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옮기는 사람들
감기는 옮겨야 낫는다는 속담이 있다. 내 몸의 나쁜 기운 밖으로 내보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반복된 삶의 경험에서 살아남은 문장이 속담이 된다고 한다. 나쁜 기운을 타인에게로 떠넘겨야 내가 해방될 수 있다는 이기적인 믿음이 어째서 오랜 시간 살아남아 속담이 되었을까 싶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도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전염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프게 베인 사람일수록 상처를 받아 아팠으면서도 앓고 나면 같은 상처는 의외로 쉽게 옮겨주는 게 나는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똑같은 가해자가 됨으로써 더 이상 상처를 아파할 자격을 상실하게 되면, 그렇게 상처는 상처가 아니게 되니까 상처가 나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사실은 그 상처를 받아주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나 할까.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됐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감기가 옮은 이유는 그저 사랑이었다.
아픈 너의 옆에서 너를 계속 지키고 있을수록 나 또한 감기에 거릴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만 살겠다고 너를 혼자 두고 떠날 순 없었다.
너의 곁을 내내 지키며 쉴 새 없이 네가 얼른 괜찮아지길 바랐던 기도는 항상 이루어졌고, 네가 나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는 너와 같은 감기에 걸리고 말았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았다.
네가 나았으니까.
차가워지는 너의 표정이, 행동이, 말투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라면,
내가 그냥 대신 미안해할 테니,
나에게 그 상처를 고스란히 옮겨줘도 괜찮으니,
네 곁을 지킬 수 만 있게 해달라는 애달픈 마음이 사랑이다.
내 곁에서 지치지 말고 마음껏 슬퍼하는 너 때문에 내가 설령 아프더라도, 감기처럼 언젠가는 너도 괜찮을 거니까.
아픔을 계산하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
기다림의 대가를 묻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에도 두려움 없이 곁을 지키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빈도는 줄었겠지만,
나도 알게 모르게 아직도 상처를 옮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상처를 받아주는 것도 사랑이겠지만, 나의 상처를 옮기지 않는 것도 사랑의 모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멈출 경계를 찾아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들을 아프게 하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드라마 '또 오해영'의 OST였던 검정치마의 '기다린 만큼, 더'.
https://youtu.be/uG2se-8-BzE?si=NVlxqqB8uVNlgQl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