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가 되었다,
그렇게 기뻐만 해도 되는가

아주 약간 운이 좋아서

by 리얼숲

이야기를 써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 올해 처음으로 쓴 글을 다시 읽고 이 글을 쓰기로 다짐한다. 이미 메모장에 썼던 글을 고쳐 쓰는 수준이지만, 브런치에 남긴다.


나의 글은 나의 족쇄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다. 주변과 환경이 변함에 따라, 그리고 경험이 쌓임에 따라 끊임없이 입장과 태도가 변한다. 타인의 그런 모습을 두고, 혹은 나의 그런 모습을 두고 '예전엔 안 그랬는데...'라는 말을 구태여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 머무르는 것과 초심을 잃지 않는 건 다르다. 뾰족하고 다듬어진 경륜엔 없는 가장 번뜩이는 무언가가 뭉툭하고 거친 초심에는 담겨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기억해야 할 일과 감각은 꼭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지금 쓸 이 글에 배반하는 태도가 내게서 불쑥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나의 족쇄다.


6월, 브런치에 글 한 편을 썼다. 구질구질하게 써 내려간 문장 중에 '심란하고 막막했다'는 짧은 문장이 있었다. 언시를 포기하기 직전까지 치달은 감정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나고 그토록 꿈꾸던 PD가 되었다. 축하를 받았고, 나를 대신해 흘려주는 눈물에 뿌듯하기도 했다. 드러내지 말자 다짐했건만,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삐죽 새어 나오기도 했다.


입사를 하고 한 달은 집에 가서 늘 생각에 잠겼다. 입사 20년 차 이상들에게서 듣는 말들은 설렘보다 의문이 되었다. 가장 나를 괴롭혔던 건 이 말이었다.


"여러분은 어찌 됐든 사다리를 붙잡았다"


내가 입사한 회사는 추석 연휴 직전 PD 2명을 뽑았다. 달리 말하면 최종 면접을 본 7명 중에 5명이 최악의 추석을 보냈다는 뜻이다. 안도와 기쁨으로 가득했던 나의 추석과 달리, 어느 곳에선 막막함으로 가득한 추석이 있었다. 그들만 있는 게 아니다. 2명을 뽑기 위해 거쳐간 네 번의 단계에서 최선을 다하고도 떨어진 이들이 있었다. 합격한 2명이 느낀 기쁨의 총합과 떨어진 이들이 느끼는 막막함의 총합 중 무엇이 더 무거울까?


경쟁 속에 살아가기에 누군가의 합격과 불합격은 피할 수 없다. 당연히 남을 위해 내가 떨어져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회사의 입장도 이해한다. 언론은 더 이상 성장하는 사업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잔혹한 고용 형태 마냥 책상을 빼거나 해고할 수도 없다.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많고, 뽑을 수 있는 사람은 적은 상황이다. 그래서 "사다리를 붙잡았다"는 말은 냉정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 된다.


의문은 사실을 인정한 뒤에 쏟아졌다.

나는 그렇게 쉽게 기뻐해도 되는가? 기사에선 끊임없이 '쉬었음 청년'에 관한 통계가 나오고, 다큐에선 '고립은둔청년'의 문제가 심각하게 언급된다. 타인의 슬픔 위에서 마냥 좋다고 웃을 수 있고 기뻐해도 되는가?

회사는 그렇게 쉽게 말을 해도 되는가? 선배들은 청년 취업난 기사를 두고 혀를 차고만 있어도 되는 건지, 산업이 고꾸라진 건 어쩌면 선배들 세대의 탓일 수 있다. 누적된 시간이 만들어 낸 위기 속에서 태연하게 울타리 밖 치열한 이들을 관망하고 있어도 되는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하기 위해 취재하고 발견하고 이야기를 전달하겠다?

내가 꾸고 있는 꿈은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니다. 올 한 해도 나와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시험과 면접을 보러 다니고, 글과 영상을 만들어가며 각자의 꿈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엔 나보다 더 뛰어났던 이들도 있다. 그저 아주 약간 운이 좋아서 입사한 나는 그들의 모든 꿈과 노력을 대신해 PD가 되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지 못하는 시대에, 나와 같은 꿈을 꿨던 이들의 노력에 빚져 기회를 얻은 것뿐이다.


나는, 또 운 좋게 먼저 기회를 잡은 젊은 언론인들은 여전히 꿈과 현실의 불안감 속에 싸우는 동료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나의 기회는 그저 나의 노력이나 우수함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자주 그걸 잊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저널리즘은 그저 시험에 통과했다고 기뻐하는 것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비판하는 어느 어른들의 관망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첫 출근 전날, 메모장에 쓴 문장이 있다.

'평지에 있는 사람들을 경외하며,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쏟아내고 싶다.' 지나칠 정도로 거창한 말이고 어려운 일 같긴 하다.

무엇이 대답이 될까.

2019년, 처음으로 언론인을 꿈꾸게 해 주었던 대학 시절 교수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안 이뤄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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