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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 피플 Feb 08. 2019

사랑을 향해서, 사랑을 품에 안고

끌림 - 이병률


흔히 ‘여행’이라 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국적인 정취와 아름다운 볼거리들,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휴식이 연상된다. 이와 같은 느낌들을 갖고 막연히 책을 구매하였다. 이병률 작가가 10여 년 동안 여행하면서 쓴 글과 사진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하였다. 그의 여행 또한 나의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책을 펼쳤다.


다 읽고 보니 그의 여행과 나의 여행이 사실 대단히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여행 또한 이국적인 곳을 뚜벅뚜벅 돌아다니는 여행이었고,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나의 여행과 이병률 작가의 여행 사이에는 작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하는 여행이 풍경 위주의, 그저 눈에 담기 바쁜 여행이었다면 그의 여행은 그 풍경 속의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었다. 그러니까, 이병률 작가의 여행은 ‘내가 바라보는’ 일방향적 여행이 아닌 ‘내가 남과 만나는’ 쌍방향적 여행이었다.


때문에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썼다는 그의 글들에는, 찬란한 역사 유적에 대한 찬미, 장엄한 자연경관에 대한 경외심과 같은 것들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멕시코에서 만난 이발소 아저씨에 대한 존경심, 길거리에 나앉아 귀뚜라미 밥을 주는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같은, 여러 인간군상과 그에 대한 감상이 쉴 새 없이 나타나 내 마음을 울린다. 시간으로 따지면 10여 년, 공간으로 따지면 50여 개국을 헤매면서 만난 그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이때껏 나의 여행이 문자 그대로 수박 겉핥기였구나 하는 회의감이 들게 하였다.


나는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인들도 단지 한 폭의 그림 속에 담긴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이국적인 정경에 돌아다니는 이국적인 사람들. 때때로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가끔은 바가지를 씌우고, 또 이따금씩 쪼꼬렛을 달라는 그런 사람들. 생각해보면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이 수 없이 많은 추억과 사연 속에 그리고 이야기 속에 살아가고 있던 것인데, 나는 그 다른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 번도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병률 작가를 통해 듣게 된 그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들의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고, 내 잔잔한 머릿속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 찰랑이게 하지만, 이병률 작가의 문장으로 나타나는 그 이야기들은 보다 묵직한 물결을 만든다. 신형철 평론가는 말했다. 산문시를 꿈꾸지 않은 산문은 산문의 자격이 없다고. 그런 관점에서 이병률 작가의 문장은 그야말로 ‘참 산문’이다. 때때로 산문시처럼 난해하고, 때때로는 비평문처럼 날카로운 문장을 통해 세계 각지의 추억들과 삶을 나의 마음속에 선명히 새긴다.


전 세계에서 온 이야기들은 굉장히 다양하지만, 그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꿰뚫는 하나의 공통된 이야기 있으니, 바로 사랑이다. 나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면 그놈의 사랑 얘기 없이는 못 넘어간다. 사람의 일생을 사랑 빼고 말하긴 참 아쉬울 듯하다. 그래서인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서 쓴 <끌림>에서도 사랑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 작가는 자기가 여행 때 챙겨가기 꺼리는 것들 다섯 가지 중 하나로 애인을 꼽았으면서, 막상 여행을 가면 두고 온 애인 생각뿐인지 사랑 얘기를 많이도 썼다. 그 사랑에 대한 생각들 하나하나가 참 아쉬웠다. 책장을 넘겨 두고 가기가 아쉬웠다.


<끌림>에는 특별히 대단한 생각이나 놀라운 발상이 담겨있지는 않다. 그러나 평범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의 마음 어딘가 간질간질한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문장들이 한가득 들어있다. 팔이 닿지 않아서 하루 종일 간지럽던 등의 그 어딘가를 누군가 정확히 긁어주었을 때의 그 쾌감, 그런 소확행 같은 기쁨을 선사하는 책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도 대부분의 평범함과 가끔씩의 특별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끌림>은 나의 그 숨 쉬듯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고, 내 마음속을 선명하고 개운하게 해 주었다.


총평하자면, 아름다운 책이다. 작가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도 아름다웠고, 사진 속 이야기들도 아름다웠으며, 사랑에 대한 생각도 아름다웠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문장도 아름다웠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본인의 독해력과 감성이 작가의 표현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었다는 점과, 지금 본인 옆엔 사랑할 애인이 없다는 점인데... 그건 책의 잘못이 아니고 본인의 불찰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서평_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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