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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자란 친구 둘이 있다. 대학에서 친해진 이 둘과 이야기를 할 때면 비슷한 듯 다른 고향의 이야기에 밤새 재밌을 때가 있었다. 하루는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통고(통영고)에서 집 가는 버스가 하루는 한참 안 오는 거야, 그래서 뭐지 했는데 <1박2일> 나가고 사람들이 겁나 모인 거대?" "그니까, 갑자기 충무김밥도 개비싸짐"
나름 유명했지만 조용했던 동네가 유명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 이후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여행지가 된 것이었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친구들의 등하굣길과 배를 달래주던 길거리 음식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다.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전처럼 버스가 모자라거나 관광객으로 불편을 겪진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 친구들은 모두 수도권으로 향했다. 그중 서울에 사는 친구는 자전거가 취미인데 가끔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거리도 자전거로 다니곤 했다. 하루는 내게 서울살이의 고됨을 말했다.
"아니, 방이 원룸이라 답답해 나왔는데 한강에 사람이 너무 많은 거야. 뭔가 길을 걷는데 내 반경 안에 사람이 있으니까 오히려 더 답답한 느낌?
답답함을 피하려고 나온 실외가 오히려 답답함으로 가득하다니, 친구는 대전에서는 느낄 수 없던 인구의 빽빽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감정은 나 역시 수도권을 운전하던 군생활과 서울역의 매캐함 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공간이 쾌적하진 않구나 하고 말이다.
몇 해 전, MBC 뉴스 중 <로드맨이 간다>라는 코너가 있었다. 지방 소멸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라져 가는 지역의 인구, 그리고 부족한 인프라와 일자리. 점점 더 기회를 찾아 서울로 몰리는 인구와 그로 인해 생기는 사람들의 고달픔과 애환을 이야기했다. 올해 치러진 대선에서도 종종 인구 감소와 지방 분배에 이야기가 나왔다. 정부 세종청사도 그에 따른 결과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국가의 밀도는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가파른 속도로 몰림과 소멸이 진행 중이다.
'이태원 참사' 사고에 대한 BBC 코리아의 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앞 뒤가 꽉 막힌 공간에서는 사람들은 이성적인 행동과 사고가 불가능해진다. 몸부림으로 밀려오는 내 앞의 압력과 진출하고자 등 뒤를 타고 오는 내 뒤의 압력이 동시에 올 때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밖에 남을 수가 없다. 한계를 넘는 순간, 이상 군중의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군중의 밀집도를 관리하지 못한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참사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유명세와 기회는 사람을 도시로 끌어 모은다. 모이고 모인 사람들은 다시 공간의 활기와 기회를 창출한다. 반면 떠난 이들의 빈 곳을 채우지 못한 도시들은 생명을 잃어간다. 국가의 밀도는 사람의 생명과 생활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태원 참사'는 작게는 관리되지 못한 군중의 밀도이지만 크게는 관리되지 못한 지난 10여 년의 국가 밀도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있던 누구도 가해자라 쉽게 칭할 수 없다. 통제되지 못한 군중엔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이들만 있을 뿐. 국가와 도시도 마찬가지다. 관리되지 못한 국가의 밀도는 언제고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공공의 의지로 뭉친 시민 사회는 없어지고 생존을 위한 개인만이 남게 된다. 국가는 국가의 밀도를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태원의 골목이 아닌 우리가 사는 도시와 사회가 그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