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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원래 쓰기는 쉬우나 줄이기는 어려운 법

by 이승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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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부채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미국은 천조국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국방 예산이 천조원이라는 뜻으로 엄청난 경제력으로 국방비를 지출하는 미국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은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으로서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지구를 들었다놨다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온 나라가 휘청거렸다. 당시 미국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우리의 IMF시기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을 모으며 저축을 하면서 이겨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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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의 말씀. 정확히 그 반대로 돈을 있는 대로 뿌리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적자가 심해 파산 직전의 회사도 돈을 수혈하면 살아난다. 반면 흑자도산이라는 얘기가 있듯 회계상 수익이 나더라도 현금이 돌지 않으면 회사는 망한다. 그만큼 현금흐름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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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많은 금융기업은 본인들이 초래한 경제위기로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안게 됐지만 정부는 긴급 수혈을 통해 부도를 막아줬다. 양적완화라는 표현은 사실상 이 때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그 전까지는 금리의 변동을 통해 해결이 가능했지만 불안도가 너무 커 시장 금리가 0%에 수렴하는 수준임에도 경기 회복이 되지 않자 직접 돈을 발행해서 시장에 유통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막대한 돈을 뿌리면 위기는 진화된다. 앞서 말했듯 내일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 없는 회사도 돈을 주면 무조건 부도는 막을 수 있다. 미국은 달러를 발행하는 기축통화국으로서 이론적으로 부도가 나지 않는 국가다. 위기가 오면 달러를 프린팅해서 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달러 발행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FRB(연방준비제도)의 소관이고 발행까지 여러 프로세스가 있지만 간략하게 보면 미국은 위기를 돈을 찍어냄으로써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이런 방식이 불가능한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원화를 발행할 수 있을 뿐 달러화를 발행할 수는 없다. 국가부도라는 것은 국가에 돈이 없다는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돈은 달러화이다. 그러니 우리는 달러를 열심히 모아 국가부도를 대비해야 하며 마구잡이로 원화를 찍어내는 것으로는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제한 없이 달러를 발행한 후 그 자금으로 세계경제의 패권을 단번에 휘어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달러를 마구 찍어대면 우려되는 첫번째는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다. 1971년 금본위제가 사라진 후 지금의 달러는 미국이라는 신용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 신뢰를 저버리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달러를 제한없이 발행하면 전 세계 다른 나라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미국이라도 함부로 달러를 발행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량의 달러를 발행했고, 이후에도 경기부양을 위해 끊임없이 돈을 찍어댔다. 이러한 행보에 경고를 주듯 미국은 세계 제1의 경제대국임에도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 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화 발행은 거침이 없었다.




돈이란 것이 원래 쓰기는 쉬우나 줄이기는 어려운 법이다. 예전에 한 뉴스에서 유럽의 1조원의 재산을 가진 주식부자가 주식가격이 50% 하락하는 바람에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접한 기억이 있다. 1조원의 재산이 50%가 하락하면 그 사람의 재산은 여전히 5000억원이다. 그런데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일부 독자 여러분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당시에는 같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아마도 그들 세계에서 1조원과 5000억은 상당한 격차가 있을 것이다. 예상컨대 그는 경제적 신분이 떨어졌을 것이고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던 그룹에 자신이 몸담게 되자 수치심을 느꼈을 수 있다. 필자가 뇌피셜로 풀어썼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5000억이나 1조원이나 어차피 평생 다 못 쓰는 돈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5000억원이 아니라 50억원만 있어도 평생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사람은 욕심이 참 많다. 1000만원만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막상 1000만원이 생기면 그 이상 욕심이 나지 않을까? 아마 대부분은 그 이상을 원하게 된다. 1억원이 되어도 10억원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수억원이 생기고 수십억원이 생기면 그에 맞는 수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00억원, 200억원을 보유하게 되면 역시 수백억원의 자산을 가진 자산가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누군가 만약 여러분에게 10억원을 준다면 여러분은 말도 못할 만큼 행복할 것이다. 또한 그 사람에게 무척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100억원을 준 후에 며칠 뒤에 말도 없이 다시 90억원을 뺏어간다면 여전히 경제적 가치는 10억원으로 전과 동일하지만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은 엄청나게 심란하고 일부 사람들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며 심지어 결론적으로는 10억원을 준 그 사람에게 적대감을 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한 신사가 매일 출퇴근길에 거지에게 동전을 주었는데 거지는 처음에는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했지만 날이 지날수록 감사한 마음이 줄어들게 되었다. 익숙해진 것이다. 하루는 신사가 지나가면서 미처 동전을 챙기지 못해 그 날은 동전을 주지 못했더니 거지는 신사에게 욕을 하더란다. 이런 일화를 듣고 생각나는 문장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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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가졌다가 빼앗기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행동심리학에서도 투자로 100만원을 벌었을 때의 기쁨보다 100만원을 잃었을 때의 슬픔이 더 크다고 했다. 실제로 정량화하여 심리상태를 체크하는데 똑같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얻었을 때보다 손실을 입었을 때의 기분이 더 안 좋은 것이다. 이것을 손실회피성향이라고 하는데 쉽게 예를 들면 여러분이 어느 날 지나가다가 100만원을 주웠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 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분이 어떨까? 아무렇지도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기분 나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그것은 주웠던 돈이기에 잃어버렸다해도 내가 경제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내 자신을 한탄하고 하루종일 잃어버린 돈 생각에 그 날 하루종일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은 이렇다. 왜 이런 얘기를 길게 썼냐하면 앞서 말했듯 ‘돈이란 원래 쓰기는 쉬우나 줄이기는 어려운 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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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돈 뿐만이 아니다. 30평대 아파트에서 멀쩡히 잘 살다가 40평대 아파트에 몇 년 살다가 다시 30평대 아파트에 살려면 대부분 좁아서 답답함을 느낀다. 짐이 많아서가 아니다. 30평대로 오면서 짐은 다시 30평대에 맞췄지만 뭔가 좁고 답답하다. 온도가 적당한 물이 가득 담긴 탕이 있는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가 이 탕에 온 사람은 시원함을 느낄 것이고, 반면 냉수목욕을 한 사람은 똑같은 탕에서 따듯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은 사회 전반에 있으며 심리학에서 말하는 '앵커링 효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앵커링 효과란 배가 닻(anchor)을 내리면 닻과 배를 연결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듯이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숫자나 사물이 기준점이 되어 그 후의 판단에 왜곡 혹은 편파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즉 우리의 기준점이 새롭게 설정되는 것이다. 100만원을 주웠다면 그 시점부터 나는 100만원을 보유한 것이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100만원을 잃어버리게 되면 괴로워진다. 40평대 아파트가 기준이 되니 30평대 아파트가 작아 보이고 답답함을 느낀다. 1조원의 갑부는 5000억원이라는 여전히 엄청난 금액이 남았다는 사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본인의 기준점에서 5000억 원의 손실을 봤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생을 마감한다. 이런 심리적 현상이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고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아마도 이렇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통찰이 향후 투자에 있어 꽤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하나씩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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