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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 피플 Apr 06. 2019

어두컴컴한 계단을 지나면 따사로운 햇빛이 있는

옥상에서 만나요 -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는 정세랑 작가의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그중 한 에피소드의 제목을 따서 소설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개인적으로 소설집의 제목을 이렇게 짓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제목이 된 에피소드가 메인이 되고 다른 에피소드들은 뭔가 곁다리가 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다시 받은 이유는, 나에게 다른 에피소드들도 <옥상에서 만나요> 못지않게 공감되고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다 개성 넘치고, 나름의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보니, 그 이야기들을 공통적으로 묶어줄 기막힌 제목을 짓기도 참 어렵겠구나 싶다. 그래도, 어려워 보여도, 책에 나타난 작가의 표현력이나 창의적인 발상을 보면 모든 이야기를 두루 아우르는 제목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무책임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생각해보면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단편 소설집들은 하나의 대표작을 전체 소설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 싶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근래 읽은 단편 중에 가장 ‘기묘한 느낌’이 드는 소설집이다. 이 ‘기묘한 느낌’을 풀어서 정리하자면 ‘왜인지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힐링되는’ 느낌이다. 소설집의 모든 소설들이 다 그런 위안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 여러 개의 이야기에서 공통된 느낌의 위로가 느껴진다. 그 따사로운 느낌이 좋아서, 그래서 책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고,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는 단편집이었다.


그럼 도대체가 어느 부분에서 나의 마음이 감동했을까. 보통 이 단편집들의 소설 속에는 상처 입은 인물들이 꼭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자신들이 겪는 아픔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는다. 슬픔에 멈춰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나름의 작은 희망들을 돛으로 삼아 자신들을 이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다소 뻔한 전개인데, 작가의 문체가 이들에게 부여한 공통된 특징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이 사람들 굉장히 덤덤하다. 물론 이 사람들도 아파하고 슬퍼한다. 하지만 좀 더 아파도 되고 더 슬퍼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니다.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람들, 절망에 이르지 않는다. 펄펄 끓는 뜨거운 마음으로 절절히 아파하기보다는, 냉철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삶의 길로 돌아온다. 아픔과 상처를 계기로 자기 인생에 새 발을 내딛는다. 이 점에서 내가 위안을 얻고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픔을 삶의 일부로서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걸 계기로 더 발전하는 이들의 태도에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느끼는 바가 컸다. 살다 보면 아플 수 있다고, 그러나 그게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그러니 그 아픔에만 머물러 있지 말라고, 아픔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너의 인생을 살라는, 이 메시지들이 오히려 숱한 힐링 서적들의 뜬구름 잡는 메시지보다 더욱 내게 든든한 힐링이 되었다.


어쩌면 굉장히 현실적인 메시지라 오히려 더 공감되었다. 하지만 진부하기만 한 내용이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방식으로 쓰여있었다면, 감동적이지는 않았을 듯하다. <옥상에서 만나요>의 소설들은 대부분 우리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그 사실적인 이야기 속에 정세랑 작가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하나씩 집어넣어놓았다. 소환술, 흡혈귀, 과자 몸을 가진 사나이 등등이 그렇다. 이러한 소재들은 각 이야기의 기본 컨셉이 되어 서사를 진행시킨다. 현실적인 이야기에 비현실적인 소재가 끼어들어 감상을 깨지 않았냐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현실적인 모습을 더 부각하는 효과가 있었다. 더 실감 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고, 자연스레 따라오는 재미와 흥미로움은 덤이다.


덕분에 재미있는 단편 소설 독서가 되었다. 작가의 독특한 발상과 그 발상을 통해 현실 사회를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무심한 듯 따뜻한 문체가 잘 어우러져 좋았다. 가끔 친구들이 책 추천을 해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현실에 다소 지쳐 보이는 친구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려 한다. 흥미로우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묵직한 위안이 있으니까.


<리플/조성민>



Photo by Katherine Hanl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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