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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물의 도시로

-다시 베니스에 가고 싶다.

by 조현수

매일 물을 보고 살면서도 물의 도시 베니스에 가고 싶었다.

학창 시절에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었다.

'베네치아'

이름만 들어도 고풍스럽고 아름다웠으며, 영어식 발음인 '베니스'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이 들어 좋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독일 작가 클라우스 틸레 도르만이 쓴「베네치아와 시인들」을 읽고, 대중매체를 통해 베니스 영화제를 알게 되면서, 베니스는 나에겐 언젠가는 꼭 다녀와야 할 설레임의 장소가 되었다.

「베네치아와 시인들」-사랑의 이야기에는 르네상스를 싹 틔운 책의 제왕 알도 마누치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살롱 산마르코 광장, 수상록으로 유명한 몽테뉴의 “나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나고 싶었다.”와 토머스 코리에이트의 베네치아 도보 여행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베네치아를 여행하고 베네치아를 사랑한 카를로 골도니, 장자크 루소, 괴테, 바이런, 스탕달, 파스테르나크, 헤밍웨이, 조르주 상드 등 많은 유명 작가들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유명한 프루스트는 어머니와 함께 2주간 베네치아를 찾았는데, 러스킨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베네치아의 성소를 방문한 시간들을 “축복받은 날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헤르만 헤세는 “베네치아로의 여행만큼 긴장되는 경우도 없다. 기차가 물의 도시로 들어가노라면 도시가 물로부터 서서히 솟아오른다”라고 했다.

바이런도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여행」에서 “어렸을 때 벌써 나는 그곳을 사랑했었네 / 베네치아는 동화의 나라처럼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네”라고 노래 불렀다.


(좌) 정태남의 이탈리아 도시기행 (우) 클라우스 틸레 도르만의 베네치아와 시인들


이탈리아 국가공인 건축사이며, 2007년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은 정태남이 쓴 책「이탈리아 도시기행」에도 베네치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빛의 성녀 산타 루치아, 대운하 카날 그란데, 베네치아가 시작된 리알토 지역,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도제의 궁전 팔랏쪼 두칼레, 랜드마크 종탑, 산 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에 대해 섬세하고 자상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탈리아 도시기행」은 저자가 오랫동안 이탈리아에 살면서 역사, 건축, 예술, 음악을 한 권에 너무 멋지게 잘 담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세상의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베네치아의 매력에 빠져 물의 도시를 찾았고, 각자의 방법으로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베네치아에 무엇이 있길래 그들은 이곳을 한결같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있는 것일까?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가고 싶은 곳을 가기란 말처럼 쉽지 않고,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길목에서 친구들과 잠깐 서유럽 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패키지 여행이라 베니스에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루!

너무 짧은 시간이라 무엇을 보고 느꼈다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꿈꾸던 곳이라 베니스 그 자체로 좋았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와 잘 찍은 사진들을 보고 꿈꾸던 곳과는 많은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베니스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물 위로 찬란하게 부서지던 태양의 광채, 햇살에 투영된 물결, 곤돌라들의 행진

그리고 곤돌라의 사공( 베네치아에서는 노 젓는 사람을 곤도리엘레라고 부른다 .)들이 부르던 아름다운 노래......

곤돌라에서 ‘오 솔레 미오’를 들은 것 같은데 다녀온 지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다. 옆 곤돌라에서 들려온 소리였는지 우리가 탄 곤돌라의 사공이 불렀는지... 관광객이 너무 많아 곤돌라끼리 부딪힐 것 같은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곤돌라 사공들이 부르는 노래를 두고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었나 보다.

사공들은 ‘오 솔레 미오’나 ‘산타 루치아’를 많이 부르는데 이 노래는 나폴리의 노래이기 때문에 베니스 민요를 부르라고 했으나( 한때 베네치아 시 정부는 이런 노래를 곤돌라에서 부르는 것을 금지한 적이 있다고 함.) 관광객에겐 이들 노래가 매우 인기가 있었으니, 다시 이 노래들을 부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리알토 다리’

리알토 다리를 걸어 보지는 못했지만 곤돌라를 타고 지나가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 옛날에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다리를 설계했을까?

리알토 다리는 원래 목조 다리였는데 자주 무너져서 공모전을 통해 돌다리로 대체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 등 쟁쟁한 인물이 응모했으나, 당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안토니오 다 폰테가 영광을 안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1592년에 다리가 완성되고,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의 많은 관광객이 사진에 담고 싶어 하는 유명한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산 마르코 광장’

광장의 햇살 속에 서면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 착각에 빠진다.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할 만큼 유명한 곳이다.

산 마르코 항은 먼 옛날 원정길에 오르던 십자군 기사들을 위해 필수품을 갖춰놓고 장사하던 때부터 관광객들에게도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이 곳은 사람들의 교류가 일어나고, 세상사 모든 이야기들이 집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엔 유명한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꼽히며, 문인들과 나폴레옹도 즐겨 찾았다고 하는데, 베네치아에서 여성이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카페였다고 한다.

같이 간 친구들이 커피를 즐기지 않아서 급하게 마시느라 커피의 맛과 향기를 진하게 음미하지 못했지만, 다시 베니스를 찾는다면 카페 플로리안에 들러 몇 시간은 앉아 여유를 즐기고 싶다.

커피를 두 잔 시켜, 사람들 구경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싶다.

광장에는 종탑이 세워져 있는데 10세기에는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을 안내하는 등대였으며, 16세기 초반에 거의 100미터 높이의 종탑으로 증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종탑은 지반 침하로 무너져 내려 1912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팔랏쪼 두칼레’

“팔랏쪼는 ‘궁전’ 또는 ‘큰 건물’이란 뜻이다. 그럼 두칼레는 무슨 뜻일까? 지도자, 영도자, 공작 등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가 두카인데, 두칼레는 ‘두카의’라는 형용사다. 따라서 팔랏쪼 두칼레를 ‘두칼레 궁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베네치아에서는 두카를 도제라고 하니 ‘도제의 궁전’이라고 칭하는 것이 좋을 법하다. ( 이 책을 읽기 전엔 나도 두칼레 궁전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 도제의 집무실이자 관저이며 정부종합청사였다. 궁전의 모습 자체로 베네치아는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으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나라였음을 만천하에 알려 주는 듯하다.

팔랏쪼 두칼레는 ‘탄식의 다리’를 통해 운하 건너편의 형무소와 연결되어 있다. 이 다리의 이름은 팔랏쪼 두칼레 안의 재판소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베네치아를 볼 수 없다고 탄식한 데서 바이런이 붙인 것이다. ”

출처 : 정태남「이탈리아 도시기행」


대개 1월 말에서 2월 초에 열리는 베네치아 카니발(Carnevale di Venezia, Carnival of Venice)은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가면을 파는 곳이 많았다. 베네치아 가면은 종류가 매우 많고 역사도 깊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가면을 만지고 써 보면서 웃고 즐거워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구입하지는 않았다. 똑같은 날들이 반복되고 힘겨운 일들이 많은 날에는 ‘베니스에서 이쁘고 화려한 가면 한 개 정도 기념품으로 사 올걸’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물의 도시를 보러 모여드는 베니스는 자유로웠다

곤돌라를 타고 물 위를 지나다 보면 예쁘게 색칠한 집들과, 빨갛고 노란 앙징스러운 꽃들로 장식된 집들이 많았다.

창가나 집 앞에 정성껏 예쁜 꽃을 장식해서 베니스가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음을,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곤돌라로 좁은 골목을 누비다 보면 '어떻게 이런 물의 도시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아름답게 유지되어 왔을까?' 하는 생각에 사진첩에 저장하려고 자꾸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구석구석 아름다운 풍경에 취할 수 있는 곤돌라와는 달리 수상 택시는 스릴 만점이었다. 기울어질 듯하면서도 균형을 잡고, 물살을 가르며 세차게 달려도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미션 임파서블의 음악과 함께 추격 신을 연출하며 베니스를 달리던 기억은 오래도록 유쾌하게 기억되고 있다.

해마다 물의 도시에서는 베니스 영화제가 열린다. 누군가는 9월 초에 베네치아에 갈 일이 있으면 리도 섬으로 가서 영화제를 봐라고 말한다.

낮에는 대회장의 로비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제 상품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대회장 가까이에 있는 카페에서 세계적인 스타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언젠가 반짝이는 물의 도시 베니스에 다시 가게 된다면, 좋아하는 커피를 들고 육로로 천천히 걸어 다니며, 자유로운 물의 도시를 한껏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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