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 : 한국문학 영역 총서2 천상병 귀천, 도서출판 답게
천진난만한, 순수한, 아이 같은, 기인, 막걸리......
우리가 천상병 시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1954년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그만두고 문학에 전념한다. 그는 이때 『현대문학』에 월평을 쓰는가 하면 외국 서적의 번역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1964년부터 2년 동안 부산 시장의 공보 비서로 일하는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생활인 셈이다. 1967년에 어이없게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 정도 옥고를 치른 그는 죽을 때까지 다른 직업 없이 오직 시인으로 살아간다.」
출처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장석주|시공사
시인이 2년 동안 부산 시장의 공보 비서로 일한 사실은 놀랍기도 하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얻은 고문의 후유증과 술타령으로 떠돌기 전, 시인은 S대를 다녔던 누구보다 스마트한 문학청년이었다.
항상 인사동을 떠돌며 동료 문인들과 시인 지망생들에게 술값을 얻어가서 술을 마시던 사람.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이지만 그에게도 남들처럼 평범하고 빛나던 시간들이 있었다.
「고문 후유증과 심한 음주벽, 영양실조로 심신이 황폐해진 천상병은 1971년 어느 날 갑자기 거리에서 쓰러진다. 행려 병자로 오인된 그는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그는 이 때 행방불명인 채로 지인들과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다. 그러자 가까이 지내던 문우들은 천상병이 어디 가서 죽은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서로 뜻을 모아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새』를 간행한다.」
출처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장석주|시공사
천상병이 죽은 줄 알고 가까운 문우들이 유고시집을 발간한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유고 시집이라니......
시인 천상병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는 많이 있었다. 술값을 뜯어가고 아이처럼 행동해도 그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오히려 그를 아끼고 많이 좋아했다는 것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때묻지 않은 사람 냄새가 났기 때문일까?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의 제목은 『새』였다.
항상 그의 시의 중심에는 ‘새’가 있었다고 한다.
「새는 삶과 죽음, 천상과 지상의 교차점을 향해 날아간다. 삶은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다. 그러자 시인은 죽은 다음날 새가 되어 돌아와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의 현존을 응시한다. 시인의 영혼이 새가 되어 다시 삶을 바라보자 그것은 홀연히 찬란한 것으로 비친다. 그렇게 시인은 삶의 절망과 고통을 한 순간에 찬란한 것으로 바꿔놓는다 」
출처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장석주|시공사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 내 영혼의 빈터에 /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 그 다음날. // 산다는 것과 / 아름다운 것과 /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 한창인 때에 /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 한 마리 새. // 정감에 그득찬 계절, / 슬픔과 기쁨의 주일, /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 새여 너는 / 낡은 목청을 뽑아라. // 살아서 / 좋은 일도 있었다고 / 나쁜 일도 있었다고 /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천상병 시 「새」 전문
집 근처 산책길에서 가끔씩 물 위에 서 있는 새를 본다.
몇 년 동안 보는 광경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새는 항상 혼자 서 있다. 걷다 보면 거리를 두고 조금 밑에 또 한 마리 새가 먼 곳을 보고 서 있다. 마치 사색에 잠겨 있는 듯한...... 새들은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같이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새들의 이름은 모르지만 왠지 천상병 시인의 시에 나오는 새를 닮은 것 같다.
나는 오래전, 천상병 시인의 시를 영어로도 쓰여 있는 「 한국문학 영역총서2 천상병-귀천 」을 구입했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시인의 삶을 자서전처럼 잘 설명해 놓았다.
“천상병은 어떤 종류의 시를 썼는가? 자신의 주위 세상에 대해 사사롭게 보고 느낀 것을 적은 서정시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그가 깊은 친화력을 느꼈던 주위 환경은 자연 세계이다. 자신과는 아주 낯선 세계에 사는 많은 사람들, 가령 재물을 얻으려고 바쁜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시들은 단순 소박 해서 겉으로 드러난 그 천진성에 기가 막혀 현학적인 비평가들은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상병이야말로 그의 시대의 시인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완전히 정직한 시인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나 많은 독자들과 생각을 같이 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출처 : 한국문학 영역 총서2 머리말
천상병은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문순옥 여사와 결혼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심한 고난과 어려움 속에 20년간 지속되었다. 경제적 시련이 극심할 때 시인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의 아내는 인사동 골목에 찻집을 열었고, 찻집의 이름은 「귀천」이었다.
그는 강물, 피리, 주막에서, 나의 가난은, 소릉조, 광화문에서, 주일, 인생서가, 희망, 날개, 길, 무덤 등 많은 시를 썼는데, 친구와 아내를 상대로 시를 쓸 때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그의 아내 사랑은 시 「 행복」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나는 세계에서 /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 대학을 다녔으니 /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 명예욕도 충분하고 / 이쁜 아내니 / 여자 생각도 없고 / 아이가 없으니 /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 집도 있으니 / 얼마나 편안한가 /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 하느님을 굳게 믿으니 / 이 우주에서 / 가장 강력한 분이 / 나의 빽이시니 /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출처 : 천상병의 시 「 행복 」 전문
만성 간 경화증으로 춘천의료원에 입원한 시인은,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기적처럼 살아난다.
이후 그는 시집 『요놈! 요놈! 요 이쁜 놈!』(1991),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1993)를 펴낸다.
1993년 4월 28일, 병든 몸으로 누워 있던 시인은 마침내 숨을 거둔다. 큰 사건을 겪고 가난과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그의 육신의 삶은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 귀천 」이라는 아름다운 시는 오늘도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