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어둠은 내가 먹어치울게 -안희수

'괜찮은 척'하는 사람들

by 유시환

토끼는 무리 생활을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무리에 떨어져 혼자 지내는 환경은 토끼에겐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반려동물로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토끼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별 탈없이 잘 적응하는 얌전한 반려 동물로 오해되곤 한다.


토끼는 포식자들에게 약한 동물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와도 아프거나 불안한 상태를 본능적으로 숨기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 움직임을 줄이고, 숨을 죽이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가만히 있는 편이 잡아먹히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잘 지내고 있다는 평온이 아니라,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나약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선택한 침묵인 것이다. 외로워도, 아파도, 두려워도, 토끼는 오히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아무 일도 없는 척한다. 그래서 토끼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토끼가 행동하는 그 미세한 반응의 변화를 더 세심하게 살펴줘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도 그럴 때가 있다. 가장 약해졌을 때, 가장 멀쩡한 얼굴을 하고 살고 있는 나를 마주할 때가 있다.


슬프다고 말하는 대신 웃고, 무섭다고 말하는 대신 괜찮다고 대답한다. 슬픔이나 불안을 털어놓는다는 건 아무에게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세상은 흔들리는 사람에게 늘 친절하지 않으며, 약한 모습을 보이면 보호받기보다 쉽게 공격받는 상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한 척하고 싶어서 숨기는 게 아니라, 약한 나를 보여줘도 안전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니까. 그래서 아무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맡기지 못한 걱정을 숨기기 바쁜 나날을 보내기도 한다. 혹은 정말 힘든 것이 맞는지도 모른 채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유영하며 그 순간과 떠내려가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의 걱정이나 불안은 결국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가야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임을 알고 있다.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결정해 줄 수도 없는 나의 몫인걸 잘 알면서도, 걱정 인형에게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노래 가사 같은 위로를 건네줄 누군가를 찾기도 한다. 나또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의 나약한 세계마저도 사랑해 줄 사람들을 찾아내는 보물 찾기를 계속 하고 있다.


누군가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건 사람들의 기본적인 바람이다. 그리고 사랑받는 사람은 밝고 강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우울한 마음은 숨기고, 초라한 생각은 감추고 '괜찮은 사람'의 얼굴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 어둠은 내가 먹어 치울게'같은 거짓말 같은 위로가 좋다.


너의 유치하고 하찮은 마음도 나는 다 괜찮으니, 굳이 내 앞에서는 도망치듯 밝아지지 말고 어두운 곳까지 깊게 가라앉아서 실컷 우울해해도 된다는 위로를 건네는 노래다. 네가 가장 망가져 있을 때조차 나는 네 편이니까,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안심하라고 말이다. 그럼에도 슬프다면 네 어둠은 내가 다 먹어치우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웃음이 나지만 그 진심이 건네지는 마음.


언젠가 어딘가에서 나의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기꺼이 나약한 당신의 무게를 잠시 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그 사람의 어둠을 다 먹어치울 순 없겠으나 그 어둠 속에서 혼자가 아니게는 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도 족하지 않을까 한다.


https://youtu.be/sfcINwDJDzs?si=JL5U7KGVb4a7p_DJ











토요일 연재
이전 06화보리수 - 나나무스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