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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우리나라도?

by 이승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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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상 금융위기를 겪은 선진국들이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에 따른 결과를 목도해왔다. 일본, 미국, 유럽은 경제위기를 각각 어떻게 대응했고 극복했는지 간단하게 살펴보자.

첫번째로 우리나라와 좋든 싫든 항상 연관된 나라, 일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이웃이라는 이유로 경제위기가 이슈가 될 때마다 등장하는 국가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80년대 중반 경제호황 및 저금리, 금융완화정책으로 인해 역사에 남을만한 자산 가격 폭등이 일어났다. 대략 85년부터 4년간 흐름이 이어졌고, 89년부터 금리인상이 시작되면서 힘이 빠지고 90년대 초에는 대폭 하락했으며, 30년이 지난 2021년 현재까지도 예전의 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일본과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며 그들과 같은 장기디플레이션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일본과 우리경제가 닮았고 돌아가는 경제 상황조차 비슷하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대응법만 다르다면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본의 당시 디플레이션 상황을 가볍게 훑어보면, 70 ~ 80년대 일본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다. 1970년대 최고 제품은 단연 소위 미제, 즉 미국 제품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미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국 제조업 시장이 사실상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의 미국을 이끄는 기업은 IT기반이고, 80~90년대에는 서비스업과 유통업, 90~00년대에는 금융업이 미국을 이끌었다.

1980년대의 전 세계 제조업 리더기업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었기에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기업보호를 위해 강수를 선택한다. 바로 달러화를 평가절하 (일본 입장에서는 엔화의 평가절상) 시키는 것이다.

1985년 뉴욕 맨해튼 플라자호텔에서 이 합의가 이뤄졌기에 이를 두고 ‘플라자합의’라고 한다. 이를 통해 당시 달러당 250엔의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20엔으로 반토막이 난다. 예전에는 1달러를 구입할 때 250엔을 주어야 했지만, 지금은 120엔만 준비해도 1달러를 준다는 뜻으로 달러 가치는 하락된 반면 엔화는 절상되어 화폐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플라자 합의.JPG 이미지 출처 : http://www.paxnet.co.kr/tbbs/view?id=N00801&seq=17161361


이럴 경우 일본 기업의 입장은 어떨까? 이어폰을 하나 만들어 파는데 10달러를 받았다고 하자. 일본 기업은 미국에서 판매된 10달러를 자국에서는 엔화로 환전해야 한다. 10달러를 환전하면 2500엔의 자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런데 플라자 합의 이후에는 똑같이 10달러를 주고 팔았다고 해도 환전하면 1200엔의 자금만 손에 들어온다. 아무런 잘못 없이 갑자기 매출이 반토막이 된 것이다. 회사가 운영이 될 수 있을까? 제조업의 이익 비율은 통상 5% 내외이다. 100억원의 매출이면 5억원을 남기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매출 급감을 피할 수 없었기에 일본수출기업은 비상에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막강한 파워 앞에 합의라고는 하나 협박에 가까운 강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일본 정부로서는 자국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 이 때부터 엄청난 부양책을 실시한다. 가장 먼저 1985년 초에 일본의 기준금리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5%였다. 그러나 86년 초에는 4.5%가 되더니, 87년 초에는 2.5%까지 떨어졌다. 특히 86년에서 87년의 1년간은 2%p가 하락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평가일은 연간 8회이고, 보통 0.25% 내외로 조정을 한다고 보면, 1년 내내 금통위가 열릴 때마다 계속 하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0.25%p x 8회 인하 = 총 2%p 인하)

금리의 변동 한 번에 시장이 크게 출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86년의 일본이 얼마나 커다란 부양책을 실시한 건지 감이 올 것이다. 일본은 기존 기준금리보다 반토막을 낸 기준금리를 이후 1989년 5월까지 약 2년 남짓 유지하였다.


일본의.JPG 이미지 출처 :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저금리가 지속되면 통화량이 증가하게 되는데, 일본 역시 통화량증가율이 GDP 증가율을 초과하였다. 그러자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주식, 부동산 등 대부분의 자산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금리에만 초점을 맞춰서 일본의 저금리로 인해 거품이 쌓였다고 생각하지만 원인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일본정부는 당시 금리정책 외에도 금융 관련 여러 부문의 법을 완화했으며 지금과 같은 재정정책, 소위 돈을 뿌리는 정책도 병행했다. 당시 내수부양을 목적으로 130조 이상의 자금을 공급했다고 하니 막대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결과로 자산가격 폭등이 일어났고 전 국민이 투기판에 뛰어들었다. 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다수 기업의 이윤이 투기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즉 본업보다 투기에 더 힘을 쏟은 것이다.


0000.JPG 이미지 출처 : 서울데일리뉴스


부동산의 버블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일본 부동산을 모두 팔면 미국과 캐나다 등의 나라를 모두 사고도 남을 정도였으며, 심지어 도쿄 왕궁터의 가치만으로 캐나다 전체의 땅값보다 높다는 말도 있었다. 당시 도쿄 긴자구역의 평당 가격이 우리 돈으로 16억원이 넘었고(약 30년 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나라는 아직도 16억원은 커녕 6억원짜리 땅도 거의 없다), 도쿄의 아파트 일부는 20억엔이 넘는 수준이었다. 20억‘원’이 아니라 20억‘엔’이며 30년 전 가격이다.

이렇게 너나 할 것 없이 자산가격이 폭등하자 과소비가 심화되었고, 일본기업은 미국이나 유럽의 건물 및 회사를 사들이기도 했다. 특히 매도자 측에서 제시한 금액보다 돈을 더 주고 구입한 빌딩도 있었는데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제시한 금액보다 더 주고 구입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매도자 희망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한 이유가 바로 비싼 가격거래로 인한 기네스북 등재를 하기 위함이었단다. 이런 일련의 사례들을 봤을 때 당시 일본의 거품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약 30년 남짓 전에 20억엔 (한화 약 200억원)의 아파트가 있고, 1평의 땅값이 16억원을 상회하는 것은 분명 심각한 거품이다. 필자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거품을 논하면서 일본과의 비교를 하는 것을 보면 솔직히 당시 일본경제의 거품수준은 알고 비교를 하는 건가 싶다. 일본을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경계해야 하는 조언까지는 받아들이지만, 버블의 규모가 비교 불가한 상황에서 일본과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일본의 이 같은 거품경제는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해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다. 앞 문장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금리인상’ 이라는 단어가 아니다. ‘급격한’ 이다. 유동성이 넘치고 경기가 좋아지면 언젠가는 반드시 금리인상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금리인상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면 안 된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금리인상 자체가 두려운 요소가 아니고, ‘급격한’ 이라는 녀석과 같이 올 때 두려운 요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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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89년 초까지 저금리를 유지했다가 이후 경제를 바로잡겠다며 1년 남짓 동안 기준금리를 높이게 되는데, 거품경제가 시작되기 전의 기준금리인 5%보다 더 높은 6%까지 높였다. 불과 1년 남짓 만에 3.5%p의 금리를 인상한 것이다. 여기에 그동안 풀어줬던 각종 완화책은 강화 및 규제되었다. 이렇게 되니 일거에 거품이 꺼지면서 자산의 폭락이 시작되었다. 계속 버티던 닛케이지수는 89년 말을 정점으로 90년 들어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버블 붕괴로 인한 손실추이는 자료마다 조금씩 상이하긴 하지만 주식과 부동산을 합쳐 약 1경원(주식 500조엔, 부동산 530조) 쯤으로 추산되었다. 기업의 파산도 줄을 이었다. 이후 현재 일본의 상황은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여전히 증시가 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고, 도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 역시 30년 전의 가격을 회복하지 못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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