’가 되지 못하고 방향을 잃은 채 삶이라는 망망대해에 던져져 있을 뿐이다. 생각할 시간과 질문할 시간 없이 따라가기 급급하니 청년들은 삶에서 자신을 놓치게 되고,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돌아봐야 한다. 앞서 말한 상황이 청년들에게 맞닥뜨렸을 때 과연 우리 사회는 지친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는가. 쿠바의 사람들처럼 다정한 인사를 건넸는가. 진정 미디어는 우리 사회의 곪아가고 있는 것을 비춰주었는가를 말이다.

  쿠바의 혁명광장에 있는 체 게바라의 얼굴 간판 옆에는 “영원한 승리를 위하여”라는 체 게바라의 말이 적혀 있다. 우리 사회에도 이 말을 가져와 생각해 본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하루하루가 여유로움으로만 가득 찰 수는 없으나 저마다의 삶에서 진정한 트래블러가 되기 위해 한 번 즘 “영원한 삶의 여유를 위하여”라는 인식을 해봐야 할 것이다.


여행의 석양이 지고 일상의 해가 떠오른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는 카리브 해의 거친 파도로부터 아바나를 지켜주는 방파제인 말레꼰이 있다. 매일 저녁이면 말레꼰 너머의 카리브 해에 떠 있는 붉게 물든 석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매일 같이 그 반대편에서 해가 떠오른다. <트래블러>의 류준열 역시 이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 움직인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몸을 일으키고 다가오는 아침 해를 만끽한다. 사색에 잠기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감정을 충전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이라는 하나의 해가 뜨고 시간이 흘러 석양으로 지면 그다음은 우리의 또 소중한 일상이 반복된다. 보통 일상으로부터 탈출한 것을 우리는 여행이라고 일컫지만, 사실은 여행마저 우리의 삶이고 일상의 한 부분이다. 아무리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개발된 세상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0과 1로 나눌 수 없고, 흑과 백의 색으로만 나눌 수 없듯 여행과 우리의 삶도 단순한 둘로 나눌 수 없는 것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여행과 일상도 삶의 굴레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트래블러>의 이야기는 ‘진짜 여행’에 대해 보여준다. 소비가 아닌 생각의 확장으로서의 여행을 말하고 있으며 반복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까짓거 도전해 보는 거지’라는 용기를 주고 있다. TV 프로그램 한 편을 보았다고 다음 날 바로 우리의 삶이 확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트래블러>를 보았기에 시청자들은 여행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고 언젠가 여행의 의미를 찾게 될 때 이런 프로그램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한 편의 프로그램으로 소비되는 게 아닌 여행과 삶의 의미를 지탱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긴 선에서 어떤 한 점만을 툭 떼어놓고 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계속해서 연결된 점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시로 돌아보아야 한다. 인생의 특정 순간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또 나는 어디를 향하는가를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떤 때에는 자신에게 질문하기 위해 아마 우리는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트래블러>를 보라. 우리에게 다가올 여정의 힌트를 줄지 혹시 아는가. 아니 어쩌면 <트래블러>는 충분히 그 힌트를 줄 것이다. 왜냐? 결국 <트래블러>가 말하는 메시지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트래블러’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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