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지는 상병

5. 상병 일기 1

by 리얼숲

2016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그때의 썼던 일기들.

그 일기들의 재구성.


2017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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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달고 첫 휴가.

대구 클럽을 갔다.

정말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스쳐 지나간 수많은 광경들... 클럽은 그런 곳이었다.


2017년 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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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이랑 만났다.

두꺼비 객잔이 유명하다고 해서 갔는데 우리 둘 다 술을 잘 마시진 못했다.

서로의 꿈에 대해, 친구 관계에 대해, 추억과 미래를 오가는 이야기들을 했다.

탕수육이 식어 말라가는 줄도 모르고 온갖 이야기를 했다.


2017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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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학과를 다니던 동환이가 내 후임으로 전입했다.

사실 정말 미안했던 게 얼굴만 기억나고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미안했지만 시간이 제법 흘러서 그런 것 같다.


2017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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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을 이루고 더 좋은 영상을 만들고 즐기려면

동시에 끝없는 자극을 받고 치열하게,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2017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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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사단 167 연대 1중대에 갔다.

너무 늦게 복귀를 했다. 21시 복귀... 불침번 3번초까지...최악이다.


2017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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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이형이 면회 왔다.

중국으로 다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중대였다.

너무 반가웠는데 살이 엄청 쪄서 돌아왔다. 아직도 게으르게 사는 것 같았다.ㅋㅋㅋ

그리고 상필이는 웬 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표정에 어색함이 묻어 나와서 내가 괜히 어쩔지 몰라했다.


2017년 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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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병원 이비인후과를 갔다.

심하게 말해서 귀가 망가졌다고 한다. 소음성 난청이 생겼다.

휴가 때 클럽을 갔다 온 후로 계속 이명이 괴롭혔는데...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스테로이드를 먹고 귀에 안 좋은 모든 행동을 멈췄다.


2017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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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병원을 갔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가장 먼저 이 병을 나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순간 내 무신경함이 죄책감으로 밀려왔다.

순간의 쾌락 때문에 소중한 귀를 잃을 뻔했다.


2017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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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비단을 갔다 왔다.

뭔가 왠지 내가 평소에 알던 길과 다른 느낌이었다.

성규 생일이라 파리 바게트에서 생과일 케이크를 샀다.


2017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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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지검 1일 차

이번 훈련도 배차가 없었다. 사실상 중대 배차는 기본적으로 '짬'순인데, 내가 6월 4명 모두에게

밀린 게 자존심이 상했다. 수송관과 배차계가 날 잊은 건가 생각도 했다.

야간 운행이란 운행은 다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따질 노릇이 아니니까 받아들이긴 하겠지만 더러워진 기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혹한기 때와는 다르게 핫팩을 챙기지 않았는데 실수다.

추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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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것이다.

비록 훈련이 춥고 힘들지만, 결국엔 해야 할 일이고 나중에 무언갈 하고자 할 때,

지금의 내가 정작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걸 알면 얼마나 쪽팔릴까.

그러니 미래를 위해 지금의 의무는 잘 해내야 하는 것 같다.


2017년 3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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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회관에서 본부대장이 성규와 류대원 병장과 함께 날 초대했다.

삼겹살에 소주에 맥주에. 뭐 이런 군생활이 다 있나ㅋㅋㅋ


2017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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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탄핵됐다.

아마 오늘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 되지 않을까.

당직 대기라 지통실에 있는 탓에 아침부터 국방부, 육본, 군단, 타사단의 회의부터 군단장 주관 회의까지.

군생활하면서 가장 규모가 큰 회의를 직접 관람했다.

탄핵 이후가 궁금하다. 어떤 대통령이 새로 뽑힐 것이며, 우리나라가 조금은 바뀔 것인가?


2017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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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한 지 만 1년이 됐다.

1년 전엔 매트리스 위에서 시계 라이트만 껐다 켰다 반복했는데...


2017년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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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참 많은 것 같다.

'왜?'라는 질문과 진지한 고민도 가지며, 다른 이의 고민도 한 번 즘 내게 빗대어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다고 복잡하게 살진 않았다.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과 의지로 무언갈 했으니까 말이다.

다만, 스스로에게 조언하고 싶다.

자질구레한 생각은 뒤로 하고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인 현실을 보고 즐겁게 지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꿈꾸자고.


2017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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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운행 나가는 것도 지겹다.


2017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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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우리 사단에 왔다.

px에서 노닥거리다 코앞에서 봤다.

사실 안철수보다 경호원들이 보여주는 쇼맨십이 더 멋있고 신기했다.


2017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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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관을 옮겼다. 체단실이 있던 곳으로.


2017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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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하니, 스르륵 쓰러질 듯 요새는 지친다.

세상 복잡한 일 다 놔두고, 가만히 누워서 바람 쐬고 노래 듣고 싶다.


2017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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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호로 507 1대대와 47대대를 운행했다.

전덕수 상사님이 순대국밥도 사주셨다. 괜히 이분과 친분이 쌓인 것 같다.


2017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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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화생방사령부와 수도군단을 갔다.

점심으로 한우를 먹었다. 이게 큰 회의 배차에 묘미인 것 같다.


2017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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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 걸친 달, 그 곁에 비행기, 흘러나온 음악소리.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기분 좋은 순간이 앞으로도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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