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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Apr 29. 2020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할까?

우리 가족으로부터 받은 나의 행복

4월의 산문 #6


내 지나간 인연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종종 말했다. 결혼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고 내게 말하곤 했는데 ‘누구’와 ‘누구’가 만나 영원을 약속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사람들은 사회가 정해 놓은 약속과 규칙을 억지로 따라가는 걸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그 친구의 생각이었다. 하긴 조금만 생각 해봐도 30년 정도를 따로 살며 서로 다른 연애를 해왔을 거고 다른 삶을 살아왔을 터인데 남은 몇 십 년을 두고 

‘영원토록 사랑해!’라며 선언하는 그 모습은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근데 뭐랄까... 왜 흔히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고. 내가 그렇다. 머리로는 인생을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이 결혼이라는 모습이 굉장히 허망해 보이는데 가슴으로는 그 막연하고 허망한 결혼이라는 게 하고 싶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

우리 아빠는 29살에, 엄마는 25살에 결혼을 했다. 내가 두 분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대개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나의 부모님 역시 상당한 고생을 겪으셨다. 1986년 아무것도 없던 포항 촌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동해시장에서 쌀을 처음으로 파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 누나들이 찍힌 사진을 보면 수퍼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때부터는 두 분은 그릇가게를 운영하셨고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3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물론 그릇에서 방앗간으로 업종은 변경되었다) 엄마는 가난한 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오는 바람에 살며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생들을 했고 나와 누나들의 고등학교 생활이 끝날 때까지 한 시도 빼놓지 않고 아침밥을 해주셨다.(지금 돌아보면 정말 감사하다) 아빠는 내가 10살이 되던 해부터 더 이상 그릇가게만을 운영하기에는 여의치 않아 용달트럭을 한 대 사 이삿짐센터의 일도 하셨다. 두 분의 삶을 언젠가 뒤돌아 봤을 때 너무 안쓰러웠다. 자식들이 뭐라고 그렇게 뒷바라지를 하고 자신들의 삶을 한 평생 일과 생계에 쏟아 부었을까. 자식으로서 할 생각인가 싶지만 두 분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싶었다. 


2년 전,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었다. 같이 간 여행이 기억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없었는데 갑자기 여행이라니, 그것도 베트남이라니...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여행을 가서 작고 사소한 것들로 싸웠다. 여행까지 와서 싸우다니 정말 피곤하다 못해 왜 왔나 싶었다. 그러다 여행 마지막 날, 그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숙소에 딸려 있는 마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가족끼리 잔잔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글거리는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해가며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상하게도 그 날 밤은 쉽게 잠을 자지 않았다. 내 몸에 닿는 포근한 이불이 마치 가족의 사랑 같다는 느낌을 간직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내가 지켜주고 늘 같이 하고 싶다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기 전 들었던 생각 한 가지. 부모님은 우리로 인해 결코 불행하지 않았구나. 


행복은 쌓아가는 게 아닐까?

내가 결혼이라는 허망한 약속을 끝에 결국 하고 싶다 느끼는 이유는 ‘행복’ 때문인 것 같다. 단지 나의 행복만이 아닌 내가 커 오며 느꼈던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행복 말이다. 우리 가족이 주고받았던 그 애매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의 사랑하는 사람과 내 미래의 자식에게 나눠 주고 싶다. 연극이 아닌 진짜 가족이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추억을 만들면서 말이다. 가족이 가지는 수많은 어려움을 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만 때론 싸우고 화를 낼 걸 분명히 안다.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가지는 그 안도감과 따듯한 추억을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한 없이 주고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부모님이 내게 주고 내가 우리 가족을 통해 느낀 것처럼 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렵다는 걸 더 없이 느끼는 요즘이다.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빠져들지만 어느 샌가 서로 배신하고 배신당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어지지만 누군가는 끝끝내 끊어지고 만다. 이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만난다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서로의 ‘행복’을 위해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 더딘 시간이 흘러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마주할 그 순간의 나와 나의 인연에게 지금은 그냥 응원을 전하고 싶다. 그 허망한 약속을 잘 지켜나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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