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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며 꿈을 꾸는 날

-박준의 여행자의 미술관을 읽고

by 조현수

나는 책을 구입하기 전에 반드시 프롤로그를 읽는다.

2~3페이지 분량에 작가들은 자신이 책을 내게 된 이유를 정성을 다해 소개한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우리들은 작가의 작품관과 인생관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된다.

박준 작가의 「여행자의 미술관」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도 프롤로그를 열심히 읽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의 시간에 천천히 아끼며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미술관 오너도, 갤러리 디렉터도 아니지만 나만의 미술관을 갖고 있다.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본 그림의 기억을 간직한 미술관이다. 낯선 도시를 서성일 때 종종 미술관을 찾았다. 내가 세상이 궁금해 여행을 한다면 어떤 이는 세상이 궁금해 그림을 그린다. 미술관에서 나는 종종 그림 속 세상으로 떠났다.”

출처 : 「여행자의 미술관」 5쪽

저자는 마티스가 그린 모로코 그림을 보고 모로코 뒷골목의 카페에 앉아 손등에 떨어지는 뜨거운 햇살을 상상하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보며 캘리포니아의 나른하고 무더운 한낮을 상상했다고 한다.

“낯선 그림을 보면서 내 몸의 감각은 살아난다. 그림을 보는 순간은 여행과 닮았다. 난생처음 찾은 곳을 탐험하듯 그림의 이곳저곳을 살피다 때로는 형태를, 때로는 감정이나 정신을 발견한다.”

“오래전 난생처음 뉴욕의 모마(MoMA) 같은 미술관을 거닐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훈훈하다. 옆에서 그림을 보던 이들은 종종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그림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 책은 미술관에서 그림 속으로 떠난 몽상 이야기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미술관에서 떠나는 여행이다. 당신을 나의 미술관으로 초대한다. 내가 길 위에서 만난 그림들이 당신을 기다린다.”

출처 : 「여행자의 미술관」 6~7쪽


우리는 「여행자의 미술관」을 읽으며, 작가의 미술관에 초대되어 그림을 향유하고, 그가 길 위에서 만난 그림들을 함께 즐기면 된다.

그리고 가슴을 치는 그림을 만나면, 언젠가 우리도 여행자가 되어 떠나게 될 것이다.

나도 뉴욕 여행 중에 모마(MoMA) 미술관에 들러, 전시된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황홀경에 빠진 적이 있다.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샤갈의 나와 마을, 모네의 수련 연못에 비친 구름, 달리의 기억의 지속, 프리다 칼로의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앙리 마티스의 레드 스튜디오...... 너무나 유명한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앤드류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가슴을 찡하게 했다.

어렴풋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불편한 다리로 넓은 초원 한가운데 주저앉아 언덕에 있는 집을 바라보는 소녀의 뒷모습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 나는 이 그림이 너무나 좋았다.

이 그림은 딸이 어릴 때부터 유독 좋아하는 그림이었는데, 지금 딸은 뉴욕에 살고 있으며, 종종 현대 미술관(MoMA)에 <잠자는 집시 여인>을 보러 간다.

때때로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기도 하다.

사랑하는 딸이 이국의 달빛 아래 잠을 자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울고 웃으며 청춘을 불태우게 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1897년/ 캔버스에 유채/ 1295x2007cm/ 뉴욕 현대 미술관 소장
사막에 달이 떠올랐다. 푸르지만 그윽한 달빛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광활히 펼쳐진 모래언덕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검은색 피부를 가진 집시 여인은 깊은 잠에 빠졌다. 우연히 그녀 곁을 지나던 맹수가 그녀에게 다가가 채취를 맡는다. 사자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그의 채취를 기억이라도 하겠다는 듯. 달빛 때문일까? 그녀는 시처럼 잔다. 달이 웃고 있다. 달처럼 그녀도 웃는다.
출처 : 「여행자의 미술관」 71쪽



“미술관 안을 걷는데 머리 위로 갑자기 헬기가 나타났다. 외눈박이 눈을 가진 커다란 곤충 같다. 처음에는 무슨 설치 작품인 줄 알았다. 작품이라 하기에는 진짜 헬기랑 너무 똑같아 보여 좀 이상하긴 했지만 하여간 현대미술은 엉뚱하다니까...... 여기고 말려고 했는데 가만 보니 모형 아닌, 진짜 헬기다. 미술관에 헬기가 웬일이람?”

저자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나도 헬기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까.

1929년 설립된 뉴욕 현대 미술관은 미술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쓰던 물건도 수집했다. 헬기는 디자이너이자 시인, 화가인 아서 영이 1945년에 만든 헬기라고 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품들이 많았다.

아홉 개의 초록색 상자를 쌓아 올린 것도 있고, 커다란 캔버스에 붉은색을 칠하고 하얗고 어두운 수직선을 그은 게 전부인 <영웅적이고 숭고한 인간>도 있다.

감상은 온전히 관객의 몫인 것 같다.


저자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을 통해, 뉴멕시코의 본홍색 대지, 노란 절벽, 보라색 산등성이를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쉬른 미술관에서, ‘오노 요코’의 회고전 <절반의 바람>을 본 느낌과, 미 컬렉터스 룸 베를린 미술관에서 괴상하고 기이한 ‘신디 셔면’의 사진전 포스터도 소개한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6미터 정도로 큰 흑인 소년의 조각상을 보면서, 2010년 이스라엘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아이 400명을 추방한 사실을 떠올린다.

“우리는 단지 여기 이스라엘 당에 둥지를 틀고 살고 싶을 뿐이에요. 우리

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를 내쫓지 말아요”

텔아비브 남쪽에서 온 소년의 조각상 사진을 보니 나도 마음이 아파온다.


델리 국립 근대 미술관에서는 인도의 세 소녀를, 호찌민 싼 아트 갤러리에서는 ‘팜 딘 띠엔’의 작품 <여정>을 소개해 준다.

2014년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베이징으로 향한 지 38분 만에 사라져 버린 14개국 승객 227명과 승무원 열두 명이 타고 있었던 비행기의 슬픈 여정이, 플랙시 거울을 통해 수많은 비행기로 작품화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나오시마 베네세 미술관에서는 유목으로 만든 동그라미를 보았고,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뒤샹의 소변기, <샘>을 만났다.

베를린, 노이에 바헤에서는 조각상, <죽은 아들과 엄마>를 만나고, 슈투트가르트 미술관에서는 예쁘지 않은 여자 마르타의 초상화를 보고,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서는 <모나리자>를 찾다가 기운이 빠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잠비아, 리빙스톤 아트 갤러리, 시즈오카, 사타 고갯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등 끝없는 미술관 순례가 책 속에서 펼쳐진다.



저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미술관에서 고흐의 낡은 구두를 보았다,

그는 고흐의 흔적을 찾아 아를에 간 사람들이 실망하는 이유는 고흐처럼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흐의 눈길을 따라 저자도 사소한 물건들에게 향하니 구두와 의자, 밀밭과 사이프러스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흐의 그림을 보기 전에 아를에 갔다면 그림 속 불꽃같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절대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메트로폴리탄을 방문한 날, 나는 고흐의 그림에 도취되어, 언젠가 네덜란드 여행을 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서 그의 진품 그림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유명 작품이 너무 많아서, 몇 번을 가도 일부분만 보고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그림이 전시된 화가의 방에서, 넋을 잃고 서 있었던 날들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자유로운 여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책의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여행한 여행지의 미술관 그림을 통해서, 또는 외국을 가지 않아도 우리는 도시나 지역의 미술관을 통해서도 그림 속 세상을 통해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자의 미술관」 이 한 권의 책에는, 저자가 길 위의 미술관에서 만난 주옥같은 그림들이 많이 나온다.

시처럼, 소설처럼 아름다운 문장들과 함께......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 어느 곳으로도 상상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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