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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수 Mar 18. 2021

그 노래가 있던 자리

-신형원의 「 유리벽 」과「 개똥벌레 」

커버 이미지 : 신형원의 앨범


자기가 살던 시대의 노래는 언제나 따스한 향기가 있다.

빈티지한 느낌이 폴폴 나는 예전의 노래들.

모임 도중에 추억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처음 듣는 표정인 후배들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게 된다.

"아니야 나 그렇게 오래된 사람 아니야" 하고, 쳐다보는 후배들에게 손 사레를 치곤 하지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들으면, 벌써 마음은 대학시절로 돌아가 그 노래가 하루 종일 울리던 찻집에 앉아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저녁이면, 사랑의 하모니의 「야화」나 「 별이여 사랑이여 」를 들으며 사랑을 토론하곤 했었다.

‘남녀관계에 우정이 존재하는가?’의 주제로 열을 올리다, 결국 술만 취하게 되던 무모한 날들도 이제는 먼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때때로 그 노래가 있던 자리가 너무나 그립다.  

   

그 시절 신형원의 노래는 시대를 앞서갔다.

한돌 작사·작곡, 신형원이 부른 「유리벽」

요즘처럼 단절의 외로움을 아주 오래 전인 그때 벌써 예감했을까?

‘유리벽’이란 낱말만 들어도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다.

유리벽에 갇혀 숨도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다.

타인이 보기엔 완벽해도 보이지 않는 유리벽 속에서 웃음을 잃고, 숨이 막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지금처럼 심리 상담이나, 상담사란 직업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시절, 외로움의 깊이는 더 심각했을 것 같다.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였네
나는 느낄 수 있었네 부딪치는 그 소리를
우정도 사랑도 유리벽 안에 놓여 있었네
유리벽 유리벽 아무도 깨뜨리질 않네
모두다 모른척하네 보이지 않는 유리벽
나는 느낄 수 있었네 부딪치는 그 소리를
우정도 사랑도 유리벽 안에 놓여 있었네
유리벽 유리벽 아무도 깨뜨리질 않네
모두다 모른척하네 보이지 않는 유리벽
보이지 않는 유리벽          

출처 : 신형원의 「유리벽」 가사     

손을 잡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부딪히는 소리를 느낄 뿐, 무기력하고 소심한 성격은 방법이 없다.

그래서 손 내밀고 싶은데 모두 다 무관심하게 모른 척할 뿐, 아무도 유리벽을 깨뜨리질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좌절하고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사람의 야윈 어깨가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사랑노래로 알려져 있는 신형원의 ‘유리벽’이나 ‘불씨’등은 모두 남북통일과 군사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담아냈던 대표곡이다."-CBS 노컷뉴스      


(그 당시 워낙 인기 있었던 이 노래는 노랫말의 해석이 다양하다.

예술가의 손을 떠난 작품들은, 독자나 관객이 자신의 방식으로 느끼면 되지 않을까? 노래를 감상하는데 정답은 없을 것이다. )


신형원의 「개똥벌레」도 외로움을 노래했다.

경제성장을 목표로 다들 바쁜 시절, 개인의 외로움과 따돌림은 혼자 몫이었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 노래를 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 가지 말아 가지 말아 가지 말아라 /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를 해주렴 / 나나나나나나 쓰라린 가슴 안고 /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 울다 잠이 든다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걸 /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 가지 말아 가지 말아 가지 말아라 / 나를 위해 한번만 손을 잡아 주렴 / 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출처 : 신형원의 「개똥벌레」 가사 부분     


‘개똥벌레’는 사회성이 강한 노래로 알려져 있다. 한돌은 84년 이 노래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의 사회를 어두웠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둠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는 강한 의지를 노래 속에 담았다고 했다. 그는 ‘개똥벌레’가 자라 성충이 되면 반딧불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개똥벌레는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어른이 돼서 반딧불이 되면 발광체가 되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개똥벌레는 무척 슬프다. 왜냐하면 아직 빛을 스스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다 자신은 아직 개똥벌레일 뿐이기 때문이다.
      출처 : 스포츠 경향, 2005.3.23. 기사     

초등학교의 학예회 연주곡이나, 운동회의 율동에 많이 사용되기도 하는「개똥벌레」의 가사는 외롭고 슬프다.

곡이 경쾌해서 즐거운 노래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개똥벌레」의 노랫말을 천천히 음미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요즘의 학교폭력이나 왕따, 따돌림도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1987년에 이 노래가 발표되었다고 생각하니, 미래를 바라보는 작사가의 안목이 대단한 것 같다.

그 노래가 있던 자리는 이야기가 있고, 추억이 있고, 따스함이 있다.

오늘은 신형원의 「유리벽」과「개똥벌레」를 들으며, 외로움과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  

    

※신형원은 '불씨', '유리벽'으로 데뷔했으며, '개똥벌레'로 MBC 아름다운 노래 대상 금상을 수상했다.

지적인 모습으로 차분하고 메시지 강한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현재 K대 음악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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