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자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

by 김이성

친한 동생과 오랜만에 만나 밥을 먹었다. 동생의 모습은 몇 년 사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는 그 사이 대기업에 합격했다고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내린 머리에 후줄근한 후드 집업을 즐겨 입던 아이였지만, 폴로 로고가 박힌 니트와 포마드로 올린 머리가 삶의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예감하게 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실제로 성공한 그의 모습을 확인하니, 무언가 우리 둘 사이에 이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겼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은 바뀌지 않았는지, 베트남 쌀국숫집으로 자연스레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습관처럼 가장 저렴한 소고기 쌀국수를, 그 동생은 붉은 국물의 곱창 쌀국수를 시켰다.


참, 월남쌈도 주세요.


그는 메뉴판을 가져가는 종업원을 붙잡고 여유롭게 말했다.

그의 말투는 이전과 사뭇 다르게 자신감이 넘치고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반면에 나는 쉬는 동안 몇 개의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정규직 일자리가 도저히 구해지지 않아서 당장의 생계를 위해 알바몬을 뒤적이고 있는 신세였다.


'괜찮아. 사람마다 삶의 시간은 다른 거야. 각자가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잘하는 일이 있고, 각자의 인생에는 전성기가 있는 거야. 난 아직 그때가 오지 않은 거야'


긍정적인 메시지를 되뇌며 괜찮다고, 다른 사람보다 늦어도 전혀 나쁜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다독이며 살아가는 요즘이었다.


그런데, 그 동생의 모습을 보니 나 자신이 누더기를 입은 사람과 같이 초라하게 느껴져 그러지 않으려 해도 점차 주눅이 들었다.


"이전에 중소기업 다닐 땐 정말 지옥 같았어요. 수준 낮은 동료들이며, 일이며 하루하루 루저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그가 말했다.


"그랬구나. 그래도 독하게 마음먹은 만큼 좋은 결과 얻어내서 정말 잘 됐다. 축하해."


"뭘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려고요? 비전도 없는 중소기업 같은 곳 백날 천날 다녀봐야 인생 바뀌는 거 없어요. 결국 저처럼 대기업 가거나 아니면 공기업 들어가야 해요. 이건 팩트예요."



인터넷에서 직업을 다룬 등급표가 생각났다.

나는 그 등급표에서 말단. 하류 인생이었다.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짓밟히고, 으스러지고 마는 게임이었다.

그는 그 게임의 승자였고, 계속해서 분투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하게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여기는 것 같았다.


물론, 나름의 목표로 인생의 파도를 헤쳐나가며, 깃발을 거머쥔 승자를 비난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자리를 지키는 이들은 패배자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몫을 해내고 있는 이들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무엇을 하든 일 인분의 돈벌이를 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행복하게 살면 된다는 나의 신념.

언제 떠밀려 떨어질지 모르는 벼랑 끝에 매달린 채, 그것을 지켜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제나 같은 곳에 서 있을 것 같았던 친한 동생을 앞으로 쉽게 바라볼 수 있을지, 우리 둘 사이에 벌써부터 안개가 서리는 듯했다.

작가의 이전글해맞이