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말을 좀 예쁘게 할 필요가 있다

인사와 응원이 필요하다

by 리얼숲

먼저 이 글을 읽게 될 나의 가까운 지인들에게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네가?"라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특히 대학원 동기 '강'의 경우, "그만 좀 T처럼 말해!"라는 말을 내게 아주, 무척이나, 자주 하곤 했다(물론 그건 '강'이 유독 F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 이런 제목이라니, 인지부조화 혹은 자가당착 그런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을 법하다. 짧게 변명하자면, 말을 예쁘게 안 하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할 뿐이다. 상처라면... 미안하다(그게 왜 상처인 줄은 영원히 모르겠지만)


근데 오늘 내가 말하는 '예쁘게 말하는 것'은 타인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배려하며 다정하게 마음을 어루만지자.. 뭐 그런 게 아니다.


인사 잘하고, 응원 좀 해주자는 것이다.


IMG_9082.JPG 2022년 여름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

영국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영어에 자신감만 있고, 유창하진 못한 내가 영국에서 제일 신경 썼던 건 예의 바르게 말하기였다. 어린 시절 영어학원에서 "선생님, 풀 좀 주세요!"를 "Teacher, Give me the glue!"라고 직역(?)한 적이 있다. 그때 책상 앞에 풀을 탁 내려놓은 채 날 째려보았던 원어민 선생님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영어로는 그게 매우 무례한 말이었다. 아마 선생님 귀에는 "어이, 선생 양반, 풀 좀 내놔봐!"로 들렸을 것이다. 여하튼 이런 경험이 있는 나로선 언제나 그 나라 문화에 맞는 예의 바른 문장을 구사하고 싶었다.


"Excuse me?"를 계속 쓰다가 점점 더 "Sorry?"를 쓰기 시작했다. 관광지에서 부딪혀도 "Sorry" 잠깐 길을 터 달라고 할 때도 "Sorry" 주문하기 위해서 "Sorry" 말을 잘 못 알아들었을 땐 세상 상냥하게 웃으면서 "Sorry"를 썼다. 뭔가 아무런 정보가 없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해외, 그것도 유럽에 가서 저자세로 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는 전혀 아니다. 내가 'Sorry'를 쓰기 시작한 건 그 나라 사람들이 내게 이틀도 안 돼서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치면 "저기..."쯤 될 말이었지만, "Sorry"가 갖는 느낌은 "어이쿠, 제가 당신의 공간을 넘거나 잠시 시간을 뺏어도 될까요?" 같은 느낌이었다. 별 것 아닌데, 그 말 한마디로 타인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었고, 소위 말하는 'Small Talk'이 수월했다.


그러다 문득 내 행동이 한국과 다름을 느꼈다. 한국에선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마트를 들어가서 계산을 할 때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와 같은 말을 잘하지 않았다. 영국에선 다른 인격체였다. 버스 탈 때 카드 찍으면서 인사하고, 마트에선 "Thank you very much, Have a good day"를 아예 세트로 묶어서 늘 하고 다녔다. 한국에선 버스 기사 아저씨는 NPC가 되어 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전국 어딜 가나 "카드 앞에 꽂아주세요"라는 말 밖에 하질 않는다. 누가 더, 그리고 먼저 잘못을 했다 이런 류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한국은 그게 손님과 직원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문화가 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부턴 노력한다. 인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진다. 늘상 그러거나 익숙해진 건 아니지만, 인사말 하나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남에게 못하겠는가 싶다. 생판 모르는 남이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감사합니다"를 건네면 혹시 그 사람 입장에선 사뭇 새롭거나 기쁘지 않을까? 이전에 스타벅스 알바생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스타벅스 드라이브쓰루의 알바생처럼 타인을 대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한국 사회 분위기가 지금보다 몇 배는 활기차질 거라고 생각한다.


응원이 익숙해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이래저래 살아나가기가 퍽퍽한 시대이고, 희망과 행복을 가꾸기보다 낙오와 실패에서 살아남기가 사회를 더 지배하는 분위기인지라, 응원 역시 맥이 빠질 수가 있다. 나의 응원이 상대에게 섣부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응원과 격려도 주저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국 여행을 하면서 리버풀의 한 음악 바를 간 적이 있다. 바텐더로 일하는 여자친구를 기다리던 한 남자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KakaoTalk_Photo_2025-07-03-15-54-30.jpeg 2022년 여름 리버풀 음악바

"Wow, you have a Big step!"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꼭 와 보고 싶었던 곳에, 혼자서 계획을 짜고,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하자 그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숙소로 돌아온 뒤, 낯선 세상에 혼자 떨어져도 지내봤는데 다른 걸 못 해보겠나 싶었다. 진짜, 정말 너무나 사소한 별 것 없는 말인데, 그런 응원 하나가 생각보다 힘을 내게 했다. 솔직히 영국을 가면서도 '지금 시기에 이래도 되나? 괜히 돈을 쓰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고, 일하며 모았던 돈의 거의 절반을 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잡념이 싹 사라졌다.


내가 낯선 사람이라서 그가 두리뭉실한 응원을 보낸 걸 수도 있지만, 듣는 나로선 확실히 생각의 전환이 되는 말이었다. 오지 않았다면 영국에서 본 순간순간들, 한국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영국이라는 공간의 구성과 시스템의 차이들을 감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 찬양이 아니다. 그리고 영국의 모두가 그러진 않는다. 어디든, 언제든, 별 거 아닌 일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말과 상황을 마주할 때가 누구한테나 올 수 있다. 그게 나한텐 영국이었을 뿐이다.


뻔할 수도 있는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다. 요즘은 정말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건 여유 꽤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또래들의 삶을 건너 건너 혹은 직접 듣다 보면 나처럼 아직 취업준비를 하는 이든, 이미 취업을 했든, 여러 문제로 참 힘이 드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개인으로서는 버티거나 움츠리는 경우를 많이 보고 들었고, 사회적으로는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이 눈에 띈다.


기사나 미디어에선 사회가 구조적으로 제도를 바꾸고 어떻게 해야 한다지만, 그게 쉬운 일일까. 사람 하나, 아니 수십 수백 명이 어떻게 돼도 잘 안 바뀌는데. 책임 없는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와중에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말들만 편을 나눠 해대니...


사회가 변하는 건 너무 힘들다. 변해야 하지만, 변하기만을 기다리면서 울고 앉아 있거나 하늘에 손 비비며 기다릴 순 없다. 할 수 있다면 조금씩 말을 예쁘게 하는 것부터 타인에게 해보면 좋지 않을까. 아주 기본적인 것,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잘은 안 하던 그런 인사와 응원을 타인에게 해보면 좋지 않을까.


희망은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얻어오는 것도 아니다. 조금씩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만드는가? 나는 거대한 무언가보다 예쁘게 말하는 것, 인사를 건네고 응원을 해 주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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