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짙은(Zitten)

by 유시환

백야는 밤이 오지 않는 시간이다.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맞이하려면 밤이 와야 하는데, 빛이 끝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마음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불을 끄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처럼, 이성은 차가운 정리를 시작하고 있는데 감정만 계속 깨어있던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백야'의 뮤직비디오는 '래빗 홀'이라는 영화로 만들여졌다. 영화의 스토리와 노래와도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한동안 이 뮤직비디오를 계속 봤던 거 같다. 영화 '래빗 홀'은 행복한 네 식구에게 어느 날 닥친 사고로 아들을 잃고 난, 상실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정작 당사자는 돌아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 괜찮아질 때라고 말한다. 하지만 감정은 그런 시점을 모른다. 감정의 시작과 끝은 의지로 결정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감정은 사건과 같이 끝나게 아니라 매일 함께 다시 살아내야 하는 상태이며, 그런 상태가 무뎌졌거나 잠시 잊혔을 뿐 끝낼 수 없다.


'래빗홀'이라는 의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빠진 토끼굴을 떠오르게 하는 은유로 쓰여, 예상치 못한 복잡한 상황이나 빠져나오기 어려운 곤경을 뜻한다. 빠져나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아래로 떨어지는 구멍이었다. 위를 보면 출구는 분명히 있는데 몸은 이상하게도 밑으로 끌려갔던 앨리스처럼, 그때는 감정의 바닥을 향해서 그것이 슬픔인지, 미련인지, 사랑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고, 다만 멈출 수 없이 감정의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만 분명한, 그런 래빗홀을 만났더랬다.


이성은 이미 차갑게 바른 소리를 늘어놓았다. 의미 없는 바람은 접어야 하며, 나를 끌어내리는 마음에선 벗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감정은 늘 뒤에서 이성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길을 잃기로 작정한 것처럼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채 폐허가 된 하루를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꾸역꾸역 보내고 있었다.


'백야'는 그런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백야'의 시간으로, 밤이 찾아와도 어둠이 내리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이 꿈같은 곳으로 나를 데려와, 이상한 시간에 머무르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어떤 자책도 하지 않는 시간 안에서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금은 알고 있다. '백야'도 언젠가 끝난 다는걸.

다만 억지로 끊어내지 않고, '백야'의 시간 동안 충분히 머물다 스스로 내려놓으면 다시 깊은 밤을 맞을 수 있다. 깊은 밤에 깊은 잠을 자고 나서부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백야'의 시간 동안,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몰라서 혼란한 나를 노래 뒤에 숨기고,

끝났다는 사실과 끝나지 않은 마음 사이의 간극을 메꿔가고 있던 시절,

나를 위로해 줬던 나의 시절 노래이다.


백야 뮤직비디오 https://youtu.be/WjmIJnbtJAc?si=6F0aTUdzgqKz9EM2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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