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헌 시와 소설을 찾아가는 여행길-1

-시를 찾아가는 여행길

by 조현수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코로나로 19로 인해서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가슴이 답답한 사람들은 국내여행으로 눈을 돌린다.

마스크를 끼고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여행해야 하지만, 숲이 있고 물이 있고 맛난 음식을 찾아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그 길에서 특별한 무엇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여행은 특별함으로 오랫동안 가슴을 설레게 한다.

1996년에 발행된 임동헌의 「시와 소설을 찾아가는 여행길」은 떠나기를 좋아하는 내게 힐링을 안겨준 책이었다.

신문사 기자였던 저자는 월간문학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저자는 책 서문에서 중학생 시절 카메라를 들고 겨울 들녘을 헤맨 경험 등 사진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고 있다.

“드디어 사진과 글이 함께 담긴 책을 내게 돼 한 가지 숙제를 더 푼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기쁨이 앞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다른 작가들의 글과 사진을 함께 묶은 책 발간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숨결이 담긴 책을 한 권쯤 내고 싶은 소망을 품었는데 이루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사진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다. 특히 책에 실리는 사진은 저자와 사진작가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글의 내용과 삽입된 사진이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작가가 직접 글을 쓰고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어서 넣으면 독자 입장에서는 더 쉽게 이해되고 감동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영상에 짧은 시를 쓰는 디카시가 인기가 있음.)

그래서인지 「시와 소설을 찾아가는 여행길」에 실린 글들은, 직접 찍은 사진들과 너무나 어울린다.

그 당시 출간되던 책들에 비해 책의 칼라와 사진이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느껴져 서점에서 바로 구입했었다.


책을 나름 잘 보관했다고 생각했지만, 책장에서 꺼내니 책에서 묵은 냄새가 난다.

세월을 비껴가는 건 아무것도 없나 보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선명하던 책 속의 사진들도 낡고 색이 바랬지만 추억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 책에 실린 여행지를 찾아서 때로는 우리 가족끼리, 때로는 지인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었다.

어린아이들을 싣고 떠나는 여행은 짐도 많고 변수도 많이 생기지만 책을 읽었을 을 때 느끼던 감동을 생각하면 여행을 강행하게 된다.

이 책은 임동헌 작가가 한 편의 글과 몇 컷의 사진을 싣고, ‘그곳에 갔을 때’ 코너가 있고, 작가 소개, 자투리 여행정보로 이루어져 있다.

천양희 시인의 <4월의 풀>과 충남 부여 편을 읽고는 부여로 여행을 갔었다.

빈 들판 위를 찌르는 바람같이 / 우리도 한동안 그렇게 떠돌았다 /

불의의 연기 한 가닥 피워 올리며 / 완강하게 문 닫는 /

세상의 어느 곳인가/

.............................................................

밟혀도 밟혀도 되살아나는 / 키 작은 풀이되어/

뿌우연 가로등 밑을 / 묵묵히 걸어간다.

출처 : 천양희 시 <4월의 풀> 부분

천양희 시인은 4월을 ‘불의의 연기 한 가닥 피워 올리며 완강하게 문 닫는 세상의 어느 곳인가’라고 읊었다. 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뿌우연 가로등 밑을 묵묵히 걸어간다.’로 장식된다. 10여 년 전의 작품이니 그 시절의 어둡고 험한 세상 풍경이거나 시인 자신의 내면 풍경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터이지만 신동엽 시인의 현실 인식과 많이 닮아 있는 것을 보면 신동엽 신인이 겪었던 시대와의 불화는 천양희 시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출처 : 「시와 소설을 찾아가는 여행길」 135쪽


이 책의 작가 임동헌이 말했듯이 <4월의 풀>을 읽다 보니 신동엽 시인이 생각난다고 했는데 나도 그랬다.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던 신동엽 시인의 생가는 부여에 있다. 대학시절 신동엽 시인의 시에 빠져 열심히 읽었었다.

4,800여 행으로 이루어진 장편 서사시 「금강」을 읽으며, 동학운동과 고난의 전개과정, 분단시대 모순과 부조리, 극복 의지를 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

부소산, 백마강과 낙화암 고란사...

학교에서 배웠던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생각하고 낙화암을 처음 찾았을 때는 백마강과 낙화암의 규모가 작아서 실망? 했었다. 경주의 첨성대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같았다.

‘어른이 되어 본 풍경은 어릴 때와 다르니까......’

어린 시절 엄청 큰 건물을 본 생각에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가 보면 규모가 너무나 작아 눈을 의심하던 것과 같다고 할까?


작가는 자투리 여행정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백제의 7백 년 역사 중 가장 화려한 꽃을 피웠던 2백 년 동안의 도읍지가 공주 부여다. 그 물줄기가 금강-백마강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그중 부여가 백제의 도읍으로 있었던 기간은 정확히 1백23년이다. 그리고 망했다. 당연히 슬픈 역사의 흔적이 많은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부여는 슬픈 흔적이 비치지만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곳곳에 문화 유적이 많고 볼거리도 엄청 많다.

불자는 아니지만 가끔 나는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작고 아름다운 절’ 고란사의 정경을 생각한다.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와 전북 고창 선운사 편을 읽고는 선운사로 달려갔다.

인기 가수 송창식이 부른 ‘선운사’에서를 즐겨 듣다가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출처 : 최영미 <선운사에서> 전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은, 어느 날의 선운사에서 이토록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시를 잉태했나 보다.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운사의 동백숲은 해마다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고 있지만, 나는 여름과 가을에 가서 동백꽃을 보지 못했다.

동백꽃 필 때 꼭 선운사에 다시 가고 싶다.


유하 시인의 <윈드서핑>과 부산 광안리 편에서는 ‘인생은 한 큐’를 부정하는 낭만의 바닷바람, 그리고 가르침이라는 멋진 말과 바다 사진을 수록하였다.

시 쓰는 영화감독으로 알려진 유하는 시집‘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유명하다.


광안리, 여름 바다 위를 썰매 미끄러지듯

유연히 떠가는 하얀 돛의 윈드서핑 하나

멀리서는 일견, 한가로이 노니는

한 마리 백조처럼 보이지만,

저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기 위해 당사자는 지금

억센 바람과 씨름하며 얼마나

끙끙 피멍이 들도록 돛을 붙잡고 있을까

저리 나른한, 순풍의 유유자적함도

알고 보면, 젖 먹던 힘까지 짜낸 결과이다

졸지에 스타

인생의 한 큐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의미의 자고 나니 출세란 말은 없다

저 윈드서핑처럼 그렇게 보일 뿐

사람들은, 한 큐에 '아줌마 났어요'만 보았지

그의 피멍 든 손을 보지 못한다

사실, 나도 시의 윈드서핑 한 번 타보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짠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아닌가

출처 : 유하의 <윈드서핑> 전문


이 글을 읽고 나는 광안리 바닷가가 더 좋아져서 지금까지 부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과 섬진강 편에서는 “흐르다가 멈추고, 또 흐르는 시간의 강”에 대해서 쓰고 있다.

벚꽃 피는 봄날의 섬진강, 시리게 차가운 겨울날의 섬진강, 햇살이 비치는 비치는 날의 섬진강.......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섬진강을 여행하다 보면 김용택 시인을 생각하게 된다.


시 〈섬진강〉연작으로 유명하여 일명 '섬진강 시인'으로 불린다.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교직 기간에 자신의 모교인 임실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썼다. 1982년 〈창작과 비평 21 신인작가상-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 1〉 외 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김용택은 모더니즘이나 민중문학 등의 문학적 흐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로 독자들을 감동시킨다. 또한 대상일 뿐인 자연을 삶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하는 데 탁월하여 김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그들이 자연을 보는 시선과 교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한편으로 한국 농촌의 황폐함에 주목하여 황량한 농촌마을, 피폐해진 땅을 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쓸쓸한 고향의 모습을 전한다.

출처 : 다음 백과


임동헌 작가가 서울에서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4시간을 달려 섬진강을 찾아갔을 때, 시인은 덕치초등학교 교무실에서 일직근무를 하고 있었다고 쓰고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행복인 것 같다.


「시와 소설을 찾아가는 여행길」은 너무나 멋진 글과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한 권의 책에서 이렇게 많은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된다.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와 충북 중원군 남한강 목계장터, 장석남 시인의 <덕적도 시>와 덕적도,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와 강원도 태백·사북, 박라연 시인의 <가을 화엄사>와 지리산 화엄사, 최하림 시인의 <가을의 말·6> 서해안 청포대, 박성룡 시인의 <고향은 땅끝이었다>와 전남 해남 토말, 박세현 시인의 <누이의 들판>과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강, 송수권 시인의 <메밀꽃밭>과 강원도 봉평, 이상국 시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와 강원도 양양, 이기철 시인의 <이화령쯤에서>경북 문경새재, 김명수 시인의 <감이 익는 날>과 경북 안동, 천상병 시인의 <수락산 하변>과 수락산, 정해종 시인의 <그 섬에서 보낸 한철>과 흑산도·홍도, 박재삼 시인의 <꿈으로서 묻노니>와 경남 삼천포, 문충성 시인의 <제주 바다>와 제주 바다, 이성복 시인의 <남해 금산>과 경남 남해, 황인숙 시인의 <항구는 나에게 항구가 아니며>와 충남 서천 홍원항, 황동규 시인의 <겨울 항구에서>와 강원도 주문진항」이 읽고 싶거나 그곳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시와 소설을 찾아가는 여행길」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작가가 혼신을 쏟아부어 글 사진을 실은 이 책은, 시와 소설을 찾아 테마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어느 날 훌쩍 떠난 여행길에서, 좋아하는 시인이나 소설가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뜨거운 울림이나 영감을 얻는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출처 : 「시와 소설을 찾아가는 여행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