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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Apr 17. 2020

아버지, 저는 제사 안 지냅니다.

4월의 산문 #5


설날과 추석이 되면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다. 바로 제사.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하나뿐인 아들이자 막내아들로 자란 놈이 제사가 괴롭다니... 배부른 소리라고 할 사람들이 있을게 뻔하다.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엄마들이 고생할 건 생각하지 않느냐’ 

‘너는 제사를 지내기만 하면 되지만 엄마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하며 일하고 치운다.’ 

맞다.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장남인지라 그 갖은 고생을 우리 엄마가 하는 걸 어릴 때부터 지켜봐 왔으니까. 그래서 제사가 내게 괴로운 존재인 것이다. 


‘왜 이렇게 모두가 고생해야 하는 거지?’    


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풍경은 집마다 비슷하기도 상이하기도 하겠지만 우리 집의 풍경은 꼭두새벽부터 시작한다.(벌써부터 피곤하다) 아빠(장남 포지션)는 매일 그렇지만 일어나서 집 주변을 둘러본다. 늘 하던 대로 본인만의 일을 한다. 엄마(맏며느리 포지션) 역시 일찍 일어나 제사 준비를 진두지휘한다. 그러면 늘 명절 첫날을 우리 집에서 자는 부산의 삼촌네가 일어나 정리를 하고 제사 세팅에 열을 가한다. 어느 정도 모습이 대충 그려지면 포항 시내에 사는 작은 아빠 네가 우리 집으로 온다. 적당한 인사를 나누며 여기까지는 화목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 여기까지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의 인사일 수 있으니 별로 싫지 않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 집은 제사를 남자만 지낸다. 손녀들에게는 기회조차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보수적이고 유교적인(도대체 유교적인 게 요즘은 뭔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 같이 즐겁게 먹어야 할 아침 식사를 남자들은 거실에 식탁을 놓고 먹고 엄마들은 주방에 대충 서서 먹는다. 같잖지도 않은 일이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어느 순간 이 모습이 정말 꼴 뵈기가 싫어 더 이상 거기에 앉아 밥을 먹지 않는다. 어른들은 제사 지내야 하는데 밥 안 먹고 뭐하냐고 하지만 사실 ‘제사를 지내야 하니까’라는 말이 더 잔인하다. 제사가 뭐라고 서로 즐거워야 할 명절에 누구는 주방에서 대충 식사를, 누구는 입에 들어가지도 않는 식사를 꾸역꾸역 밀어 넣어야 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우리가 아침을 다 먹을 때 즘이면 작은 할머니 네에서 어른들이 몇 온다. 아빠의 사촌들이 오는 것이다. 사실 명절이 아니면 길을 가다 마주쳐도 모를 친분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이름도, 호칭도 모른다. 그냥 친척 어른. 나에게는 그게 그 사람들을 정의하는 머릿속의 프로세스이다. 그런데 오만 아는 척은 다한다. 하나도 친근하지 않은데 친근한 척 내게 말을 걸고 앞으로는 내가 제사를 지내야 하니 잘 보라는 둥의 말을 한다.

“이제 진국이 네가 제사 지내야 되니까 잘 봐 놔라~”


그럴 일은 없는데요?


제사가 마냥 싫은 게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는 명절이면 평소에 안 먹는 음식들을 먹는 즐거움에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생기니 생각은 곧 달라졌다. 도대체 왜 이 억지스러운 의식을 가족들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1년에 2번이나(기제사를 포함하면 4번) 해야 되는지 모르겠을뿐더러 제사가 끝나면 증발하듯 사라져 버리는 명절의 목적의식이 과연 진짜 우리가 명절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을 갖게 했다. 더 이상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제사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생각이 든 이후로 매년 2번씩은 아버지에게 꼭 말한다.


“아버지, 전 제사 안 지낼 겁니다.”


사실 ‘제사’라는 의식이 완벽히 싫어진 건 나의 군 생활 동안 돌아가신 우리 큰 이모의 일 때문이기도 하다. 이모는 정말이지 가까운 친척이었다. 가족끼리 만나면 별 걸 안 해도 편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잘 통했다. 물론 엄마에게도 의지가 되는 언니였을 터다. 그런 이모가 돌아가시고 나서 멍하니 밤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예기치 않은 세상의 잔인함 때문에 이토록 쉽게 사랑하는 이들을 뺏길 수 있구나. 혼자 멍 때리며 상념에도 젖다 보니 끝에 도달한 생각은 하나였다. 

'있을 때 잘 하자. 한 번이라도 더 맛있는 식사를, 한 번이라도 전화를,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자.'

언젠가 서로 영영 볼 수 없을 때 가질 추억을 지금부터라도 더 채우고 싶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과 추억은 가슴속에 남는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문득문득 떠오른다. ‘여기서 그걸 먹었는데’ ‘우리가 그때 그랬지’ ‘이런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 생각들이 슬플 때도 있지만 또다시 일상에 치이며 바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버스 뒷자리에서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기억과 감정들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추억들이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진정한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번 추석이 다가오면 또다시 나는 말할 예정이다. 


“아버지, 저는 제사 안 지냅니다. 그래도 아빠, 엄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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