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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 피플 Feb 27. 2019

머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아몬드 - 손원평


알렉시티미아.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뜻이다. 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lexi’, 는 영어의 ‘word’ 즉 단어라는 뜻을, ‘thym’은 ‘soul’ 즉 영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영어에서 앞에 ‘a’가 붙으면 부정을 나타내기 때문에 결국 ‘영혼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음’이라는 의미가 된다. 곧 ‘감정=영혼’을 내포하고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이는 말 그대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알렉시티미아라는 감정표현 불능증의 장애를 가진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선천적으로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윤재. 윤재의 엄마는 아이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감정표현이나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정형화된 이론으로 가르친다. 상대가 웃으면 따라 웃으면 되고 상대방에게 물건을 받으면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 된다는 식. 엄마도 모든 상황에 함께할 수는 없으니 일일이 알려줄 수 없음이 답답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감정을 자극하는 뇌의 부위가 아몬드와 닮았다며 아몬드를 먹는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엄마,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윤재는 크리스마스이브날 외식하러 나갔다가 사회에 불만을 가득 품은 사이코패스와 조우한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남자는 그 자리에서 엄마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치고 할머니를 무참히 살해한다. 이를 지켜보는 윤재의 얼굴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엄마는 뇌사판정을 받아 중환자실에 누워 지내는 신세가 된다. 윤재는 주기적으로 엄마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러던 중 윤 교수라는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윤 교수의 제안으로 임종을 앞둔 아내 앞에서 잃어버린 아들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부탁을 받아들인 윤재는 잃어버린 아이를 대신해 윤 교수 아내의 마지막 말과 포옹을 듣는다. 윤재는 엄마의 바람대로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곤이를 만난다. 알고 보니 곤이가 윤 교수의 아들이었고, 그는 소년원을 다녀온 문제아였던 것. 그래서 윤 교수는 아내에게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윤재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다. 곤이와 윤재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후에 자신의 엄마 앞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곤이는 끈질기게 윤재를 괴롭힌다. 끊임없이 괴롭히는 아이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아이. 둘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어쩌면 곤이 혼자만의 사투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곤이는 윤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한 다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윤재에게 공감하는 법을 알려주고자 노력한다. 나비를 잡아와 날개를 뜯으며 나비가 아플 것 같지 않냐며 설명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괴로워하는 곤이였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난 곤이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고 본다. 반면, 윤재는 곤이에게서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자신과 달리 감정이 풍부한 그의 모습을 통해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결말은 다소 아쉬웠다.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진 사람들은 어쨌든 평범하게 일반적인 삶과는 완전히 같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결말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차라리 극적인 사건을 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곤이와 윤재의 특별한 이야기에 여운을 곱씹어보았을 듯하다.


세상엔 수많은 감정들이 존재한다. 기쁨, 슬픔, 행복, 사랑, 분노 등. 하지만 이런 단어 하나로 그 많은 감정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쁨이라고 모두 다 같은 기쁨은 아닐 것이고, 슬픔이라고 모두 다 같은 슬픔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묘한 감정들은 이렇다고 한마디로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느껴야’ 비로소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곤이와의 관계 속에서 ‘느낌’으로써 윤재의 아몬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Photo by Remi Yuan on Unsplash
<리플/임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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