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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Jan 26. 2023

기레기와 방송국놈들
그리고 언론인

솔직히 말해 언론인이 된다는 건 무섭다. 지독히도 소란스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보다 공론장에 깊게 발을 딛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 삶이 주는 고난을 이겨내며 기꺼이 그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PD라는 이름으로 언론과 방송에 몸 담고 있는 이들은 그래야만 한다. 


때로는 익명으로 쓰인 '기레기' 또는 '방송국놈들'이라는 댓글에, 오랜 시간 노력했던 배움과 열정, 소망이 무참히 짓밟히곤 한다.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만들어준 은사님의 가르침과,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와 그 문제를 향한 관점을 토론했던 친구, 선배, 후배들의 이야기들도 그 짓밟힘을 피할 수 없다. 무슨 말을 하든 한국 언론 따위 믿지 않는 이 시대에, 나와 같이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은 누구보다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하루는 영원이형과 동훈이형을 만난 자리였다. 로스쿨을 다니던 영원이형이 말을 꺼냈다. 자신과 함께 로스쿨을 다니는 전국의 신방과, 언정과 등등의 출신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언론인의 꿈을 저버리지 않는 동생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자신들은 사회의 문제를 보다 단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실제로 그렇지도 않지만) 법조인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언론의 힘으로, 언론의 말과 시선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그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누구보다 고된 공부를 함에도 못내 자신을 낮추며 나를 높여주는 말에 괜히 고개만 끄덕였다. 


법조인의 길, 마케터로서의 길, 기업의 홍보 담당자, 때로는 유튜브 편집자, 수많은 공기업의 사원과 공무원. 언론인의 길을 가고자 했던 혹은 함께 언론을 공부한 이들의 모습은 나열한 것보다 더 다양하다. 어쩌면 훌륭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아닌 말로다가 뭣하러 이 고달픈 직업에 몸을 담고 싶겠는가.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은 걸핏하면 소송에 걸리기 일쑤고, 부리나케 뛰어다닌 취재의 과정과 결과는 섣부르고 게으른 일부 기자들의 받아쓰기와 '뇌피셜'로 인해 통으로 묶여 비난받는다. PD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들은 시청률 저조와 수익성의 이유로 공영방송에서마저 사라지고 있다. 남는 건 돈 안 되는 시사와 교양, 다큐가 아닌 이른바 'K-콘텐츠'라고 불리는 드라마와 예능만이 PD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숨구멍이 되었다.


또 이제는 만연한 우리 사회의 혐오도 언론인이 되기 주저스러운 이유다.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는 사회 통합에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소란스럽다. 한 사안을 두고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한 현상을 보고도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한다. 왕정도 아니고, 공산당 1당 독재도 아니기에 서로 각자가 가진 목소리로, 각자가 가진 논거와 관점으로 이 사회에서 권리를 주장한다. 공영방송은 이러한 목소리들을 대변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목소리를 내기 힘든 이들에게 빛을 비추고 마이크를 건네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공영방송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의 갈등을 해소하고 의견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요즘의 모습은 공영방송과 그곳에 속한 언론인 마저 두려울 정도로 혐오가 만연하다. 작게는 혐오적인 표현부터 크게는 조롱과 멸시, 쉽사리 던지는 우리 사회를 향한 단편적인 판단이 모두 오물을 뒤덮은 채 남발되고 있다. 


공동체는 약해지고 연대는 모멸의 대상이 된다. 개인이 알아서 잘 살아야 되는 시대가 됐고,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권리 추구와 쟁의들은 모두 소음이 된다. 그리곤 이 소음을 비난하는 목소리들은 더 큰 혐오가 되고 쟁의와 혐오로 소란스러워진 공론장을 다수의 사람들은 떠난다. 곧 공론장에 남은 사람들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들과 그들을 비난하고 헐뜯는 이들, 다시 비난을 일삼는 이들을 나무라고 혐오하는 이들만이 남는다. 공론장의 한가운데와 가장자리엔 언론인들이 공론장의 기둥과 기둥을 붙잡고 무너져가는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이런 노력마저도 비웃는 이들 덕에, 그 기둥을 붙잡고 있던 언론인들도 하나둘씩 공론장을 떠나고 있다. 


단편의 생각들로 짜인 이 허무한 글을 여기까지 읽을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되도 않는 소리",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해결도 안 될 이야기를 왜 늘어놓은 거지?"라는 류의 생각을 한 사람도 있을 테고, 이 단편의 생각에도 한 문장에 꽂혀 나름의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 테다. 글에는 주제가 있고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모르겠다. 오늘만큼은 우리 사회의 모멸과 혐오,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언론인의 현실과 개인으로서의 언론인을 막무가내로 말하고 싶었다. 때론 어렵고 복잡한 건 그대로 어렵고 복잡하고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다.


수많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언론인들을 응원하고 싶다. 복잡한 미디어 환경의 구조 속에서도 맡은 일을 다하는 기자들과, 자신의 삶을 그리는 시간을 쪼개 타인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PD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닮아가고자 하는 나를 위해 말이다. 


보편적이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는 분명 다른 이들에게 감동(感動)을 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게 내 소망이고, 언젠가 '방송국놈'이라고 불릴 내 직업이 가질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명예이다. 설령 수많은 조롱과 혐오에 찢기더라도 지금의 다짐만큼은 지켜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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