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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얼숲 Apr 09. 2020

오늘은 뭘 먹지?

4월의 산문 #3


아침 일찍 일어나고 나서부터 내 첫 일과는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다. 우선 세수를 하고 나서 전신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부스스한 몰골을 조금 다듬으며 안면 스트레칭과 마사지.(피부 나이를 걱정하는 스물다섯이다) 얼굴 근육을 피자 도우를 만드는 것처럼 펴고 나면 이번엔 몸을 쭉 피고 스트레칭을 한 다음 운동을 한다. 일찍 일어나니 좋은 게 있다면 이렇게 몸을 움직이고 씻고 나와도 아직 8시 정도라는 거다. 여전히 내가 할 일 보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그런 시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생각보다 많은 이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아침밥을 챙겨 먹기로 했다. 사실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억지로 먹었기 때문에 아침밥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대학을 들어오고 나서도 보통 아침은 거르고 점심부터 식사를 시작한지라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는 것인지는 늘 의문이 들었다. 근데 확실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라는 게 존재한다.(과학적으로도 증거가 있다는데 그걸 찾아보는 건 사실 귀찮다) 적당한 요리에 밥을 먹고 사이버강의를 조금 듣고, 책도 좀 읽고... 그냥 아침밥을 먹는 작고 사소한 일일 뿐인데 아침밥을 먹는 일 전후의 사건들이 기분 좋게 연결되며 행복감을 안겨줬다.


그래서 아침마다 즐거운 고민을 한다.

오늘은 뭘 먹지?


냉장고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대충 어떤 재료들이 있는지 스캔한다. 엄마가 보내준 겉절이, 나물무침, 오징어 젓갈이 눈에 띈다. 공금으로 사다 놓은 채소들도 보인다. 거실 한편에 자리 잡은 상온 보관 채소들도 확인한다. 

‘음, 저 대파는 오늘 안 먹으면 상태가 안 좋을 거 같은데?’ 

대파를 꺼내 들고 마늘과 계란을 꺼낸다. 쌀을 두 번 씻고 전기밥솥의 코드를 꽂는다. 쿠쿠가 작동된다는 음성이 들리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쾌속으로 밥을 짓는다. 대파를 썰고 넓은 팬에 기름을 두 번에서 세 번 두른다. 파 기름을 내주고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김치를 잘게 썰어 팬에 투하하고 백종원이 된 마냥 팬을 흔들며 이리저리 뒤섞어준다. 약한 불에 김치와 파가 익어 가면 마늘을 몇 쪽 꺼내 썰기 시작한다. 몇 알은 편 마늘로, 몇 알은 잘게 다져준다. 약간 차가운 거실에 밥이 다 되어가는 소리와 마늘이 다져지는 소리가 풍성하게 채워진다. 슬슬 배도 고파지는데...라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기 시작할 무렵, 마늘과 밥을 다 같이 넣고 설탕과 후추를 뿌려가며 나만의 김치볶음밥을 완성한다. 마무리는 반숙 계란 후라이와 참기름. 입 안 가득 고소함과 매콤함, 촉촉함 등이 어우러진다. 오늘 하루도 조금은 더 행복해졌다.


아침형 인간으로의 변화 이후 다짐한 것이 있다면 아주 사소한 일들이라도 이렇게 나를 더 건강하게 해주는 일들로 하루를 채워나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아침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며 소소한 내 일상을 브런치에 기록하는 것. 당장 내 삶이 이 소소한 것들로 인해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아침밥을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변하고 있고 더 건강해지고 있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긍정들이 모여 어쩌면 앞으로의 내 일상과 일에 더 활기찬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이따 먹을 점심과 저녁을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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